30초 만에 사로잡았다. 아니, 양 갈래 머리에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통기타를 들고 열차 통로 사이를 걸어 나오며 시선을 사로잡는 데 채 4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1977년 윤형주가 작곡한 ‘국민 CM송’을 다시 부르며 향수를 불러일으킨 맑은 목소리의 주인공, 통통한 뺨과 상큼한 눈웃음이 인상적인 저 소녀는 누구일까. ‘오란씨 걸’이 궁금했다.
순정만화보다는 소년만화에 가까운 열아홉
“아, 그 제품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된 음료수인 줄은 몰랐습니다. 오디션 자리에서 노래 들려주시고 불러보라고 하시는데, 시켜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시간이 너무 짧으니까 뭔가 잘 할 수 있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1971년 처음 세상에 나온 ‘오란씨’를 2010년 다시 세상에 알린 김지원은 올해 나이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이다. 똑 떨어지는 이목구비처럼 도도하거나 신인 특유의 조심성이 지나쳐 심심한 성격을 예상했지만 이 소녀,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볼 살이 쏙 빠져 순정만화 속 우수에 찬 미소녀 같은 외모는 그대로인데 “엄하신 아부지”의 영향으로 ‘~습니다’ 체를 섞어 쓴다는 어눌한 말투와 ‘에헤헤’라는 의성어 그대로인 웃음소리는 명랑만화에 가깝고, “집에서 학교까지 정말 열심히 달리면 5분 안에 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원래 가까우면 지각을 잘 하나 봐요. 교문 닫히기 1분 남았을 때 열심히 뛰어다녀서 달리기에 단련됐습니다!” 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태도는 소년만화의 열혈 주인공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소속사에 들어간 후 연기와 노래를 배우며 데뷔를 준비해 왔지만 아직도 밖에서 “오란씨 걸이시죠?”라는 질문을 받으면 얼굴이 빨개져 도망치고, 학교 친구들로부터는 “간디(인도계를 닮은 얼굴 때문에 생긴 별명)야, 너는 TV에서는 연예인 같은데 학교 오면 그냥 간디다?”라는 말을 듣는 김지원은 최근 장진 감독의 영화 의 촬영을 마친 데 이어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연극학부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해 보고 싶은 일로 “바닷가로 MT 가서 캠프 파이어도 해 보고 싶고, 시험 기간에 도서관 가서 책 이만~큼 쌓아놓고 하루 종일 공부도 해보고 싶고, 친구들이랑 카페 가서 얘기하는 것”에 이어 잠시 눈치를 보다 “그리고…가능할 진 모르겠지만…CC?”라며 또다시 ‘에헤헤’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고생이다.
이토록 흥미진진한 자기표현이라니
그래서 ‘좋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거창한 포부조차 소박하게 해석해 버리는 이 소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음…그, 아티스트라는 게 배우도 되고 가수도 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있고, 아무튼 자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능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아티스트란 저를, 김지원을 표현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닐까요?” 광고를 보고 예쁘다는 사람이 많더라는 말에 당황해 앉은 채 90도 인사를 하고 자신의 ‘센’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클래식을 많이 들으면 부드러운 얼굴이 될 수 있대서” 열심히 듣는다는 엉뚱한 발상에 이어지는 각오, “제가 내년부터는 꼭 가을여자로 변신을…하겠습니다”는 미소를 넘어 폭소마저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흥미진진한 자기표현이라니, 눈을 떼고 싶지 않은 신인 아티스트의 등장이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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