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의 한 주택. “기자님, 반갑습니다. 정준호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입구에서 정준호의 적극적인 악수 요청을 받고 나면 옆에 서 있던 서지석이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넨다. “이 쪽 테이블에 과일 좀 더 갖다드려.” 정원 안으로 들어가면 나이트클럽 웨이터 복장의 김현철과 말없이 어색한 기운을 내뿜는 정형돈이 테이블마다 과일과 음료수를 서빙하기 바쁘다. 10대가 넘는 카메라는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노트북과 사진기를 꺼내드는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담아내려 한다. 방송 녹화인지 기자간담회인지 헷갈리겠지만, 정답은 ‘둘 다’이다. 모든 기자들이 착석한 뒤, 권석 PD가 마이크를 잡고 강한 의지를 담아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을 처음 만든 게 나인데, 내가 떠나니까 시청률도 오르고 상도 받더라. 이번에는 최소한 3년, 아니 잘릴 때까지 눌러앉을 생각이다.”
MBC ‘단비’ 후속코너인 ‘오늘을 즐겨라’는 매주 일곱 명의 남자(신현준, 정준호, 공형진, 김현철, 서지석, 정형돈, 승리)들이 오늘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1년 후 책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그들에게 내려진 첫 미션은 바로 ‘기자간담회를 즐겨라’다. 콘셉트는 이미 레드오션이 된 리얼 버라이어티지만, 구성원들의 절반 이상이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오늘을 즐겨라’의 블루오션은 어쩌면 라인업일지도 모른다. 첫 녹화에서 보여준 일곱 남자들의 존재감, 그리고 그들의 예능 잠재력을 조심스레 점쳐보았다.
실질적인 리더, 공형진
비록 신현준으로부터 “지 아들보다도 못난 놈”이라는 농담을 들었지만, 이 날 공형진은 tvN 의 MC답게 매끄러운 오프닝 진행을 선보였다. 정준호-신현준 콤비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면서도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서지석과 막내 승리까지 잘 아우르는 모습에서는 리더십이, “예능이 생소한 멤버들을 위해 형돈, 현철과 함께 ‘밑밥’ 역할을 하겠다”는 말에서는 희생정신이 돋보였다. 자신을 낮추고 코너를 이끌어가는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동생들의 놀림감, 신현준
“‘오늘을 즐겨라’에서 사건사고를 맡고 있는 맏형 신현준입니다.” 사실 신현준의 자기소개는 “많은 기자분들 앞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얘기하는 신현준 씨를 보면서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정준호의 공격에서 비롯된 일종의 ‘자폭’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도움이 필요한 만만한 맏형” 콘셉트를 구축할 수 있었다. 앞으로 동생들의 공격을 예능감으로 받아친다면, 그의 캐릭터는 비교적 빠른 시일내에 완성될 수 있을 것 같다.진지함은 금물, 정준호
이 날 홀로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인물이다. “‘오늘을 즐겨라’의 비례대표 정준호입니다”라는 인사말은 유머로 넘길 수 있지만, “정치의 핵심이 국민과의 소통인 것처럼 저희도 이곳을 소통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비롯해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마다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모습은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물론 그의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예능 프로그램 녹화장이다.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조금 빼면 어떨까.
팀 내 ‘교도보(교두보)’, 김현철
원초적인 웃음 담당자. 점잖은 형들과 주눅 든 동생 사이에서 김현철은 “저의 역할은 말이죠, 쉽게 생각을 해서 교도보(교두보)…그, 중간 브릿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라며 더듬는 말투에 강한 자신감을 묘하게 결합시켜 웃음을 자아냈다. 게다가 아무도 웃지 않는데도 자신의 유행어 “여러분, 뜨내기가 되시겠습니까, 단골손님이 되시겠습니까!”를 외치는 근성이 있다. 이렇듯 그가 파고들 수 있는 틈새는 아이돌이나 영화배우들이 쉽게 엄두내지 못하는 ‘무리수’다.
항돈의 재발견, 정형돈
이 날 공형진이 진행을 맡았다면, 정형돈은 전체적인 맥을 짚어냈다. 정준호의 진지한 답변으로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싶으면 적절히 끼어들어 “제가 해 본 첫 녹화 중 가장 숙연한 분위기”라며 시크한 농담을 던지고, 기자들을 향해 “서지석 씨한테 단독으로 질문할 기회를 드리겠다”며 말 없는 멤버에게 토크를 분배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는 “솔직히 얘기하면 이 코너는 모 아니면 도가 될 것 같다”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했지만, 이 코너가 정형돈 자신에게는 ‘도’보다 ‘모’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음소거 탈출 시급, 서지석
스스로 “개인기나 특별한 장기가 없기 때문에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열심히 하겠다”고 인정했듯, 서지석은 부족한 예능경험을 채우는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멤버들의 농담을 받아칠 애드리브 실력이 부족하지만, 권석 PD의 말을 빌리자면 “처음에 낯가림이 좀 심해서 그렇지 토크실력은 충분하다”고 하니 우선 동료들과 가까워지는 게 그의 첫 번째 과제일 듯싶다.
강력한 막내, 승리
얼마 전 SBS 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보여줬던 승리가 이 날 상대적으로 과묵했던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와 네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신현준의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복근은 2년 전에 휴가 떠났다”는 애드리브와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부서지면 깁스를 하고서라도 나오겠다”는 악바리 정신은 그가 곧 강력한 막내로 급부상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권석 PD 역시 “승리는 의욕과 욕심이 넘치기 때문에 확 뜰 멤버”라고 확신했다.
사진제공. MBC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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