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측면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 건데, 그것이 한 단계의 발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을까.
김하늘 : 가능하다기보다 한 단계 이상으로 뭔가 발전이 있을 거 같다. 분명 매 작품을 찍고,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뭔가 늘 성숙해 있다. 작품 전후가 다르다. 그게 금방 보일지 안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씩 발전한다. 그게 당연한 거고. 영화 같은 작품을 하고 나면 사랑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고, 또 어떤 작품을 할 땐 스태프나 상대 배우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고. 그런 것들이 쌓여서 부드럽게 올라온 느낌인데 이 작품에선 그와는 다른 뭔가 나만의 느낌이 온다. 사실 그것을 다음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을지, 관객들이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느낀다.

“트렌디 드라마보단 새로이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이 발전한 느낌인 건가.
김하늘 : 가령 영화 을 찍을 땐 첫 액션 연기를 위해 승마도 배우고 액션도 배우며 수지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건 이처럼 겉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를 통해 가능한 거다. 그런데 수연은 학습이 아닌, 스스로 내면에서 뿜어내고 끄집어내는 과정으로 만드는 캐릭터다. 감성이나 상상력을 통해. 그래서 수연을 연기하고 나서 그 전과는 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스스로 기대하는 면이 있다.

사실 대배우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다른 모션 없이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화면을 장악하지 않나.
김하늘 : 장난 아니다. 아직 그런 분들에 비하면 햇병아리인데 그래도 나를 쿡쿡 찌르는 느낌은 든다. 안에 담겨 있다고 해야 하나? 말로 표현하려는 순간 안개처럼 흩어질 것 같지만 내 안으로는 뭔가 단단하게 채워진 느낌이다. 말한 것처럼 작품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조금씩 발전한다면 수연이라는 캐릭터를 조금 늦게 만나는 건 어땠을까.
김하늘 : 그랬어도 좋았을 것 같다. 나쁘지 않은데… 그 때가 되어서 나한테 작품이 올까? (웃음) 그런데 어떤 배우도 연기할 때 스스로 백퍼센트 만족하는 경우는 없는 거 같다. 그래서 조금 더 나 자신이 다듬어졌을 때 수연을 연기해서 보여줬다고 만족할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다듬어지고 있는 과정 안에서 그 친구를 만나 도전하는 과정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이 얘기를 한 건, 내면의 힘이 있는 캐릭터를 만나는 과정을 통해 청춘스타 이후의 길목을 닦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김하늘 : 점점 다양한 역할에 대한 욕심, 시야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은 있다. 분명 내 나이 또래가 연기할만한 트렌디 드라마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건 굉장히 많지 않나. 좀 단순히 말하면 전에도 많이 해왔던 거고. 말랑말랑한 이야기의 주인공도 매력 있고, 안 할 거라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새로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꼭 나이에 맞게 무얼 준비한다기보다는 시야를 넓히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혹 여배우로서 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보고 싶다는 욕심 같은 건 없나.
김하늘 : 없다. 어떤 그림을 먼저 그리고 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해봤는데 그렇게 됐어, 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계획을 짜는 건 별로 안 좋아하나?
김하늘 : 계획은 안 짠다.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그냥 앞에 둔 것에 최선을 다하다가 어느 날 돌아보면 정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되어 있던 것 같다. 뭔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도,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성공했을 때를 미리 그려두면 오히려 틀에 갇히고 더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그런 걸 염두에 두지 않을 때 더 높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면에 쌓인 걸 활용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

뒤를 돌아보면 항상 그랬던 건가.
김하늘 :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런 판단은 어떻게 내린 건가.
김하늘 : 이렇게 해봤더니 그게 가장 좋다는 거다. 그게 나의 성향이고 그게 나인 거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선을 정확하게 그려놓지 않았고, 되게 흐릿한 뭔가를 붙잡으면서 나아갔는데 지나와서 보니 명확해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마다 어떤 선택의 기준이란 게 있지 않나.
김하늘 : 내가 지금 하는 작품의 영향을 통해 다음 작품을 선택한다. 단순히 로맨틱 코미디를 했으니 다음엔 멜로를 하자는 그런 게 아니다. 그 때 그 때 받는 영향이 있다. 가령 에서 승아를 연기하고 나서의 나와 그 이후의 나는 정말 달랐다. 승아를 연기하기 전의 김하늘은 자신감도 없고 좀 의기소침하고 두려움도 많은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승아를 연기한 뒤에는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대처하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현실에 그녀를 많이 대입하게 됐다. 그래서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스스로 달라진 걸 느끼고. 그렇게 승아를 통해 받은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하고 싶었고, 그래서 액션으로 갔다. 그렇게 고른 게 인 거고.

어떤 기준이 있다기보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건데 그렇다면 수연 이후에는 무엇을 생각하나.
김하늘 : 수연을 연기하고 나서는 활동적인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내면에 쌓인 걸 활용하는 연기를 굉장히 하고 싶다.

승아를 통해 스스로 많이 달라졌다고 했는데 그럼 수연을 비롯해 연기자로서의 내면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김하늘이라는 사람도 더 나아지는 걸까
김하늘 : 나아진다기보다는 연기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그걸 남에게 말로 얘기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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