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당신 이길 수 있어요. 내가 당신이 이길 카드를 다 가지고 있어요.” 다소곳이 대서양 그룹 총수의 막내며느리 노릇을 하며 후계자 자리를 노리던 나영(신은경)은 남편 영민(조민기)에게 말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카드 중 최고의 필승 카드가 아들 민재(유승호)라는 것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다. 나영이 민재를 모든 것에 능한 엘리트로 키운 것은 할아버지이자 그룹 총수인 태진(이순재)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MBC 에서 가족이란 이처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카드로 존재한다. 태진은 대서양 그룹의 정경유착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영민을 고향친구의 딸 나영에게 장가보내고, 그의 둘째 며느리 애리(성현아)는 그룹의 성장에 현직 장관인 아버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걸 공공연히 내세운다. 또한 이 일가의 장남 영대(김병기)는 잘난 두 동생이 경영권을 놓고 다투기를 기대하며 그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취할 준비를 한다. 그들에게 있어 가족이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이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독특한 가족드라마가 SBS 와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한다는 것은 재밌는 우연이다. 봉건적 가부장제와 가족의 구속력이란 것을 넘어선 지점에서 전혀 다른 가족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속 병태(김영철)의 가족은 ‘남들’과 분리된 ‘우리’가 모인 울타리라기보다는 각각의 ‘나’가 모인 의사소통 공동체에 가깝다. 물론 그들은 그 어느 가족극의 가족보다 더 화기애애하지만, 그건 구성원 각각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합리적 대화 시스템 덕분이다. 하지만 비슷하게 가족의 정으로 연결되어있지 않고,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는 바로 그 이유로 속 태진의 가족은 살벌한 투쟁 관계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한쪽은 선하고 한쪽은 악랄하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서로 다른 두 가족공동체는 의사소통적 이성과 도구적 이성이라는 인간 이성의 두 가지 얼굴에 가깝다.

드라마 대가에게 대가가 보내는 도전장

봉건적 가족윤리에 대항하는 여성 해방의 서사와 건전한 가족공동체의 이상 사이에서 화해를 도모하던 김수현 작가는 를 통해 의사소통적인 이성을 해답으로 내놓았다. 서로 다른 주체가 대화를 통해 어떤 합의에 이를 수 있다면 폭력적이지 않은 보편성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그와 달리 KBS , MBC 같은 정치사극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 천착했던 정하연 작가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도구적 이성의 세계를 가족극으로 끌어왔다. 그래서 속 가족은 공동체라기보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가깝다. 다시 말해 김수현 작가가 전통적 가족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재구성했다면 정하연 작가는 오히려 가족이란 이름이 지닌 일말의 가치조차 철저히 해체한다. 물론 관념적으로는 도구적 이성의 폭력성을 상호주관적인 의사소통적 이성으로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며 안분지족하는 병태 가족과 한국 10대 재벌가인 태진 가족의 욕망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그려내는 어느 특수한 가족의 이야기는 의 낙관주의에 균열을 일으킨다. 조금 거창하게 말해, 광기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패악질로 점철된 수많은 ‘막장’ 가족드라마 따위는 진즉에 뛰어넘은 노작가에게 비로소 또 한 명의 대가가 의미 있는 반박을 제기한 것이다. 이 균열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건, 이 균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가족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 풍경은, 가족드라마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인가. 이 의문이야말로 두 대가가 그 다음 세대의 작가들에게 제기하는 화두는 아닐까.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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