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영화 를 마치고 갑상선암을 진단받은 엄정화는 병마를 이겨내고 또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2일 개봉한 영화 다. 제목처럼 엄마 역할이다. 엄정화는 영화 , , 등에서 엄마 역할을 계속 해오긴 했지만, 의 동숙처럼 모성애와 일심동체인 캐릭터는 없었다. 전문직 커리어우먼도 아닌 평범한 ‘야쿠르트 아줌마’다. 동숙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어린 아들과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이지만 결국 자신도 난소암 판정을 받고 절망에 빠진다. 영화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희망을 찾는 ‘엄마’의 진한 모성애를 조명한다.

영화 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엄정화가 겪었던 고통의 시간을 동숙에게 투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엄정화는 실제의 자신이 영화 속 캐릭터에 투영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는 수술의 기억을 다시 한번 수술대 위에서 떠올려야 하는 것 역시 마뜩찮았다. 동숙의 무거운 마음을 떠안으며 한때는 그만두고픈 생각까지 들었지만 자신과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얻고 영화를 마칠 수 있었다. 엄정화는 에서 단지 모성애를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중년의 문턱에서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어서인지 엄정화는 이전과 달라 보였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은 변화의 한 단면일 것이다. 성공을 향해 자신을 몰아붙이며 달려가던 시간들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이제는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나눠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한 모성애의 엄마 역할을 연기하다 보니 ‘엄마’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일도 많았다. 자신을 키워준 엄마, 영화 속 엄마, 자신이 앞으로 돼야 할 엄마. 엄정화와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의 엄마 연기와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엄마 연기를 비교한다면.
엄정화 이전 작품들의 연기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르지 못했다. 아직 엄마가 되지 않아서 상상으로 만들거나 내 안에 있는 모성애를 끌어내 연기하려 했다. 에서는 자식보다 일밖에 없던 여자를 연기했다. 사실 이전까지는 아이를 떠나보내거나 잃어버리거나 잘 챙기지 못하는 엄마였다. 이번엔 온전하게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는 엄마라서 이전 엄마들이 못해줬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적인 엄마 연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마마’에서는 엄마 역할을 위해 외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나.
엄정화 수술 받고 쉬면서 몸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영화 들어가기 전부터 다이어트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살이 많이 쪄도 괜찮겠다 싶었다. 영화를 찍으려고 보니 적당히 살이 올라 있는게 더 엄마처럼 보일 것 같았다. 때 46kg까지 뺐는데도 티가 나지 않더라. 골격이 좀 있는 편이라 말라도 김민희나 정려원 같은 친구들처럼 보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거침없이 찌도록 내버려뒀다. 화면으로 보니 좀 찌긴 했더라.(웃음)

동숙은 친구 같은 엄마다. 엄정화라는 배우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인데 어떻게 설정한 건가.
엄정화 내가 동숙이라면 어떨까 생각을 해봤다.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픈 아이를 둔 엄마의 심정을 ‘리얼’하게 그리고 싶었다. ‘리얼’이 뭘까 고민하다 보니 힘들다고 아이를 측은하게 보거나 침울해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이도 자신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알지만 슬픔을 드러내면서 살지는 않잖나. 아이 앞에선 더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병원 장면은 찍기 어려웠을 텐데.
엄정화 어려웠다. 수술대 위에 있으니 그때 기억이 나더라. 연기라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게 있잖나. 그렇지만 가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실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연기를 안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트위터든 문자든 정말 많은 응원을 받았다.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답장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술 직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엄정화 초반에는 감정기복이 심해서 힘들었다. 많이 건강해지긴 했는데 목이 자주 피곤해지긴 한다.

