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어릴 적 친구가 아니었더라도 종종 ‘그 애는 지금쯤 어떻게 자랐을까?’라는 궁금증이 드는 사람이 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꼬박 3년 동안 우리들의 저녁 시간을 함께 했던 SBS 의 미달이, 의찬이, 정배 삼총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아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애어른 같았던 미달이와 의찬이에 비해 유독 어설프고 어리버리 했던 꼬마 정배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어색하게 탁 치는 동작과 함께 “맙소사!”라는 유행어로 사랑받았던 캐릭터다. “너 미달이랑 결혼해야 돼”, “만우절에 거짓말 했으니까 경찰에 잡혀 간다”는 삼촌들의 놀림에 매번 속아 울며 도망치던 정배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정배라는 이름에 애착이 많이 가요”
요즘 KBS (이하 )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일곱 살 정배에서 ‘정규 도령’이 된 열여덟 이민호의 변신은 알고 봐도 놀랍다. 그동안 KBS , SBS , 등 적지 않은 작품에 출연해 왔지만 구미호의 딸로 슬픈 운명을 타고난 연이(김유정)와 안타까운 사랑에 빠지는 정규 도령의 진중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은 그 사이 한 단계 더해진 성장의 결과다. 고등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의 멜로, 에서 처음으로 막내 자리를 벗어난 이민호에게 결코 만만한 과제는 아니다. “일단 유정이랑 최대한 맞춰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께서도 ‘너무 네 나이처럼 하지 말고 좀 더 어리게 해 봐’ 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대사도 툭툭 가볍게 던지고 유정이가 장난치는 걸 좋아하니까 잘 받아주고 제가 먼저 장난치고 그랬는데, 요샌 유정이가 ‘오빤 어떻게 열여덟 살이나 먹어서 그런 장난을 쳐?’ 라고 시크하게 구는 거예요! 아,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줄 수가 있나 하고 충격받기도 했지만 (웃음) 너무 귀여워요. 진짜 그런 동생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으로 ‘뽀뽀 신’이 적힌 대본을 받았을 때도 “연기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당연히 찍게 되는 거니까 쑥스러워 못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안 했어요” 같은 의젓한 대답 뒤에 “사실 떨리긴 떨려서 키스 신 사진 같은 거 보면서 고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공부했어요. 그런데 촬영할 땐 코가 먼저 닿고 입이 안 닿으니까 NG가 몇 번 나더라구요. 하하하” 라는 쑥스러운 고백도 이어진다. 사진 찍을 때는 소년답게 수줍어하다가도 축구 얘기가 나오자 눈을 빛내는 활달한 남학생의 모습은 기억 속의 정배와 사뭇 다르다. “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유치원생이었는데 미달이 누나나 의찬이 형은 초등학생이라 진짜 어른스러웠거든요. 대본상에서도 그렇고 촬영장에서도, 형이랑 누나는 그냥 장난치는 건데 저는 어리니까 진짜 괴롭힘 당하는 기분인 거에요. 그 억울함이 연기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었고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정배라는 이름에 애착이 많이 가요. 지금 저를 보고 벌써 이렇게 컸냐고 반가워하시는 분들한테도 고맙구요.”
솔직하고 씩씩한 열여덟
네 살 때 아빠 손에 이끌려 연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사춘기 시절에는 연기를 계속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었다는 이민호에게 는 대학에서도 연기를 전공하기로 결심한 뒤 만난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시놉시스와 대본을 보고 오디션에 참가할 때부터 욕심이 났던 작품인데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아요. 스태프들과 호흡이 좋으면 작품이 더 좋아진다는 걸 알게 됐고, 저도 유정이나 (서)신애 같은 동생들을 챙기면서 배우는 게 많거든요.” 주말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할 때가 제일 좋다는 고백대로 솔직하면서도 씩씩한 소년의 이야기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언젠가 꼭 액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무술보다는 무기를 쓰는 게 좋아요. 머리 쓰면서 싸우는데 그렇다고 뒤에서 조종만 하는 게 아니라 멋있게 총도 쏘고, 컴퓨터로 해킹도 하고, 아 그러면 만능이네? 하하.” 짙은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 위로 구김 하나 없는 웃음이 번져나간다. 우리 정배, 정말 잘 자랐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