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가 아이돌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패션 스타일링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키와 축구게임 을 같이 해주는 멤버가 없는 게 불만인 민호가 한 팀일 수 있는 건 그들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샤이니를 어떤 색깔의 아이돌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2AM은 발라드를 부르는 아이돌이다. 2PM은 격렬한 춤을 추는 ‘짐승돌’이다. 엠블랙은 차가운 표정의 ‘시크돌’로 어필했다. 샤이니도 ‘누난 너무 예뻐’를 부를 때는 초식 소년들이 모인 것 같은 해맑은 아이돌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룹의 막내 태민이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사이, 그들은 ‘Juliet’과 ‘링딩동’을 거쳐 ‘Lucifer’에서 쉴 새 없이 격렬한 춤을 추는 그룹이 됐다. ‘Lucifer’의 무대에서 태민이 중앙에 서서 파워풀한 춤을 추는 건 지금 샤이니의 아이러니다. 그들은 처음 팬을 끌어들인 그룹의 정체성과 현재의 모습이, 멤버의 이미지와 재능이 엇박을 보여주고 있는 팀인지도 모른다.

가수이기에 하고 싶은 모든 것

마냥 소년 같은 얼굴로 ‘누난 너무 예뻐’를 부르던 샤이니는 다양한 곡들을 거치며 ‘Lucifer’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돌이라는 단어 때문에 잊고 있던 한 가지. 그들은 아이돌이기 이전에 가수고, 춤도 잘 춘다. 그들이 요즘 유행하는 ‘MR제거’를 통한 네티즌의 아이돌 가창력 검증에서 살아남은 몇 팀 중 하나여서만은 아니다. ‘누난 너무 예뻐’에서도 그들이 빛나는 부분은 시작부터 등장하는 그룹의 화음이었고, 그들은 느린 템포의 댄스곡이었던 이 노래의 모든 부분에 맞춰 춤을 췄다. 아이돌이 아니라 가수라면, 그것도 종현의 말처럼 “3년 동안 발성과 바운스의 기본을 배운” 댄스 가수라면 그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 않을까. 키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하고 싶어 하고, 태민은 잔잔한 발라드 음악을 더 많이 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아이돌이기에 해야 할 것들이 있지만, 가수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도 있다. 샤이니가 ‘Juliet’을 부르던 시절부터 준비한 정규 앨범 는 아이돌이 아닌 보컬 그룹 샤이니를 위한 것이다. 요즘 보기 드물게 13곡을 모두 신곡으로 채운 이 앨범은 음악적 스타일의 일관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Lucifer’처럼 SM 특유의 강렬한 댄스곡이 타이틀로 배치된 한편, 신화의 4집 앨범 서너 번째 곡으로 수록되면 좋을 전형적인 남자 아이돌을 위한 댄스곡 ‘악’이 있고, 그 사이에는 ‘화살’처럼 동방신기의 ‘One’이후 SM의 남자 아이돌 그룹의 노래 중 가장 애절한 발라드가 배치 돼 있다. 마치 SM이 샤이니에게 지금 회사가 만들어내는 모든 스타일의 곡을 소화하도록 요구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법을 아는 아이돌

를 거치면서, 샤이니는 자신들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앨범에 통일된 색깔을 부여하는 건 회사의 마케팅도, 프로듀서가 만든 사운드도, 멤버들의 캐릭터도 아닌 샤이니 그 자신들의 목소리다 아이돌 그룹의 관점에서 보면 앨범의 첫 곡이 ‘UP & down’인건 이상한 선택이다. ‘Up & down’은 화끈한 댄스곡도, 가창력을 마음껏 뽐낼 발라드도 아니다. 펑키한 리듬으로 적당히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목적인 댄스곡이다. 하지만 ‘Up & down’에서 가장 부각되는 건 펑키한 리듬을 날렵하게 소화하는 그들의 화음이다. ‘Lucifer’는 그들의 전작 ‘링딩동’과 구성적으로 닮아있다. 하지만 ‘Lucifer’는 ‘링딩동’과 달리 시작부터 멤버들의 화음으로 멜로디를 층층이 쌓는다. ‘Lucifer’가 곡 시작부터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과감한 구성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건 점점 더 스케일을 확장시키는 샤이니의 화음 때문이다. 춤이나 멤버들의 개성이 아니라 팀전체의 목소리가 곡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비주얼이 아닌 음악적인 특색을 타이틀곡에 반영시킬 줄 안다. 댄스든 발라드든, 또는 ‘Electric heart’처럼 라틴 리듬에 일렉트릭 사운드를 섞은 곡이든 샤이니는 자신들의 목소리로 노래를 소화하는 법을 안다. 그들의 앨범에서 주목해야할 건 ‘Lucifer’보다 오히려 ‘Your name’, ‘Life’, ‘Ready or not’ 등으로 이어지는 앨범의 후반부일 수도 있다. 그들은 ‘Your name’처럼 평이한 팝 발라드를 끊임없는 화음을 통해 풍성한 느낌을 주고, ‘Life’에서는 곡의 모든 부분에서 각 파트의 보컬 뒤에서 끊임없이 화음과 애드립을 넣으며 곡을 다채롭게 연출한다. 이전 앨범에 수록된 ‘Jojo’처럼 80년대 디스코의 느낌을 담은 ‘Ready or not’이 ‘Jojo’와 가장 큰 차별점을 가지는 건 보다 다채로워진 그들의 코러스다. 이미지와 캐릭터가 중요한 아이돌 그룹이라면 는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샤이니는 그들의 목소리로 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어떤 트랙을 들어도 종현이나 온유가 아닌 샤이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이돌의 포지션을 가졌지만 그 이전에 노래와 춤 양쪽의 재능을 모두 가진 가수. 는 그 점에서 성장 중인 보컬그룹에게 필요한 과도기였고, 앨범 전체를 들어야 샤이니의 색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독특한 성격을 가졌다. 를 거치면서, 그들은 어떤 노래든 ‘샤이니적’으로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돌과 가수 그 어디쯤

아쉽게도 는 샤이니의 재능을 모두 살리지는 못했다. 앨범에서 그들의 스타일을 재정립할 새로운 스타일의 곡은 없었고, 수록곡 대부분은 안정적으로 앨범을 채우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또한 ‘앨범’과 ‘목소리’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그들의 성장방식은 지금 음악 시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팬들은 앨범의 다른 수록곡을 듣고, 온유와 김연우가 함께 부른 노래나 멤버들이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를 그들의 스타일로 커버한 공연을 보며 그들의 외모가 아닌 노래를 인정한다. 하지만 대중은 타이틀곡으로만 그들을 판단할 것이다. 그들이 범 대중적인 히트곡을 내놓지 않는 한, 그들은 마이너도, 그렇다고 대세도 아닌 묘한 위치의 ‘컨템퍼러리’ 아이돌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아이돌이 2-3년 사이에 승부를 보고 정상에 올라야 할까. 어떤 아이돌이 어린 나이에 슈퍼스타가 되는 것이 목표이듯, 어떤 아이돌은 가수로 꾸준히 성장하며 인기를 얻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태민이는 아직도 고등학교 2학년이고, 온유는 이제 자작곡에 흥미를 붙였다. 아이돌은 20대 중반이 되면 그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가수는 그 때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샤이니는 가수다. 그것도 한 팀의 목소리를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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