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엉겁결에 왕이 된 조지 6세, ‘버티’ (콜린 퍼스)는 후자다. 그가 원했던 삶이란 토끼 같은 두 딸,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안락한 왕궁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래 왕이 되었어야 할 형 에드워드 8세(가이 피어스)가 이혼녀인 심프슨 부인과 세기의 러브스토리를 탄생시키며 왕위를 포기하자 그는 원치 않는 왕좌에 앉아야 한다. 게다가 심각한 말더듬 증상을 안고 살아가는 그에게 방송을 통해 국민을 만나야 하는 ‘20세기 왕’이란 직업은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면, 직업을 바꾸시죠.” 재야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는 말더듬이 남편의 치료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엘리자베스(헬레나 본햄카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럴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다. 그녀의 남편, 버티의 직업은 ‘영국 국왕’이기 때문이다.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며 실의에 빠진 국민들은 왕의 육성을 기다리고, ‘온 에어’ 사인이 기다리고 있는 방송 스튜디오를 향하는 이 말더듬이 왕의 발걸음은 사형대로 가는 ‘데드맨 워킹’과 다르지 않다.

브리티시 킹 갓 탈렌티드


3월 17일 개봉한 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였던 조지 6세에게 벌어진 일이라는 실화로서의 무게,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는 기대감을 내려놓는다면 훨씬 보기 편한 연설이다. 오히려 영국적 근엄함의 상징이었던 배우 콜린 퍼스가 선보이는 유머와 위트를 즐기고, 제프리 러쉬가 이끄는 ‘멘토 스쿨’의 디테일한 레슨과정에 귀 기울이는 편이 올바른 관람법이 될 것이다.

“역사상 가장 엄숙한 왕”이 될 위기에 처한 조지 6세는 자신의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다수의 저명한 의사들을 만난다. 그러나 정작 로그는 호주 출신의 실패한 배우이자 제대로 된 학위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전쟁후유증으로 인해 말을 더듬게 된 병사들을 치료하며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자신만의 치료법을 구축해나간 그는 목구멍 바깥을 단련하는 치료보다는 그 안의 상처 입은 영혼을 달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임을 안다. 그리고 그는 버티의 입을 막고 있는 ‘그것’의 존재를 끄집어낸다. 모든 치료가 거대한 왕궁이 아니라 누추한 로그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이유, 결국 는 어떤 왕의 눈물 나는 장애 극복기가 아니라 신분과 출신을 넘어 멘티와 멘토로 만난 두 남자의 유쾌한 우정의 탄생기다.

글. 백은하 o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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