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지영 씨가 MBC Drama 에서 털어 놓으신 가슴 아픈 사연에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예전에 희귀병을 앓아 고생했다는 말씀을 SBS 을 비롯한 몇 몇 토크쇼에서 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저는 그 얘기를 마치 고질적인 편도선이라든지 천식 같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질환쯤으로 가볍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수술도 여러 차례 했다고 분명 밝히셨지만 그게 여덟 번이나 되는 죽음을 넘나드는 대 수술이었다고는, 진찰을 맡은 의사로부터 “못 고쳐요, 이건. 죽겠네”라는 잔인한 소리를 들으셨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어느 누구보다 구구절절한 사연이었지만 지영 씨의 표정이 워낙 대수롭지 않은 양 편안했던 지라 어두운 상처를 감지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대표작인 MBC 나 SBS 를 비롯한 극중 이미지는 물론, 평소의 모습 자체가 워낙 당당하고 여유로워 보였다는 것도 한 몫 했을 테고요. 하기야 불과 며칠 전, KBS 에 뮤지컬배우인 동생 김태한 씨와 동반 출연했을 적에도 어린 시절 병명조차 알지 못하는 희귀병을 앓았던 이력을 언급하신 바 있지만 하도 화기애애하고 유쾌해 보이는 남매지간이어서 그런지, 그때도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걸요.
그간 시련이 얼마나 깊었나요
어릴 적 앓으셨다는 질환이 성인이 되기까지 살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질 정도로 심각한 혈관이 엉겨 붙는 희귀병이었다죠? 혈종으로 등이 부풀어 오르는 바람에 친구들에게 낙타라는 놀림을 받아 등교를 중단한 경험까지 있으셨다니 어린 마음에 상처가 정말 깊었을 테지요. 특히나 목욕탕에서 한 할머니가 무심히 던진 “아이고, 얘는 꼽추인가 보네?”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그 후 이십년이 넘도록 공중목욕탕 출입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는 얘기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메더군요. 지금껏 밖에서는 아예 간단한 샤워조차 피하며 살아오셨다니 더구나 연기자 입장에서 그간 얼마나 많은 불편이 있었겠어요.
의 MC 방현주 아나운서의 진단대로 지영 씨는 칼란 지브란의 ‘가장 강한 영혼은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는 명언이 제격인 분이지 싶어요. 유서를 수십 장을 써가며 죽음을 준비했던 가슴 아픈 병력을 지닌 지영 씨지만 그로 인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을 갖게 되셨다죠? 그리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습관도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오늘 반드시 만나고, 일단 만나면 평생 다시 못 봐도 후회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는 말씀, 저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해 말에는 해를 넘기기 전에 한 번 만나자고 했다가, 그 후 새해가 되면 뵙자고 했다가, 급기야 설 지나고 만나자는 식으로 약속을 차일피일 미뤄놓은 분들이 한 둘이 아니었거든요. 지영 씨 말에 혹여 무심히 세월을 보냈다가 후회로 남을까봐 당장에 차례로 약속을 잡는 중이랍니다.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또한 성공의 원천은 가족이라는 말씀, 역시 가슴을 찌르더군요. 목욕탕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는 지영 씨를 보며 “괜찮아, 할머니가 몰라서 그러신 거야. 네가 이러면 할머니가 더 미안하시지”라고 하셨던 담대한 어머니, 그 오랜 투병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딸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던 어머니께서 마지막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결과를 접하고는 실신까지 하셨다죠? 이제 내 자식이 살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자 맥이 풀려 버리셨나 봅니다. 수술을 할 적마다 내 딸이 과연 깨어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셨을 어머님의 속은 아마 숯검정 모양 까맣게 그을어 있었을 거예요. 너무 아파서 차라리 날 죽여 달라고 절규하는, 손발이 다 묶여있기까지 한 딸을 내색 않고 지켜봐야만 했을 어머님의 속이 오죽했겠어요. 지영 씨 어머님과는 일변하게 자식이 맞닥뜨린 불행 앞에 담대하기는커녕 아이보다 훨씬 조급함을 보이는 나약한 엄마였던 저로서는 어찌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더군요. 언젠가 아이가 다리 골절로 수술을 하게 됐을 적에 불길한 예후를 전하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저는 엉엉 울고 아들아이는 엄마인 저를 오히려 위로했었거든요. 어쨌든 그런 어머니의 가르침과 보살핌 덕에 지영 씨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수술비를 묵묵히 감당하셨던 아버지께서 IMF 시절 사업에 실패하는 불운을 겪게 되셨지만 그로 인해 가족이 똘똘 뭉쳐 난관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 아니겠어요? 남들 앞에 쉽게 내보이기 어려웠을 마음 속 그늘을 선선히 드러내주신 지영 씨께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무엇보다 부모란 자식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특히 부족함이 많은 엄마인 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으니까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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