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배우가 있다. SBS 에서 차강진(고수)의 고교 시절 모습을 연기하며 “관심은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 네가 눈에 들어오네”라며 물끄러미 소녀를 바라보던, 한 음료 광고에서 빈 벽을 향해 사랑 고백을 연습하다 정작 상대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엉뚱한 소리만 내뱉은 뒤 도망쳐 버리던 그 소년, 김수현은 그 축복받은 배우 가운데 하나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캐릭터가 사람으로 옮겨온 것처럼 담백한 이목구비에 빛이 반사되지 않을 것처럼, 새까만 눈동자의 그는 웃을 때도 울 때도 보는 이에게 순도 100%의 감정을 전달한다.

고등학교 시절 소극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극단에서 수업을 받은 것을 계기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김수현은 MBC , KBS 와 SBS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거쳐 지난해 SBS 에서 성모(박상민)의 아역을 맡아 작품 초반의 무게 중심을 잡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연기를 하면서 많이 욕심내고 고민하는 건, 캐릭터로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저거 좀 묘하다, 제법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래서 눈빛이나 목소리에 몰입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최근 KBS 에서 첫사랑 혜미(배수지)를 따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뒤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해가는 산골 소년 송삼동은 그가 “나도 삼동이랑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 예술 고등학교 학생 역인만큼 다양한 무대를 선보여야 하는 부담에 대해서도 그는 “실제로 제가 삼동이처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지만, 열심히 준비해왔고,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작품 속에서 송삼동이라는 인물이 자라고 있는 만큼 배우 김수현 역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에서 가수 출신 연기자들 못지않은 춤과 노래 실력을 보이며 최근 OST ‘Dreaming’을 발표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한 그가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앨범들을 추천했다.
1. 김현식의
“보통 ‘김현식’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내 사랑 내 곁에’잖아요. 그래서 그 곡이 실려 있는 김현식 선배님의 6집 앨범을 구해 듣게 됐는데 수록곡이 전부 다 좋았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곡은 ‘추억 만들기’인데 에서 제가 연기하는 송삼동의 마음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가사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김현식 선배님 특유의 목소리와 감성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가사는 슬프지만, 노래에 담겨 있는 애틋함에 오히려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앨범이에요.”
2. 부활의
“고등학교 때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는데, 그때 제 가슴을 적셔줬던 노래가 바로 부활의 ‘사랑할수록’이었어요.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차분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보컬이 계속 귓가를 맴돌면서 마음을 울리거든요. 노란색 앨범 표지 안에 흑백 필름으로 멤버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앨범의 타이틀이 ‘기억상실’이고, 표지에는 “기다림을 억누른다는 건 지나간 상황을 뛰어넘고자 실행하는 처음이다”라는 글귀가 있어요.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괜히 멋있다고 느꼈죠. (웃음) 그 낭만적인 감성,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멜로디가 당시 제 감수성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3. 김현철의
“이라는 제목부터 어딘지 모르게 설레고, 풋풋한 느낌이 드는 앨범이에요. 많은 분들이 이 앨범에 실린 노래 중 ‘춘천 가는 기차’를 좋아하시고 저도 그렇지만, 그만큼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 더 고르자면 바로 ‘까만치마를 입고’에요. 눈을 감고 가사에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그 상황이 그려지고, 나도 모르게 웃게 돼요. 까만치마를 입고 내 앞을 말없이 지나가는 그녀라니!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그 순간의 떨림이 나에게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에요. 까만치마를 입고 내 앞을 지나가는 그녀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웃음)”

4. 화이트의
“언젠가 화보 촬영을 하면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7년간의 사랑’을 듣게 됐어요. 당시에 들었던 곡이 리메이크 곡이었다는 것을 알고, 원곡이 담긴 앨범을 찾아 들어보게 됐죠. ‘그대도 나 같음을’, ‘사랑 그대로의 사랑’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역시 ‘7년간의 사랑’을 제일 많이 듣게 되더라고요. 7년이라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과 그들이 함께 만들었을 추억이 부러워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5. 서지원의
“1996년에 발매되었으니까 요즘 제가 즐겨 듣는 음악들 중에서는 제일 최신 앨범이에요. (웃음) 故 서지원 선배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 때문인지 앨범에 수록된 한 곡 한 곡이 다 마음을 울려요. 특히 ‘내 눈물 모아’는 애절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에 반해 계속 반복해서 듣곤 해요. 일기를 쓰듯 담담하게 풀어내는 가사이지만 너무나 간절해서 정신을 차려 보면 하던 일도 멈추고 노래에만 집중하게 되죠. 단 몇 분 동안 재생되는 노래가 이처럼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던 곡이에요.”
“욕심이 많은 편이라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어떤 장르에서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그래서 김수현의 출연 작품은 믿고 볼 수 있게 하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재능만큼 넘치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김수현에게 촬영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우선, 밀린 잠을 푹 자고 싶어요. (웃음) 시험기간에는 평소 하기 싫어했던 일들도 다 재미있을 것 같잖아요. 지금이 딱 그래요. 미뤄 둔 방 정리도 하고 싶고, 연락 뜸했던 친구들한테 괜히 문자도 한번 보내보고 싶고, 영화도 보고, 운동도 하고, 자전거 타면서 봄바람을 먼저 느껴보고 싶기도 해요.” 그리고 성년을 훌쩍 지났음에도 묘하게 앳된 느낌이 남아 있는 스물넷의 남자아이 김수현이 덧붙였다. “그런데 막상 끝나면… 그동안 너무 친해져서 헤어지기 아쉬운, 삼동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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