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는 이번에도 월드컵에 간다며? 벌써 네 번째라지?
응, 네 번째.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가기 시작했으니까.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중계권 문제 때문에 가기 쉽지 않았던 걸로 알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말한 것처럼 공식 응원단인 붉은 악마와 함께 가서 응원전을 펼칠 예정인 거 같아.
넌? 너도 명색이 ‘10관왕’인데 남아공에 안 가?
내가 뭐라고 거길 가. 그리고 별로 가고 싶지도 않고. 혹 어떤 의무감도 없이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순전히 축구 하나 보러 가는 거면 모를까, 대규모 응원이나 취재를 목적으로 가고 싶진 않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정도는 충분히 TV 시청만으로도 가능하고. 아니, 어떤 면에서 시원한 선풍기 바람에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유유자적 경기를 보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겐 여기 남아 TV를 보는 게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지. 넌 아니냐?
나야 굳이 남아공까지 갈만큼 축구나 월드컵에 관심이 있진 않으니까, 뭐. 그래도 그냥 집에서 조용히 TV로만 보고 즐기기엔 좀 아쉽지 않아? 명색이 지구촌 축제라며.
누가 혼자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반바지 입고 종아리 긁으면서 맥주에 닭강정을 먹으며 친구랑 ‘박지성 골 넣었다 ㅋㅋ’라고 문자 주고받으며 TV 본대? 아니, 난 그런 말 한 적…
잘 들어. 비록 조직적으로 응원단을 조직해서 남아공에 가는 건 아니더라도 TV로 월드컵을 제대로 즐기려면 어느 정도 계산적인 판단을 해야 돼. 이번 한국의 첫 경기에선 더더욱.
왜?
기본적으로 그리스를 상대로 한 첫 승은 16강 진출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응원 열기가 뜨거울 거야. 게다가 우리나라 시간으로 토요일 저녁 8시 30분에 시작한단 말이지. 그 자체만으로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 시간대에 한국의 월드컵 첫 경기가 벌어지니, 축구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첫 경기의 기대감에 취해 신나게 응원 한 판 벌이고 싶으면 싶은 대로, 월드컵 핑계로 코가 비뚤어지게 취하고 싶으면 싶은 대로 얼마나 신나는 분위기겠어. 이것저것 필요 없이 경기 결과만 중요하다면 모를까, 그 분위기에 같이 동참하고 싶으면 자기 집에 정갈히 앉아 TV를 보는 것 외의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어?
그럼 어떡해? 시청 앞 광장으로 거리 응원을 나갈까?
그것도 좋은 방법일 거야. 다만 베스트라고는 할 수 없지. 아니, 정확히 말해 네가 원하는 게 어떤 것이냐에 따라 베스트가 달라지겠지. 원하는 거?
만약 네가 좁은 실내에서 벗어나 생판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응원으로 하나 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아까 말한 시청 앞 광장 같은 주요 거리 응원 장소에 나가는 것도 괜찮아. 다만 이런 장소는 정말 사람이 밟혀 죽을 만큼 많기 때문에 쾌적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하긴 어려워. 방방 뛰면서 보기 때문에 재밌긴 하지만 체력적 부담도 있고. 축구 관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맥주를 미리 준비할 수 있지만 만약 모자랐을 때 새로 공급하기 어렵다는 것, 화장실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야.
음, 나는 거리 응원도 좋지만 좀 편하게 봤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세 가지 방법이 남아있지. 하나는 술집, 다른 하나는 극장, 마지막 하나는 집.
극장? 극장에서도 월드컵을 봐?
물론이지.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부터 극장 단체 응원은 활성화됐는걸. 현재 CGV와 롯데시네마가 한국 경기를 3D 혹은 HD로 상영할 계획이지. 편한 좌석과 상당한 응원 인원, 그리고 거대한 화면이 극장 응원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어. 와, 그거 좋은데? 나도 극장에서 응원할까봐.
다만, 이번 주말 한국 대 그리스 전의 자리는 거의 다 예매가 완료된 상태라는 게 가장 큰 문제야. 가끔 자리가 하나씩 나기도 하지만 관람 상 명당이라 보긴 어려운 자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맥주야. CGV의 경우 만약 맥주를 파는 지점이라면 한 잔 정도를 팔고, 그게 아닌 지점은 일인당 한 캔 정도의 반입을 허용한다고 하는데 나 같은 사람에겐 최악의 조건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럼 술집이나 그냥 집은 어때?
그 두 경우에는 인원을 잘 구성해야 돼.
인원 구성?
그렇지. 거리 응원이나 극장 응원의 경우, 어느 친구랑 같이 가든 불특정 다수와 공조하며 응원을 하면 되지만 술집이나 집에선 옆에 있는 친구와 수다를 떨며 경기를 봐야하거든. 이 때 기왕이면 선수 하나하나의 이름과 포지션, 그리고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해줄 친구와 추임새를 잘 넣으며 적은 인원으로도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친구와 함께하면 좋겠지. 그렇게 인원이 구성된 이후에 술집이나 집을 택할 수 있는데, 이 두 경우에서 모두 중요한 건 얼마나 큰 모니터를 준비했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거야. 즉 술집의 경우엔 지금부터 미리 ‘대형 PDP 완비’ 혹은 ‘대형 스크린 준비’라고 밖에 써 붙인 집을 봐두는 게 좋아. 그래야 경기 당일 미리미리 자리를 확보할 수 있지. 그냥 집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야. 최대한 TV가 큰 집에 가야하고, 이 땐 아까 말한 인원 구성에 혼자 살면서 대형 TV를 둔 친구를 포함시켜야겠지. 혹시 집에 3D TV 있는 친구 있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친해져 놔. 그럼 두 개 장소의 장단점은 뭐야?
우선 술집은 신선한 생맥주와 안주를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그리고 각각의 테이블마다 지인들끼리 친밀한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요한 순간마다 모든 테이블이 같이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게 가능해. 즉 사적인 즐거움이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개방된 분위기의 즐거움 역시 누릴 수 있지. 다만 아무래도 술이 주가 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과열된 분위기가 나올 수 있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자칫 자리가 없어서 경기 시작할 때까지 거리를 배회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 그런 면에서 집은 굉장히 편한 장소지. 경기 시작할 때 되어서야 ‘반반무마니’를 시켰다가 경기 끝나고서 배달되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먹는 것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풍요롭게 즐길 수 있지. 하지만 앞서 말한 장소들 특유의 개방적인 분위기와 열기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해.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볼 땐 앞서 말한 인원 구성이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
그렇구나. 그럼 난 어떻게 해야 재밌게 월드컵을 볼 수 있을까?
잘 생각을 해봐. 네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 스포츠를 정말 좋아해서 열정적으로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동시에, 선수 하나하나와 경기 상황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설명해줄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과 함께 본다면 이번 월드컵이 즐거울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래서 결론이 뭔데?
너 닭강정 좋아하냐?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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