‘엄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엄정화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희생’, ‘가엾다’다. 성인이 돼서 엄마를 생각해보니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스물여덟에 혼자가 되신 거니까. 그 나이에 네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다. 막내는 겨우 100일 때였다. 생각해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기댈 데도 없는 처지에 악착 같이 살아오며 얼마나 절절했을까. 엄마의 시간을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끝없이 고마운데 막상 잘해드리지 못한다. 맘대로 안 된다. 아빠의 역할을 같이 해야 하는 엄마라서 더 큰 의미일 것 같다.
엄정화 어릴 땐 친구들이 부러웠다. 친구집에 놀러가 보면 엄마들이 나긋나긋하니까. 엄마는 친구들을 데려가면 퉁명스럽게 대해서 애들이 무서워했다. 지금은 이해가 가는데 그때는 참 엄마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정다감한 딸일 것 같은데.
엄정화 다정한 모습이 10이라면 나는 4정도인 것 같다. 집에선 온갖 짜증을 다 부린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엄마에게 잘 해드리지 못한다. 데뷔하고 나서 갑자기 많이 바빠질 땐 딸이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한 엄마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매번 그러진 않았지만 친구 같은 딸이 돼드려야 하는데, 받은 만큼 사랑을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하다.

데뷔 후 엄마와 관련한 기억 중 지금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엄정화 신인 때 화장품 광고를 찍고 1천만원대 출연료를 수표로 받은 적이 있다. 그때로선 거금이었다. 엄마에게 그걸 드리고선 많이 울었다. 1994, 1995년쯤 우리 가족 모두 아파트로 처음 이사할 때 가장 기뻤던 것 같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는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우리 가족에겐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의미가 가슴 깊이 파고들었던 첫 기억은?
엄정화 첫사랑을 느꼈을 때였다. 풋사랑이야 학생 때도 했었지만 첫사랑은 데뷔 후였다. 여자가 된 후 사랑을 처음 느끼고 난 다음에야 엄마의 인생이 보이더라.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사랑했을까. 엄마가 포기한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실제로 엄마가 되면 어떤 엄마가 될 것 같나.
엄정화 의 동숙처럼 딸이나 아들과도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후배들을 만나도 늘 같은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스타일이다. 영화를 찍을 때 보니 아들이 남편 같기도 하고, 엄마와 아들이 서로 기대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나.
엄정화 어차피 아이는 스무살 정도까지만 같이 살잖나. 그 이후엔 자신의 인생이니까. 딱 예쁠 때만 같이 사는 거다.(웃음) 그런 면에서 늦지는 않은 것 같다. 일찍 결혼했다면 의 전수경 씨처럼 자신의 일이 우선이고 딸은 뒷전인 엄마가 됐을 것 같다. 아이 때문에 연기, 음악을 못했다면 피해의식을 느꼈을 것 같다. 동생 엄태웅이 출연한 ‘1박2일’은 어떻게 봤나. 혹시 여배우 특집 2탄으로 출연 제의가 들어온다면.
엄정화 태웅이가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좀 썰렁하긴 하더라. 태웅이에게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우리 같은 어른들에게 그렇게 좋은 곳을 다니면서 마음껏 웃고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겠나.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태웅이가 그러는데 함께 출연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 여배우 특집이라. 입수는 어렵지 않은데 내가 원래 스포츠를 잘 못한다. 허당이다.(웃음)

새 앨범에 대한 구상이 있나? 아니면 최근 즐겨 듣는 음악이 있다면.
엄정화 아직까진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좋은 음악들을 감상하는 정도다. 최근엔 토마스 쿡(그룹 마이 앤트 매리의 정순용)이나 에피톤 프로젝트의 앨범이 좋더라. 요즘엔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보사노바 같은 장르의 음악이 좋다. 기획 앨범으로 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차기작 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엄정화 3년 전부터 윤제균 감독이 이야기해왔던 작품이다. 기다리다가 작품이 준비돼 들어가게 됐다. 평범한 주부가 댄스가수가 되는 이야기다.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 에선 심사위원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오디션을 받는 장면이 있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이다.

글. 고경석 기자 kav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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