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까놓고 시작하자. 뮤지컬 는 판소리 뮤지컬이 맞다. 지난번 제작발표회 당시 “판소리 뮤지컬이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8월 14일부터 11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의 뚜껑을 열어보니 판소리 뮤지컬이 맞다. 제 아무리 “판소리는 소재일 뿐”이라 말한다 하더라도, 소리를 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춘향가나 심청가의 한 대목이 중요 포인트로 등장하는 한 판소리라는 인장은 작품 내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판소리는 지루하다는 인장 때문에 뮤지컬 를 재미없다고 치부해버린다. 그 누구도 탓할 순 없다. 뮤지컬 를 향하는 딱 그만큼의 시선이, 한국전통문화를 대하는 대중의 눈높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 는 그들의 시선처럼 재미없지도, 고루하지 않다. 송화(이자람, 차지연, 민은경)와 유봉(서범석, 홍경수, JK 김동욱)은 여전히 소리에 미쳐있고, 그들에게는 뚝심과 고집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과거에 머무르지도, 촌스럽지도 않다. 하늘거리는 퓨전 느낌의 의상을 입어서도, 국악과 대중음악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는 넘버를 불러서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외부적 설정에 의함이 아닌 “안으로 한을 삭힌” 캐릭터의 내제된 에너지에서 나온다. 송화와 유봉은 현재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한계에 자신의 몸뚱이를 계속 부딪혀내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송화의 판소리 대신 자신이 가진 것을 대입해내며 송화 자체가 된다.

지독한 뚝심이 만들어내는 깊이

그래서 는 또 판소리 뮤지컬이 아니다. 이 작품은 한 예술가의 지독한 자기고백기이자 화해기다. 증오와 번뇌를 거쳐 화해에 이르는 과정은 송화와 유봉, 동호(임태경, 김태훈) 그리고 스태프와 관객 모두에게 유효하다. 특히 이지나 연출을 중심으로 한 스태프들은 송화의 삶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래서 는 바보거나 용자다. ‘실리’가 제1의 덕목이 된 2010년, 배우와 스태프 모두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눈앞에 펼쳐진 가시밭길을 그저 담담히 걸어간다. ‘뮤지컬’이라 명명된 장르극의 관습도 많지 않다. 무대는 비어 있고, 화려한 색 대신 몇 개의 포인트 조명만이 전체를 감싼다. 음악과 안무 역시 어설프게 한국과 서양의 것을 섞기 보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에 맞게 밀어줄 때 확실히 밀어준다. 하지만 대관상의 문제로 대극장용 사이즈를 중극장에 구겨 넣은 점은 뮤지컬 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모던하고 여백 있는 무대를 구현해냈지만 무대 위 빽빽하게 위치해 제 기량을 내지 못하는 무용수들에게는 여유가 없고, 작은 무대 사이즈에 갇힌 영상은 송화와 유봉의 유랑길을 충분히 그려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판소리 뮤지컬이자 판소리 뮤지컬이 아닌 는 “손쉬운 박수에 중독된” 현대인을 깨운다. 한없이 자극적인 21세기, “고생길에서만 살기 싫어”하는 동호를 다그치는, 참으로 불친절한 극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넓이보다는 깊이를 고민하고 고집한다. 현실 속 고집쟁이들은 모난 정 취급당하며 바보라 취급받는 시대를 향해 뮤지컬 는 깊은 물음을 던진다. 그동안 참 공허하고 촌스럽다 느껴졌던 정서와 말들이 뮤지컬 를 만나 살이 붙었다. 읽는 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는 ‘정신’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무형’의 것들이란, 이토록 직접 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사진제공. 피앤피컴퍼니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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