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는 한국 축구를 무시한 거야?

지난주에 메시 한국 왔었다며? 너는 거기 안 갔었어?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어. 그리고 샤비나 이니에스타 같은 FC 바르셀로나 황금 미드필드 진용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크게 흥미도 못 느꼈고.

나는 누군지 잘 모르지만 그렇게 잘하는 선수들이 왜 안 왔던 건데?
샤비, 이니에스타, 푸욜, 발데스 같은 바르샤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스페인 국가대표 선수들인데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스페인 축구선수협회가 자국 리그의 팀들에게 국가대표를 위한 4주간의 휴가를 주문했거든. 말하자면 스페인 리그의 국내파 스타들은 우승 휴가를 떠났고, 그 상태에서 아르헨티나의 메시나 스웨덴의 즐라탄 같은 선수들 중심으로 바르샤가 온 거지.

몰라, 난 메시 밖에는. 그런데 그런 상황이면 정말 메시가 빠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거 아니야?
사실 그렇지. 샤비나 이니에스타가 아무리 지구 최고의 미드필더들이라고 해도 현재 바르샤의 상징은 메시고,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경기를 본 우리에게는 더더욱 메시가 익숙하니까. 게다가 네 말대로 팀의 주축들이 빠진 상태에서 메시까지 뺀다면 사실 볼 이유가 거의 없는 경기지. 그래서 그 바르셀로나 감독이 그렇게 욕을 먹는 거야? 경기 전날 메시가 못 나온다고 그랬다며.
과르디올라 감독 말이구나. 사실 팬들 입장에선 죽어라 까는 게 당연하지. 정말 샤비로부터 출발하는 바르샤의 완벽한 패싱 게임까지는 볼 수 없어도 메시라는 최고의 선수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표를 사고 기다렸는데, 경기 전날 그런 소리를 하면 욕을 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 상황에 대해 감독과 바르샤가 한국을 우습게 본다,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안다며 비난하는 기사들은 좀 난센스라고 생각해.

바르샤는 한국 축구를 무시한 거야?

왜? 사람들은 메시를 보러 온 건데 그걸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문제인 거잖아.
내 말은 메시를 출전시키지 않는 걸 비난하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야. 그걸 한국 혹은 K-리그를 무시했다는 식으로 끌고 가는 게 문제라는 거지. 정확히 말해 프리시즌에 이런 빅 클럽이 한국을 비롯한 해외 방문 경기를 하는 건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문제야. 과거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FC 서울과 경기를 가졌던 것도 맨유가 박지성의 고국을 위해 온 게 아니라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로 시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지구방위대라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가 그토록 스타플레이어에 목매는 건, 우승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그런 화려한 진용이 있기에 프리시즌 투어에서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거야. 다시 말하지만 이건 친선 경기라는 말을 붙였을 뿐, 철저히 비즈니스인 거라고.

