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이다, 공룡이네, 공룡이야. 평창동의 어느 스튜디오에 들어선 순간, 눈에는 초록색 공룡들이 이족보행을 하며 돌아다니는 광경이 들어왔고, 귀에는 ‘크르릉’이라는 환청이 들렸다. tvN (이하 ) 취재를 위해 방문한 현장, 스태프들은 이길수 PD와 VJ, 작가들까지 모두 공룡 옷을 입고 촬영을 진행했다. “오늘은 가브리엘 깜짝 생일 파티 촬영인데, 가브리엘이 공룡을 좋아하거든요.” 그 광경의 비현실적인 느낌만큼이나, 대량 구매가 어려워 트위터 RT를 통해 알음알음 한 벌 씩 빌려왔다는 사연 역시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는 스튜디오의 안과 비 내리는 바깥을 마치 다른 세상처럼 구분지은 가장 비현실적인 풍경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조그맣고 오밀조밀한 얼굴을 가진 레인보우 유치원 아이들이 숨 쉬고 말하고 웃는 모습이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열린 원더랜드에선 공룡들과, 살아있는 인형들이 있었다.



“오늘도 저녁 7시는 되어야 끝나겠어요.” MBC 초기를 이끌다가 지금은 의 메인 작가로 활동 중인 강제상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매 촬영마다 8시간 정도는 족히 걸린다는 이야기는 미리 들었지만 생일 파티 하나 찍는데 뭐하느라 그리 오래 걸릴까 싶었던 게 현장에 오기 전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직접 본 현장에선 제작진의 계획한 그림이 하루 안에 나올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미리 MC 지상렬과 아이들이 짜고 가브리엘을 반장으로 만들어주는 미션을 진행하다 갑자기 크리스티나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저, 고릴라 할 수 있어요!” 뭐? 이건 무슨 상황이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크리스티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고릴라 흉내를 냈고, 뒤이어 현서도 “저도요!”라 외쳤고, 크리스티나는 “침팬지!”, 대니얼은 “물고기!”, 도윤이는 “코끼리!”, 알레이나는 “토끼!”를 외치며 동물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알레이나가 입으로 “깡총” 소리를 내며 토끼 흉내를 내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또 다른 동물 이름을 외쳐댔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던 이길수 PD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자, 거북이 마지막이에요!”



“다시는 너희가 싫어하는 거 안 할게. 얘들아, 고마워.” 계획대로 친구들의 몰표를 받고 반장이 된 가브리엘은, 문자 그대로 입이 귀에 걸린 상태로 당선 소감을 밝혔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징하는 왕관과 망토 역시 수여됐다. 하지만 모든 권력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지상렬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브리엘에겐 친구들의 자리 배치를 해야 하는 임무가 떨어졌다. “크리스티나, 어디 앉을 거야?”, “네 옆에.” 이토록 자기 감정에 솔직한 아이들이라니. 서로를 보며 흐뭇해하는 두 아이들을 보며, 기자도 울고 알레이나도 울고 하늘도 울었다. 가브리엘은 “알레이나, 참으면 나중에 짝꿍 해줄게”라고 했지만 크리스티나와 알레이나 모두 가브리엘 옆에 앉겠다고 떼를 썼고, 여기에 현서까지 가세했다. 다시 한 번, 마음으로 울었다.

“우리가 의도했던 게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부분이 오히려 방송에 나오게 돼요.” 강제상 작가의 말처럼 깜짝 파티를 위해 가브리엘에게 밖에 나가 군것질을 사오게 하는 동안 아이들은 “숨었다가 깜짝 놀라게 해주자”는 도윤이의 의견에 따라 스튜디오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기들끼리 숨바꼭질을 했다. 아주 작은 테이블 밑에 도윤이, 대니얼, 알레이나 세 명이 숨는 것을 보며 이 아이들이 얼마나 작고 귀여운 생명체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좋은 그림을 위해 아이들이 순순히 앉아 있어준 것만은 아니다. 현서와 크리스티나가 손을 잡고 2층짜리 건물 내부를 쉬지 않고 뛰어 다닐 때마다 ENG 카메라 역시 쉬지 않고 아이들을 따라 움직여야 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정신없는 와중에 함께 취재를 왔던 L기자가 조용히 말했다. “크리스티나가… 제 볼을 꼬집고 갔어요.”


가브리엘이 오고 있다! 밖에서 가브리엘이 심부름을 하는 동안 따라다니던 제작진에게서 연락이 오자 갑자기 스태프들도 지상렬도 바빠진다. 여유만만한 건 아이들뿐이다. 가브리엘이 돌아오기 전에 선물을 만들어야 하지만 누구의 손놀림도 급하지 않다. 오히려 당장 실현될까 싶을 상상력을 부렸다. “수수깡으로 뭘 만들 거예요?”(지상렬), “애벌레요.”(도윤), “좋아요, 귀여운 애벌레.”(지상렬) 하지만 귀여운 우도윤 표 애벌레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가브리엘과 스튜디오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당장 장난감을 조립해야 하는 상황, 작가들이 투입됐다. 스태프 중 누군가 말했다. “공룡 투입!” 착하고 똑똑한 공룡들 덕에 생각보다 시간이 남았다. 지상렬은 짬을 내 아이들과 생일 축하 노래를 준비하려 했지만, 역시 쉽게 될 리 없었다. 고릴라 흉내로 자신의 터프함을 과시했던 크리스티나는 이제는 알통 자랑을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현서도 자신의 팔을 번쩍 들며 근육을 과시하려 했다. 크리스티나가 팔굽혀펴기를 시작하고, 도윤이와 대니얼이 따라하고 현서가 방방 뛰는, 도저히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한 상황.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 큐시트는 종이에 불과한 곳, 그것이 현장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도 스태프 중 누구 하나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곳, 그것 역시 현장이다. 원더랜드는 바깥 세상의 잣대로 재고 평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유치원이 피트니스 클럽으로 변신하고, 인형처럼 예쁜 소녀가 알통을 자랑하고, 초록색 공룡들이 숲을 이룬 곳에서 과연 계획이라는 말이, 효율성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 안에서 허락된 건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이 모든 카오스를 즐기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서울 평창동에서 만난 원더랜드 안에서도, TV 브라운관 앞에서도. 단, 아무리 노는 게 좋아도 친구 가브리엘 생일 파티, 그거 하나는 잊지 않았기를 바라며.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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