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먹고 사는 새로운 생명체일까, 요정일까, 아니면 철들지 않은 로커일까. 찢어진 청바지에 타투, 그리고 영화 의 에드워드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의 낚시꾼(김창완)이 무료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잡혔는지 격하게 움직이는 낚싯대를 물에서 끌어올렸을 때, 팔딱이진 않지만 선명한 소리를 내는 음표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제 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JIMFF)의 공식 트레일러는 이렇게 낚시를 통해 음악을 찾고 듣고 즐기는 것을 은유한다. 그리고 이 유쾌하고 어쩌면 환상 소설 같은 영상을 연출한 사람은 놀랍게도, 허진호 감독이다.
놀랍게도, 라는 말을 쓰는 것이 과하게 느껴진다면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을 톺아보자. 연애보다 연애하기 전의 설렘이야말로 남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는 걸 보여준 , 과연 있었나 싶었던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을 환기하는 , 그리고 과거의 상흔과 현재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최근작 까지, 그의 작품은 주로 남녀의 아련한 감정을 잡아냈다. “처음 JIMFF에서 트레일러를 제안할 때는 남녀 주인공이 나오는 그런 걸 생각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번 트레일러에서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단편 경험은 있었지만 이렇게 CF처럼 짧은 영상 안에 임팩트를 담는다는 것이.” 흥미롭지만 낯선 경험. 게다가 이미 수많은 감독들이 “음악과 영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만들어 과연 새로운 게 가능할까 싶었던” 상황. 재밌는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그는 음표를 낚는 낚시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고, 연극 에서 함께했던 김창완의 캐스팅으로 그 아이디어는 훨씬 구체적이면서 독특한 질감을 갖게 되었다. “촬영 전날 김창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시더니 평범한 사람이 아닌 로커의 느낌이 어떨까,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의상도 직접 꾸미시고 타투도 직접 그리시고. 덕분에 평범해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번 트레일러는 과거 김태용, 민규동, 김지운 감독 등에서부터 이어져온 JIMFF 트레일러 특유의 유니크한 계보를 잇는 작품인 동시에 허진호 감독 개인으로서는 짧지만 인상적인 일탈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일탈이야말로 JIMFF를 찾는 우리에게 이번 트레일러가, 그리고 허진호 감독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음표를 낚아 음악을 끓이던 낚시꾼처럼 우리는 이 축제를 통해 일상에 없던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글. 제천=위근우 기자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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