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관(보컬, 건반)과 정욱재(기타)로 구성된 노리플라이(No Reply)는 2006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그 후 잔잔한 사운드와 감성적인 노랫말을 꾹꾹 눌러 담은 음악을 만들어 온 그들은 2009년 1집 에서 “그 땐 말하지 못했던 이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끝나지 않은 노래’)고 노래했다. 그리고 올해 9월 발매된 2집 에서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함께 해 줄 사람 내가 되었으면 해요”(‘내가 되었으면’)라고 노래한다. 4년의 시간 동안 사운드는 풍성해졌고 두 사람의 색깔도 뚜렷해졌지만, 그리움과 불안함의 정서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 앨범보다도 그들, 권순관과 정욱재가 더 궁금해졌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겠다는 ‘중도’만큼은 절대 잃지 않을 것”이라는 두 남자는 어떤 공기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며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미처 노래로 다 전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효주와 함께 불렀던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테마송 ‘Don`t You Know’는 ‘고백하는 날’ 이후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밝은 사랑노래였다.권순관: 곡 작업할 때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했다. 한효주 씨 목소리가 꾸밈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만들었는데, 그게 잘 맞아서 편하게 작업했던 것 같다.
정욱재: 한효주 씨가 음도 뚜렷하시고 음악적인 지식도 있으셔서 녹음도 한 시간밖에 안 걸렸다. (웃음)
“내 곡을 완성하는 정서는 사랑보다는 그리움”
노리플라이의 권순관(보컬,건반), 정욱재(기타).
1집 앨범 와 이번 앨범 은 어떻게 보면 같은 선상에 있는 단어를 타이틀로 내세웠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권순관: 굉장히 보편적이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간단해보이지만 현미경을 통해 깊이 들어가면 그 안에는 굉장히 많은 세계가 존재한다. 길이나 꿈은 항상 맞닿아 있는 것이다. 보편적이지만 밝은 분위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것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정서가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앨범의 ‘No Dreamer’도 공부를 강요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현실, 자기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얘기하는 곡이다. 보편적인 감정 중에서도 특히 그리움의 비중이 큰 것 같다.
권순관: 내 안에 뒤를 돌아보는 정서가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인 것 같다. 그 분이 그리움에 대한 공기의 묘사를 굉장히 잘하는데, 나도 그 영향을 받아서 당시에는 느낄 수 없었던 공기나 풍경을 가져와 곡을 쓰는 것 같다. ‘노래할게’는 1집의 ‘끝나지 않은 노래’와 연결해 청자들을 위한 곡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곡이다. 이제 어떤 대상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들에 대해 노래하겠다는 건데, 결국 그리움에 대한 정서다. 사랑이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라면, 그리움은 그 대상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냄새나 음악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감정이다. 그런 면에서 내 곡을 완성하는 정서는 사랑보다는 그리움이다.
공기나 감정처럼 미세한 부분을 얘기하려면 평소 성격이 그만큼 예민해야 하지 않나.
권순관: 성격은 그렇지 않다. 다만 육감이 섬세하고 예민할 뿐이다.
정욱재: 형이 음악적으로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 잘 때 건드리면 화내고. (웃음) 나 같은 경우는 털털하고 굵직굵직하고.
그런 두 사람의 다른 색깔이 이번 앨범에서 많이 부각된 것 같다.
정욱재: 1집 때 기타가 아닌 피아노곡 위주로 작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 색깔을 표출하는 것에 좀 더 능숙해졌다. 사실 나는 형만큼 사랑에 관련된 가사나 음악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 그런 류의 곡을 써본 적이 거의 없다. 남녀를 떠나서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쓰는 게 더 편하다. ‘안락의자’도 시대를 표류하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가사를 담은 곡이다.“2집에선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봤다”
권순관: 1집이 우리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며 프로그래밍까지 다 했다면, 2집은 칵스의 숀, 나루, 데이브레이크의 선일이 형과 함께 처음부터 상의를 하고 편곡작업도 같이 했다.
정욱재: 1집을 낼 때부터 2집 때는 우리 안에 얽매여있지 말고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많이 받아보자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풍부한 사운드가 나온 것 같다. 음악 외적으로도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선일이형은 현재 가정이 있으셔서 그런지 큰 형님처럼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들어주셨다. 그러면서 2집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덜 수 있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고자 했던 이유는 두 번째 앨범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건가. 보통 2집은 뮤지션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앨범이지 않나.
