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는 알쏭달쏭한 그룹이다. 상업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전시하지도 여성적인 매력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섹시 콘셉트나 터프한 콘셉트는 더더욱 아니다. 대신 f(x)는 멤버들 각각을 강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로 나누어 놓았다. 귀여운 설리, 도도하고 차가운 크리스탈, 보컬리스트라는 이미지의 루나, 톰보이 스타일의 엠버, 여성적인 매력과 무용이라는 특기로 알려진 빅토리아 등 f(x)는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이 아직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것은 멤버들의 개성 때문에 f(x)가 그룹의 일관된 이미지를 보여주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명확한 타겟을 공략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 최고의 장점이 오히려 대중성의 단점이 된 셈이다.

f(x)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이런 문제를 특별히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으로 인지도를 높였을 뿐, 멤버들에게 작위적으로 공통된 특성 같은 것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난해한 가사와 파격적인 전개를 가진 ‘NU 예삐오’를 타이틀로 삼았다. 대중성을 위해 쉽게 우회로를 택하는 대신 뚝심있게 f(x)만의 색깔을 밀어붙인 것이다. ‘NU 예삐오’는 데뷔곡 ‘LA CHA TA’ 보다 더욱 파격적으로 나서면서 오히려 화제가 됐고, ‘NU 예삐오’의 독특하고 긴장감 있는 완성도 또한 대중들에게 인정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f(x)의 첫 정규 앨범 가 데뷔 이래 처음으로 음원 차트를 석권하고 오프라인 앨범 판매량에서도 의미 있는 판매량을 보인 것은 흥미롭다. f(x)는 여전히 파격적인 `피노키오`를 타이틀로 내세웠고 분방한 멤버의 이미지를 크게 바꾸지도 않았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큰 도움을 줬다 해도 싱글이 아닌 앨범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인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앨범을 가득 채운 독특한 개성들

f(x)의 ‘피노키오’는 샤이니의 ‘루시퍼’를, DSP와 주로 작업해 온 스윗튠의 ‘아이’는 가장 걸그룹 다운 노래다.
f(x)가 드디어 대중에게 받아들여진 이유 중 하나는 ‘피노키오’의 완성도일 것이다. 거의 한 음으로 이루어진 듯한 최소한의 멜로디와 강한 비트의 돌출, 알쏭달쏭한 의미의 가사, 여러 곡을 분해·해체해 재조립한 것 같은 SM 특유의 작법은 여전하지만, 곡 자체가 아예 낯선 스타일은 아니다. 이미 히트했던 샤이니의 ‘아미고’, ‘루시퍼’ 같이 비슷한 스타일의 곡을 통해 대중들은 ‘피노키오’를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후렴구가 독특하다. 귀에 한 번에 걸리는 멜로디는 아니지만, 운을 맞춰 입에 붙는 가사로 후렴구의 멜로디를 보완하여 오히려 매력을 상승시켰다. 각 멤버의 강렬한 개성도 대중들이 설리, 빅토리아, 엠버 등 멤버의 특징적인 캐릭터에 익숙해지자 팬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장치가 됐다. 특히 제 자리를 찾은 엠버의 성장으로 더욱 강조된 멤버들의 다양한 개성은 앨범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멤버들의 뚜렷한 개성은 같은 그룹이 한 앨범 안에서 전혀 다른 색깔의 곡을 불러도 어색함을 주지 않는데 크게 기여한다. 처음부터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색깔을 가진 그룹이다 보니 앨범 안에서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곡에 따라 보컬의 구성을 바꾸거나 특정 캐릭터를 가진 멤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유롭게 그룹의 색깔을 변신시켜도 위화감이 없는 앨범이 된 것이다.

실제로 비교적 단일하고, 통일성 있는 음악적 색깔을 유지했던 기존의 SM 소속 가수들의 앨범과는 다르게 에 수록된 곡들은 저마다 완전히 다른 색깔이다. 에 수록된 ‘아이스크림’의 연장선상에 있는 ‘빙그르’는 히치하이커 특유의 리듬감이 통통 튀는 발랄한 하우스 댄스곡으로 그 어느 걸그룹의 곡보다 소녀적인 상상력이 빛난다. 히치하이커 외에도 SM은 앨범을 더욱 다양한 색깔로 채우기 위해 페퍼톤스와 스윗튠 등 강한 개성을 가진 외부 작곡가를 적극적으로 기용한다. 페퍼톤스가 선사한 ‘Stand Up!’은 마치 페퍼톤스의 앨범을 듣는 듯 밝고 건강한 노래다. ‘아이’는 DSP 소속 걸그룹들의 노래를 주로 작업한 것으로 유명한 스윗튠의 곡으로 지금까지 나온 f(x)의 댄스 넘버 중 가장 대중적이고 걸그룹다운 곡이라 오히려 눈길을 끈다. 항상 다른 걸그룹과는 다른 음악적 성향을 보여온 f(x)이기 때문에 이렇게 대중적이고 걸그룹다운 곡이 오히려 새로운 시도가 되는 것이 재미있다. 다른 아이돌이라면 지나치게 산만한 구성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의 곡들은 f(x)의 개성과 맞물려 최근 아이돌의 앨범 중에서도 손 꼽을만한 수작이 됐다.

특히 에 페퍼톤스와 스윗튠의 참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곡을 좌지우지 하는 영향력을 가진 역량 있는 보컬 대신 걸그룹 위주로 곡을 선사하거나, 보컬의 음색이나 톤을 더 중요시하는 곡을 쓰는데 능하다. f(x)의 변신이 가능한 이미지와 개성은 페퍼톤스나 스윗튠처럼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곡을 써내는 뮤지션과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피노키오’-‘빙그르’-‘아이’-‘Stand Up!’이 앨범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된 이유다. 그밖에도 루나와 크리스탈의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두 발라드 곡 ‘Beautiful Goodbye’, ‘So into you’와 강렬한 SM표 하이브리드 록넘버라고 할 수 있는 ‘Dangerous’나 걸스힙합인 ‘My Style’ 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는 다 시도해본 것 같은 이 앨범은 감상 중에 통일성이나 일관성에 대한 걱정 따윈 떠오르지 않는다. 각각의 곡은 모두 다른 색깔을 가졌지만, f(x)의 독특한 색깔이 모든 곡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f(x)만이 가능한 새로운 길

SM은 f(x)의 앨범을 통해 여러가지 실험을 했고, 그 모두에서 성공, 혹은 일정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성과는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아이돌 그룹이 써온 전략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명확한 컨셉으로 음악, 가사, 안무, 패션 등을 기획해 분명한 타겟을 노리는 것 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분방함 또한 걸그룹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매력임을 앨범에서 음악으로도 증명했다. f(x)는 그들만의 방법론으로 기존 걸그룹과는 다른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는 포화 상태에 이르러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걸그룹에게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길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이돌 그룹의 새로운 진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f(x)는 지금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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