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아무리 지금 날 좋아한다 말해도 그건 지금 뿐일지도 몰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에게’는 서태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로 센세이션의 주인공이 됐고, ‘하여가’를 발표한 2집은 롱런을 결정지을 앨범이었다. 그리하여, ‘너에게’의 마지막이 서태지의 또 다른 당부로 끝나는 건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네 순수한 맘 변치 않길 바래.”
그 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악마 숭배설, 표절시비, 은퇴, 상업성 논란, 안티 서태지, 기타 등등. 그 사이 누군가에게 서태지는 추억이 됐고, 누군가는 서태지의 음악만 듣게 됐고, 누군가는 떠났다. 지금 자신을 서태지의 열성적인 팬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란 그 모든 논란과 사건들을 견디면서 20년 동안 “순수한 맘”이 변치 않았다는 의미다. 그들은 지금도 서태지의 새 음반을 사려고 줄을 서고, 그를 삶의 지표로 여기고, 그가 팬들에게 언제나 진실할 것이라고 믿는다.
한 시대의 상징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지금
서태지가 만약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이다. 그들 외의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이혼은 며칠이면 지나갈 수다꺼리다. ‘서태지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는 인터넷 사이트 ‘서진요’는 “이지아가 온 국민의 비난을 받고 있는 지금 나서서 진실된 공식입장을 밝히는 것이 한 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했다. 하지만 서태지와 이지아의 일이야말로 그들의 사생활이고, 누구도 내막을 알 수 없다. 두 사람과 그 주변인 몇몇을 제외하면, 둘의 이혼 소식에 상처받을 사람들은 서태지의 팬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언론으로부터 더욱 상처받기를 요구 받는다. 언론은 서태지의 재산 규모를 추측하고, 당사자는 물론 매니저의 가족관계까지 파헤친다. ‘너에게’의 ‘너’가 팬이 아닌 이지아일 것이라는 추측 기사를 보는 팬의 마음. 그들이 20년 동안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들이 파헤쳐지고, 부정당하고 있다.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서태지와 팬의 관계는 스타의 사생활이 그나마 보호되고, 뮤지션과 팬들이 비즈니스 논리 이전에 순수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던 시대의 산물이다. 연예 매체가 24시간 내내 기사를 쓰고, 스마트폰, SNS, 유튜브로 모든 스타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지금, 누구도 서태지처럼 열성 팬에게 ‘신’이 되기는 어렵다. 서태지와 그의 팬덤은 ‘1990년대 체제’라 해도 좋을 그 시대를 보존하던 거대한 섬이었다. 많은 매체가 서태지 팬들의 반응을 주시하는 기사를 내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언론에서는 그들의 반응은 물론, 심리마저 분석한다. 언론은 모두가 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제시하고,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 언론이 만든 폭로 게임의 무대 위에 오른 건 서태지만이 아니다. 서태지를 믿으면 믿는 대로, 실망하면 실망하는 대로 기사거리가 된다. 이번 일이 연예 매체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이슈가 된 건 단지 서태지 한 개인의 유명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 시대를 상징하던 무엇이, 또는 어떤 관계가 그렇게 구경거리가 됐다.
언론의 좋았던 시절은 가고 있다
그러나 종언을 고하는 것은 그 시대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우상이 숨겨왔던 결혼 사실이 밝혀졌을 때 충격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태지의 상황이 어떤 것이든, 그 부분에 대한 팬의 상처는 서태지의 책임이다. 하지만 서태지의 팬들이 수많은 추측 보도까지 봐야할 이유는 없다.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이 알려진 뒤, 언론이 새롭게 밝혀낸 팩트는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가로 확인된 건 미국 법원에서 그들의 이혼을 판결했다는 것 뿐이다. 소송의 핵심인 위자료 청구와 재산분할 문제도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보도하지 못한다. 아무리 취재해도 팩트를 밝혀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신 ‘소설’을 쓰고, 네티즌의 도움을 얻는다. 두 사람에게 자녀가 있다는 보도를 거리낌 없이 내놓았고, 네티즌이 과거 누군가 쓴 인터넷의 팬픽이 이지아가 쓴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면, 그것을 아예 사실로 확정했다. 정우성이 이정재와 술을 마셨다는 것도 애초에 트위터를 통해 알려진 것이었다. 어떤 언론도 서태지와 이지아 본인에게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대신 실명 없는 ‘최측근’을 등장시킨 기사를 쓰고, 그동안 모아둔 서태지의 주변 자료들을 터뜨리는 데만 급급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은 단지 뮤지션들에게만 행복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 때 몇몇 언론은 연예계에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가졌었고, 스타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매체는 많아지고, 스타들은 점점 더 언론대신 홈페이지와 트위터로 입장을 밝힌다. 네티즌의 취재력은 종종 언론을 놀라게 할 정도다. 뮤지션이 좋았던 시절이 가듯, 언론이 좋았던 시절도 가고 있다.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은 언론이 그나마 지난 시대의 영향력을 남겨둔 순간에 터진 마지막 특종이다. 이 불꽃놀이가 끝나면, 언론은 서태지만큼의 스타도, 독점 취재할 수 있는 정보원도 사라지는 시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순수한 맘’으로 믿을 존재도, 그 믿음의 증거를 확인시켜줄 언론도 없는 시대. 새 시대가 기어이 오고 있다. 별로 기대하고 싶지 않지만.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