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방송된 SBS 의 마지막 회는 법의관 윤지훈(박신양)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정병도(송재호) 원장님의 명예도, 국과수에 대한 신뢰도 진실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라고 선언했던 그는 결국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진실을 구했다. 그래서 결말을 예상했든 예상치 못 했든 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거세게 치면서 끝을 맺었고,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도 중요한 일인지 말하고 싶었다”던 장항준 감독의 메시지는 20부작 드라마를 관통했다. 법의학 장르물의 외피를 두르고 2011년 현재 한국 사회의 환부와 그 뒤에 숨은 절대 권력의 심장까지 겨냥한 이 대범한 드라마의 창조자, 장항준 감독-김은희 작가 부부를 만났다.

지난 주말 의 최종 원고를 넘겼다고 들었다. 기분은 좀 어떤가.
장항준 : 시원하다.
김은희 : 섭섭한 건 없다. (웃음)

“처음 드라마를 구상할 때부터 결말은 윤지훈의 죽음이었다”

이 인터뷰는 마지막 회가 방송된 다음 날 공개되는데, 엔딩 때문에 어떤 의미로든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김은희 : 처음 이 드라마를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결말은 윤지훈의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의 서윤형(건일) 사망사건과 결말이 맞물리게 해 놓고 그 사이에 다른 사건들을 집어넣었다. 그 전에 모든 증거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윤지훈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다. 법의학자니까 자신의 몸에 증거를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고, 그래서 강서연(황선희)이 자기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거다.
장항준 : 박신양 씨에게 작품 들어가기 전에 결말을 설명해 주고 어떤지 물어봤더니 너무 좋아하더라. 만약 엔딩을 바꿔서 지훈이를 안 죽였으면 박신양 씨가 더 난리였을 거다. 왜 죽이기로 해 놓고 안 죽이냐고! (웃음)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격도 예상했을 텐데.
김은희 : 김형식 감독님이 부검 장면을 굉장히 리얼하게 찍으시는데, 시청자들이 윤지훈의 부검 신만은 유가족의 마음으로 보게 될 테니 너무 자세하게 보여주면 안 된다고 부탁드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와 법의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하려던 건 10여 년 전이라고 들었다. 사실 이 소재를 드라마로 구현하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꼭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장항준 : 우리 둘 다 지상파 드라마는 처음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색다르고 남들이 안 했던 걸 해 보고 싶다는 게 컸던 것 같다. 드라마의 장르적인 외연도 넓혀 보고 싶었고.
김은희 : 사실 가장 큰 딜레마는 부검이라는 작업이 극적으로는 재미가 없다는 거였다. 일하시는 분들 말씀을 직접 들어보면 현장에 나가는 일도 드물고, 부검하고 며칠 뒤 부검소견서 넘기면 끝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얘기를 포기할 순 없고, ‘왜 자꾸 부검의가 현장에 나가냐’는 말도 들었지만 드라마니까 그냥 한번 끝까지 밀어 붙여 봤다.

그런 면에서 국과수의 드라마 제작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장항준 : 처음에 지원 받으려고 찾아갔을 땐 반응이 굉장히 시니컬했다. (웃음) 국과수에도 다양한 부서가 있는데 우리에게 우호적인 분은 소수였고, 어떤 분들은 “나는 반대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우리가 이런 걸 협조해줘서 뭘 얻는지 모르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욱해서 마구 떠들었다. “드라마라는 건 현실에서 있지 않았던 이야기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건데 그렇게 치면 에선 임금님 계란 후라이 부치던 여자들이 권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라며. (웃음) 결국 원장님으로부터 협조 허가를 받았다.
김은희 : 사실 국과수 시스템상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결과를 조작하거나 하는 건 불가능한데 ‘픽션이니까’ 라면서 이야기를 썼다. 서준석 법의학 부장님께서 호의를 가지고 대본을 감수해 주셨는데 가끔 “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요? 아…안되는데.” 하시면 “드라마잖아요!” 하면서 넘어갔다. (웃음) “우파와 좌파 모두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부딪치는 식으로 가고 싶었다”

작품이 방영되는 도중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이나 집배원 사망 사건 등 은근히 을 연상시키는 실제 사건들이 발생해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항준 : “싸인 돋네” 같은 리플을 본 적이 있다. (웃음)
김은희 : 그런데 사실 이런 사건들은 언제나 있어 왔던 거다.
장항준 : 전에도 뉴스에선 “국과수는 내일 오전 부검 결과를 발표하고 어쩌구 저쩌구” 했지만 그동안 쓱 흘려들어왔다면 이제는 탁 멈춰서 듣는 거다. 사건 기사를 쓸 때 “현실판 이 왔다” 고 하는 기자들도 있으니까. 그런데 사실 어지간한 의문사는 모두 국과수를 거친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이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죽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실제로 국과수에선 1년에 5천 건 이상 부검을 한다. 우린 그 중에 몇 건을 보여준 것뿐이다.
김은희 : 우리는 일단 사람이 죽어야 시작되는 드라마라서. (웃음)

