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하기 1은 2다. 그리고 원빈은 아름답다. 원빈 주연의 영화 는 이 진리를 길이길이 전파할 복음이다. 그가 연기하는 태식의 몸에 난 상처는 붉은 색 타투고, 적의 팔을 부러뜨릴 때 몸이 그리는 선은 액자에 그대로 보관하고 싶을 만큼 날렵하다. 왜 태식이 옆집 소녀 소미(김새론)를 목숨 걸고 구하는지 묻는다면 는 소미를 찾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맺힌 원빈의 얼굴을 화면 한 가득 보여줄 것이고, 사람의 두개골이 쪼개지는 스크린에서 고개를 돌린다면 지옥 같은 세상의 한 복판에 작은 얼굴과 길고 슬림한 체형을 가진 원빈의 몸이 피어있을 것이다. 평론가에게 배우의 외모가 영화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 만큼, 원빈은 장기매매, 아동착취, 신체 훼손이 범벅이 된 를 ‘스타일’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오락물로 인도한다.

원빈이 옆집 아저씨여야 했던 이유
원빈│빈 아이덴티티, 빈 얼티메이텀

그러나 가 잔혹한 사실성과 쾌락적인 스타일을 동시에 가지는 건 수시로 원빈의 얼굴을 클로즈업 시켜서가 아니다. 는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범죄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태식만큼은 현실에서 조금 떠 있다. 그는 경찰 여섯을 몇 분 안에 때려눕히고 경찰서를 탈출하고, 국가가 정보를 관리하는 전설적인 특수요원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지극히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 소미가 태식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이라며 준 게임 카드가 ‘어둠의 기사’ (Dark knight)인 것은 흥미롭다. 태식은 장기 밀매에 관한 도시전설이 횡행하는 어둠의 도시에서 악을 응징하고, 아이를 보호하는 슈퍼 히어로다. 태식이 소미의 납치범들과 싸우는 것은 대결이라기보다는 세상에 돌아온 슈퍼히어로가 악인에게 내리는 응징과 같다. 의 액션이 주는 쾌감은 구질구질한 악역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태식의 깔끔하고 압도적인 폭력에 있다.

‘옆집 아저씨’가 원빈이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잔혹한 현실 안에서마저 슈퍼 히어로의 비현실적인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건 바로 지금의 원빈뿐이다. 모두가 칼과 각목을 들고 서로 뒤엉킬 때, 태식은 단 한 번의 낭비조차 없이 악인들을 처리한다. 직선으로만 이뤄진 태식의 무술은 더러운 세상에서 우아한 각을 만든다. 이 동작이 가능하려면 동남아 3개국의 무술을 혼합해 만들었다는 무술을 익히는 동시에, 어떤 동작이든 깔끔하게 각이 떨어질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몸매는 최대한 슬림하게 만들어야하고, 그 와중에 “고양이 같은 민첩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잔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모자를 쓰고 걸어가는 그의 몸이 유난히 길고 딱딱해 보이는 건 그가 자신이 상상한 특수요원의 몸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증거다.세상의 어떤 배우도 할 수 없는 그 무엇
원빈│빈 아이덴티티, 빈 얼티메이텀

원빈은 에서 자신의 외모를 극대화 시키지 않는다. 대신 통제한다. 단지 육체적인 훈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태식이 좀처럼 세상과 섞이지 않는 우울한 슈퍼 히어로의 분위기를 갖는 건 원빈이 그동안 통제하고 쌓아온 것들의 결과물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가장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를 만나려면 짧아야 1년에 한 번씩 상영되는 영화를 보는 것 밖에 없다. 많은 스타들이 온갖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한류 스타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다양한 비즈니스를 할 때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원빈의 방식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원빈은 자신의 외모를, 사생활을, 출연 작품들을 통제하면서 누구도 실제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운 남자가 됐다. 대중은 그가 연기하는 배역 너머에 있는 원빈의 실제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적나라한 현실에서 비현실적일 만큼 멋있는 태식의 존재가 정당성을 얻는 건 원빈의 비현실적인 외모와 이미지에 기반한다.

KBS 에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재벌 2세를 연기할 때부터 영화 의 속을 알 수 없는 바보 청년을 연기할 때까지, 원빈은 늘 단순해 보일 만큼 명확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외모를 의식하거나, 잇속을 차리는 원빈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가 영화 에서 머리를 박박 밀거나, 에서 더벅머리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멍한 표정을 지을 수 있던 건 얼굴에 대한 자신감을 넘어 자신의 얼굴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한 소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순간, 그의 얼굴은 자신이 지금 아무런 계산 없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납득시킨다. 어쩌면 위험천만하게도, 그는 아름다움이 때론 매력을 넘어 선(善)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소녀에게 아저씨라고 불리는 서른셋의 나이. 속이 들여다보일 것 같은 투명한 표정. 그리고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청년의 얼굴. 원빈은 에서 자신이 지금의 얼굴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쌓아온 것들을 집약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났다. ‘아저씨’가 되기 시작하는 나이,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 원빈이 세상에서 어떤 배우도 할 수 없는, 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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