권순관: 2집은 잘해도 본전이기 때문에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대중들의 머릿속에 1집 노래들이 각인된 상태에서 2집이 다시금 우리 음악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그래서 2집을 갖고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보다는 1집의 감성들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봤다. 이승환이 작사한 ‘위악’도 그런 다양한 시도 중 하나였나. 기존 노리플라이 곡들과 비교해보면 꽤 낯선 느낌이다.
권순관: 처음에 받았던 가사는 더 강하고 직설적이었다. (웃음) 물론 우리 역시 사회 부조리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걸 너무 직설적인 화법으로 써주셔서 표현하기가 어렵더라. 그렇다고 내가 이승환 선배님처럼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웃음) 세네 번의 수정을 거쳐 두루뭉술하게 만들었는데, 역시 ‘이승환이 불렀으면 훨씬 나았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웃음)
노리플라이는 이적, 김동률, 유희열 등 선배 뮤지션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듣는 그룹이다. 평소 선배들한테 음악적인 조언을 많이 듣나.
정욱재: 사실 뮤지션들끼리 만나면 음악 얘기를 많이 안 하는데, 김동률 선배님 같은 경우는 우리가 작정하고 한 수 배우러 간 것이기 때문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낯선 곳에서 깨지고 뒹굴면서 음악적으로 성숙해지고 싶다”
권순관: 원래부터 유학은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숨 쉴 틈도 없고 사람들도 빨리 끓어올랐다가 식어버리는 한국에서 내가 계속 살아남으려면 유학을 포기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근데 김동률 선배님이 ‘너 자신이 바로 서야 대중들한테도 바로 설 수 있다’며 유학을 권유하셨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학을 가게 되면 그 쪽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에너지와 마인드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 나는 진짜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한다. 낯선 곳에서 깨지고 뒹굴면서 음악적으로 성숙해지고 싶다.
모험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편인가.
권순관: 사실 노리플라이는 지금껏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이제 우리가 좋은 음악을 못 만들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무게감, 위기감을 계속 갖고 있다. 공연을 못해서 깨지는 기분은 분명 비참하지만, 그런 과정 없이 그냥 ‘좋네’하면서 끝내면 발전이 없다. 계속 깨지는 것이 내 자신을 자극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정욱재도 권순관처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려는 계획이 있나.
정욱재: 안 그래도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에 지원하려고 지금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토익책을 제일 많이 보고 있다. (웃음) 이번 11월에 시험을 보는데, 만약 붙으면 내년 5월에 떠날 예정이다. 보통 제 3세계로 봉사를 하러 가는데, 그 곳의 다듬어지지 않은 음악을 굉장히 좋아한다. 순수한 사운드를 많이 느끼고 올 수 있을 것 같다.
두 사람이 각각 유학과 코이카를 다녀온 후 노리플라이의 색깔은 어떻게 바뀌어있을까.
권순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겠다는 ‘중도’만큼은 절대 잃지 않을 것이다. 음악을 만들 때 중요한 건 첫 번째로 우리가 좋아야 되고 두 번째로 청자를 만족시켜야 된다. 이 과정에서 감정 표현이 제일 중요하다. 사실 음악의 장르나 스타일은 다음 문제다. 기술적으로 서툴거나 힘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부분만큼은 잘 지키고 싶다.
1집에서 2집으로 오면서 사운드나 장르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봤는데, 다음 앨범의 방향은 어떻게 될 것 같나.
권순관: 좀 더 노래를 편하게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철저하게 멜로디 중심으로 작업을 하고 어떤 키가 좋다 싶으면 거기에 최대한 내 목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라이브 할 때 많이 힘들더라. 한 번은 루시드 폴 형님이 이적 형님과 노래방을 가서 우리 ‘그대 걷던 길’을 부르셨는데, 이적 형님이 못 들어주겠다면서 끄셨다고 하더라. (웃음) 다음 앨범은 힘을 좀 빼고 악기도 간소하게 가지 않을까 싶다. 우선 내년에 2집 활동이 마무리되면 나만의 세계로 들어갈 생각이다. 노리플라이 하기 전에는 곡 하나 작업하는데 20시간 넘게 걸렸는데, 요즘엔 그때처럼 절박하지 않아서인지 곡 쓰는 시간이 좀 줄어들었다. 다시 그런 시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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