그러니까 이번 경기 역시 그렇다는 거고?
명분으로는 한국과 스페인의 수교 60주년을 맞은 경기라고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K-리그 팬 중에도, 바르샤 팬 중에도 없어. 바르샤는 돈을 벌기 위해, 관중은 바르샤를 보기 위해 벌어지는 거래라는 게 이번 친선 경기에 대한 가장 정확한 요약일 거야. 그런데 철저히 돈을 벌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에게 돈벌이가 목적이라고 비난하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잖아. 만약에 정말 메시 출전 불가 방침을 내린 감독을 비난하고 싶다면 이 거래가 부당하다는 걸, 즉 우리가 들이는 공과 돈에 비해 그들의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걸 지적해야 한다는 거지. 그럼 그랬던 메시가 다시 나온 건 무슨 이유 때문인 건데? 그 위약금인가 그거 때문인 거야?
당연하지 않겠어? 그런 것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계약을 맺었으면 프로모터가 등신인 거고, 그걸 알면서도 메시를 아끼기 때문에 끝까지 출전을 안 시켰으면 감독이 용자인 거지만, 이런 거래에선 등신도 용자도 있을 수 없지. 과르디올라 감독이 메시를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던 건, 한국을 우습게보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해도 비즈니스적으로 문제가 없는 줄 알아서 그랬던 거고, 그게 번복된 건 당연히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메시를 출전시키지 않는 건 수지가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어서야. 그걸 가지고 한국 팬을 우롱하네 어쩌네 하는 건 좀 우스운 거지. 비슷한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가 미국 투어에서 A급 선수들을 주전으로 내보낸 건, 레알이 더 윤리적이어서도, 혹은 미국이 세계적 강국이라 그런 것도 아니야. 단지 그 시장의 규모나 수익의 규모에 있어 미국이 한국보다 크기 때문인 거지. 즉 바르샤를 비난하려면 국가적 자존심 운운하기보다는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장사 한 두 해 하고 그만둘 거야?’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는 거야. 분명 그 부분에 있어서 바르샤는 한국의 많은 잠재적 팬 혹은 고객을 잃은 게 사실이니까.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라는 것까지는 알겠어. 그런데 바르셀로나랑 그 팬들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선수들도 있잖아. 그만큼 우리나라 올스타 팀도 이득을 얻은 게 있어?
이번 대회에 한국 선수들을 제공하는 대가로 축구연맹이 5억 원을 받았다고 알고 있어. 금전적으로만 따지면 어쨌든 수익 5억이 생긴 거지. 하지만 그 때문에 K-리그 올스타전을 이번 친선경기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분명 한국 축구 입장에선 어떤 수지도 없는 이벤트였다고 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이지만, 비싼 티켓 때문에 K-리그 서포터스보다는 바르샤 팬들이 많이 몰릴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평소에 K-리그를 지켜주던 코어팬들이 오히려 올스타전에서 소외되어버리는 결과가 생기고 말았지. 만약 국가적 자존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바르샤의 태도보다는 오히려 K-리그 올스타전이라는 한국 축구의 대표적 이벤트를 바르샤를 위한 경기로 전락시킨 축구연맹을 걸고 넘어가야할 거야.

바르샤는 한국 축구를 무시한 거야?

네 말대로 그렇게 잘못이라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기본적으로 K-리그 자체가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지. 심지어 올스타전조차. 그래서 이런 이벤트를 마련한 거고. 나름 연맹 입장에선 유럽 축구 팬을 K-리그 팬으로 유입시키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바르샤 팬이 많이 몰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유럽 축구 팬은 그냥 자기네 커뮤니티 안에서만 놀았고, 그나마 있던 K-리그 팬들은 소외감과 불만을 느끼게 되었으니, 아까부터 줄기차게 말한 비즈니스적 관점으로만 따져도 손해만 남은 거래지. 그런데 그렇게 장사가 안 되면 굉장히 위험한 거 아니야? 그런 상태면 나중에 또 돈 받고 이런 일을 안 한다는 보장이 없잖아.
물론이야. 당연히 K-리그가 이런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자체적으로 선순환적인 수익 모델이 생겨나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요 몇 년간의 프로야구처럼 관중이 확 늘어나야겠지. 나는 그런 면에서 유럽 축구 팬을 비롯한 축구 일반 팬을 K-리그로 유입하려는 연맹의 시도 자체는 높이 사주고 싶어. 1, 2만 원 주고 근처 축구 경기장도 안 찾던 사람들이 바르샤가 온다고 10만 원 이상 되는 티켓을 사는 건 단순히 돈지랄이 아니라 바르샤가 그들에게 있어 ‘우리 팀’이기 때문이야. 그런 이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팀’을 찾고 애정을 쏟는다면 분명 K-리그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이번 친선경기 같은 어설픈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나라 클럽의 경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보고 그들이 만드는 서사를 즐기는 과정 안에서 구축되는 거겠지. 연맹과 구단은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고, 나도 노력해야 하는 거고.

네가 뭘? 사람들이 K-리그를 즐기게 하기 위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알고 싶어?

뭔데?
주말에 뭐하냐?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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