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떤 곡으로 처음 대중음악을 접했어?”(윤종신) “저는 조성모 선배님 노래요.”(민아) “저는 ‘담다디’요.”(소진) “그래, 두 사람 차이가 이 정도야.”(윤종신) “저는 김현성의 ‘Heaven’이요.”(종현) “저는 백스트리트 보이즈 노래.”(민혁) “나는 존 덴버 노래로 처음 대중음악을 접한 거 같아. 그런데… 돌아가신지 오래된 분이야.”(윤종신)
비록 존 덴버가 노환으로 별세한 건 아니지만, 윤종신의 고백과 함께 여고생 게스트인 걸스데이 민아와 MC 윤종신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드러났다. 그리고 그 간극 사이에는 하림이 처음 들었던 변진섭의 노래들과 나윤권이 처음 접했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 조정치의 글렌 메데이로스 등이 자리하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취향과 세대의 스펙트럼이 만들어졌다. 아직 날이 풀리지 않은 4월 충청남도 태안군 천리포 수목원에서 시작된 Mnet 녹화는 이렇게 여간해선 쉽게 모일 수 없을 것 같은 조합으로 시작됐다.
“대체 남기상이 누구야?”(윤종신) 현장에서 걸스데이의 ‘반짝반짝’을 편곡 중이던 윤종신이 작곡가의 이름을 말하며 투덜거렸다. 상당히 빠른 템포의 댄스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만드는 건 거리의 악사, 윤종신과 조정치, 하림, 이정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정치는 아이폰에 저장된 ‘반짝반짝’을 들으며 박자를 확인하고, 한 박자 안에 얼마나 많은 가사가 있는지 확인한 윤종신은 “조금 더 느리게 가자”고 제안했다. 아직 “얘들(걸스데이) 무대를 못 본” 윤종신과 신예 걸그룹 사이의 여전한 간격. 하지만 민아와 소진이 “이 노래를 기타로 어떻게…”라고 했던 ‘반짝반짝’이 슬로템포의 어쿠스틱 곡으로 완성되자 두 멤버는 어렵지 않게 기타 연주 위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얹었다. 심지어 ‘맘맘마 춤’까지 선보이자 편곡에 잠시 애를 먹었던 거리의 악사들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많이, 환해졌다.
편곡된 ‘반짝반짝’이 게스트의 노래를 거리의 악사 스타일로 바꾸며 모두 함께할 수 있게 만든 합집합이라면, 씨엔블루의 종현과 조정치가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을 즉흥적으로 합주하며 함께 부른 건 서로 공유하는 취향을 확인하는 교집합의 순간이었다. 특히 종현의 연주는 만능 연주인 하림조차 “고등학교부터 배웠는데 이 정도야?”라며 놀랄 정도로 상당한 실력이었다. 물론 종현 역시 타악기와 기타를 종횡무진하는 하림의 연주에 계속해서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서로의 간극 혹은 벽이 희미해지는 순간. 비록, 걸스데이 때처럼 환해지진 않았지만.
“굉장히 바쁘고 정신없어서 취재하기가 쉽진 않으실 거예요.” 촬영이 시작되기 전, 제작진이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했지만 정말 카메라는 쉬지 않고 돌았고, MC와 게스트들은 쉬지 않고 선곡하고, 편곡하고, 노래를 불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긴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큐시트보다 약 2시간 정도 일정이 밀렸지만 “천장이 높아 울림이 좋은”(윤종신) 식당 2층에서 라이브는 계속됐다. 남기상의 ‘반짝반짝’ 악보에 이어 성시경 곡에 대한 “아주 코드를 난도질했구먼”이라는 윤종신의 투덜거림도 있었지만, 종현과 소진이 함께 부른 제임스 므라즈의 ‘Lucky’의 하모니는 예뻤고, 종현이 만든 ‘I`m Yours’-‘Bad Girl Good Girl’-‘샤이보이’-‘I don`t care’ 메들리는 윤종신에게 “아이돌계의 유리상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불러대다 체력이나 남을까 싶을 즈음, 그들의 첫 식사로 병든 소도 일으킨다는 낙지가 등장했다. 끓는 물에 낙지를 집어넣는 그들의 표정에 자비는 없었다.
“앞에 와서 보셔도 돼요!” ‘만리포 사랑’ 노래비 앞 해변에서 즉석공연을 준비하자 지나가던 지역 주민들과 차량마다 한 번씩 멈춰 서서 “뭐 찍는 거예요? 누구 나와요?”라고 물어봤지만 제작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바삐 제 갈 길을 갔다. 여전히 춥고, 바닷바람은 거세고, 심지어 빗방울도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 여기서 “지금 힘들어도 이 영상을 따 놓으면 좋을 거야”라며 멤버들을 다독이는 건 역시 윤종신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좀 더 냉혹했다. “비도 거의 안 오는데 우의 벗고 찍죠.” “우의 벗으면 녹음에 우리의 비명이 들어갈 텐데?”(윤종신) 나윤권이 김건모의 ‘빨간 우산’을, 모든 멤버가 빅뱅 버전의 ‘붉은 노을’처럼 뭔가 불타는 빨간 이미지의 노래들만 고른 건, 과연 우연이었을까.
하필 즉석공연을 할 때 밀물이 들어와 해변 장면을 찍지 못했던 멤버들과 제작진은 물이 빠진 저녁 시간에 몽산 해변을 다른 의미로 후딱 ‘찍고’ 왔다. 해가 떨어져 야외 촬영 자체가 어려운 탓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출연자들에겐 더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큐시트에는 몽산 해변 촬영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이정의 돌발게임! : 소진과 민아가 가위바위보로 팀 나누기. * 진 팀 벌칙 – 바닷가에 발목 담그고 같은 팀 멤버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 10회. (단, 넘어질 경우엔 10회 다 안 채워도 인정)’ 윤종신이 말했던 비명 소리를, 정말 들을 뻔했다.
“게스트로 오고 나서 고정 출연을 희망하는 가수들이 많아요. 김태우 씨는 ‘이렇게 살며 늙는 게 소원’이라도 했고요.” 담당 작가의 말처럼 가수에게 지방을 유랑하며 노래 부르는 가인의 삶은 분명 낭만일 것이다. 심지어, 저녁 식사로 신선한 회가 나온다면 더더욱. 숙소 옆 바비큐장에서 “서울에서 먹던 회와는 다른”(소진) 회를 먹으며 원기를 회복한 출연진은 또, 노래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이젠 이정을 위한 건반까지 준비됐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 옆에는 바로 바로 원하는 악보를 뽑을 수 있도록 프린터도 갖춰졌다. 가요로 ‘Heaven’을 처음 들은 종현도, ‘비 내리는 영동교’로 시작한 나윤권도, 막내 민아도, 이젠 익숙한 거리의 악사 폼이 나온다. 녹화가 시작됐던 4월 18일이, 19일로 넘어가는, 아주 조용한 자정 즈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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