전체를 관통하는 큰 사건이 서윤형 사망 사건이라면 트럭 연쇄살인, 미군의 총기 살인, 재벌 회장의 독극물 살인 사건 등 가지가 되는 에피소드를 배치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고민을 했나.
김은희: ‘사회를 해부한다’는 주제가 있으니까 권력층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 보고 싶었다. 시작은 왜 윤지훈 같은 천재 법의학자가 좌천되었는지를 보여준 거고, 연쇄 살인 사건은 장르 드라마에서 기본적으로 활용되는 아이템이다. 그러다 한국의 또 다른 절대 권력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미군 얘기가 나왔고, 기업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생각에 대기업 이야기도 다루게 됐다. 사실 중간의 일본 에피소드는 갑자기 넣게 된 거다. 그런데 은 범인이 나쁜 놈이니 처단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에서 벗어나 범죄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은 어떤지에 대해 꾸준히 환기시키려 했던 것 같다. 사건과 동시에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푸는 건 어땠나.
장항준 : 당연히 짚어줘야 하는 문제를 대사로 푼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원래부터 마음에 있으면 되니까. 예를 들면 미군 사건을 두고 내가 김은희 작가한테 진짜 잘했다고 하는 게, 그 사건을 에피소드로 만든 이유는 마지막에 정우진이 하는 대사 때문이었다. “당신이 미군이라서, 당신이 우리와 피부색깔이 달라서 체포하는 게 아니다. 당신을 체포하는 이유는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기 때문이다. 단지 그 뿐이다.”
김은희 : 그러니까 에피소드를 하나 만들 때 그냥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고,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시작하는 거다.
장항준 :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장면이 윤지훈과 이명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화다. 윤지훈이 “인종, 나이, 이런 거 없이 부검대에 올라오면 다 똑같은 사람이다. 이 세상에 어떤 누구도 누구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 하면 이명한은 “백악관 한마디에 수만 명이 죽는 세상”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으니 현실을 인정해라, 너는 이상주의자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하는 장면인데, 우리의 생각이 가장 많이 투영된 장면이다, 이명한이 ‘난 그냥 돈이 좋아’ 하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파는 우파 나름의 논리를 갖고, 좌파는 좌파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부딪치는 식으로 가고 싶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비겁한 방관자”
서윤형 사망사건의 용의자 강서연을 여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의 딸로 설정한 이유는 뭐였나.
김은희 : 미군과 비슷하게 절대 권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장항준 : ‘저런 사람이 나라를 맡게 된다니?’라는 서스펜스가 있지 않나.

그래서 딸의 살인 사실을 은폐하려는 강중혁(박영지)이 유세를 하면서 “강한 대한민국”이라고 얘기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하는 “강하다”라는 것은 권력 앞에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거짓도 경우에 따라 진실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장항준 : 그런 사람들이 얘기하는 ‘발전, 경쟁, 부강한 나라’ 같은 가치의 이면에는 사실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수단 자체는 조금 희생을 감내해도 상관없다는 논리도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슬로건 자체로 굉장히 위험한 인물이란 걸 보여준 거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잃는 것이 너무나 많지 않나. 그들이 침묵했다면 다경의 동생도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을 거고 지훈 역시 목숨을 잃지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가게 한 건 어떤 의도였나.
장항준 : 나는 군중의 속성이 ‘비겁함’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하나 피를 봐야 분위기 대충 보고 (웃음) “야, 이거 뒤집어지겠거니” 생각하고 일어난다. 이 드라마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윤지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사실 이명한이 악인이고 윤지훈이 선인이면 나머지는 비겁한 방관자들이다. 그래서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걸 어렵게 지켜 나가는 사람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해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좀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은희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국과수 법의학 부장으로 처음 진실을 밝힌 황적준 교수님이라는 분이 있다. 그 시절 그런 행동은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그렇게 억울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이 가려졌겠나. 그리고 취재 중 만난 부검의 중에는 원래 국과수에 계시다가 현장 검안을 많이 다니기 위해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분도 계셨다. 현장에서 직장온도 하나만 잘못 측정해도 범인을 놓칠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을 꼼꼼하게 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시는 거다. 그렇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여쭤본 게 ‘나쁜 법의관과 좋은 법의관은 무엇인가’ 였는데, 대답의 표현은 다 다르지만 결국 좋은 법의관은 ‘포기를 모르는 법의관’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 누구도 모르지 않나.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죽은 사람 밖에 모르니까 계속 보는 거다. 현장 사진을 조금 더 보고, 시신도 한 번 더 열어 보고, 그 지난한 과정을 끝없이 거친다.

윤지훈의 대사 중 “나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입니다”도 거기서 나온 건가.
장항준 : 그렇다. 박신양 씨가 굉장히 여러 차례 부검을 참관하고 법의관들과 먹고 자며 대화도 녹음하고, 그 분들 사모님까지 만나봤다. 그 자료와 자신의 생각들을 메일로 정리해 보낸 걸 인쇄했더니 백 몇 십 장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어느 법의관의 부인이 하신 말씀인데 마지막 회 대사에도 들어갔다. 매일 새벽에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항상 ‘아침에 일어났을 때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라는 말을 한다는 건데,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긍정적으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는 거지.

인터뷰, 글. 이승한 fourteen@
인터뷰.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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