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계의 전원일기.’ tvN 에게 붙여진 별칭이다. 케이블 채널이 4년 동안 출연자들의 변동도 거의 없이 여덟 개의 시즌을 제작했다는 건 그 자체로 역사적인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박수 받아야 할 인물은 만날 남자한테 차이고 상사한테 성희롱당하며 눈물에 번진 마스카라 만큼이나 얼룩진 인생을 버텨 온 여자 주인공 이영애(김현숙)다. 그래서 에서 이영애의 장밋빛인지 시궁창인지 모를 인생에 헌사를 보낸다. 그리고 영애씨의 4년을 정리한 연대기, 이영애를 괴롭혔던 그 모든 남자들에 대한 공개 수배가 준비됐다. 험난하고도 잔혹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막돼먹은 영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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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 씨, 아니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너무 편해서요. 저도 언니하고 참 비슷한 점이 많거든요. 저도 남동생 있는 장녀구요. 술 좋아하는 직장 여성이거든요. 언니 엄마처럼 저희 엄마도 겉으로는 소리 지르고 구박하지만 속정은 참 깊으세요. 걸핏하면 엄마한테 등짝 맞고, 툭하면 술 마시고 필름 끊기는 언니를 보면서 세상에 나만 그러는 거 아니구나 하고 많이 공감했어요. 그래서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 85%를 담아 편지를 써요. 나머지 15%는….. 음, 저 지금 솔로거든요. 장 과장님과 헤어지면 찾으러 오세요. 미안해요. 제가 좀 격해졌나봐요.

참, 장 과장님과 화해는 했어요? 승진 준비한다고 언니한테 웨딩 드레스 고르는 일까지 혼자 하게 한 건 백 번 잘못했어요. 하지만 언니, 내 말 들어봐요 언니. 그렇다고 과장님 첫사랑 현주씨 얘기를 먼저 꺼내면 어떡해요. 없어 보이잖아요. 그런다고 과장님이 언니 서운한 마음 다 헤아려줄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장 과장님, 남들 다 눈치 챌 만큼 언니가 티 나게 좋아해도 원준이랑 잘해보라고 부추기고, 여자가 수줍은 말투로 ‘시작했어요’라고 말해도 그게 마법인지도 모르는 남자잖아요. 과장님이 크리스마스 날 감자탕 집에서 프러포즈할 때는 정말 경악했어요. 그 프러포즈를 단 번에 승낙한 언니는 참 대인배에요. 하긴, 큰 일 보다 화장실 변기 막히게 하고 만취해서 자기 차에 오바이트 하는 여자를 받아준 장 과장님도 대인배에요. 참 대단한 천생연분이시다. 그죠?언니를 너무 좋아하지만 성질머리는 좀 고쳐 보는 거 어때요?
<막돼먹은 영애씨

하긴 장과장님은 정말 좋은 남자에요. 언니가 그동안 만난 남자들에 비하면요. 첫사랑 치국선배는 이제 연락 안하죠? 언니가 맨날 돈 빌려주고 비싼 코트 사주고 저녁상 차려주던 남자요. 그 남자 결혼 생각 없다면서 미국 갔잖아요. 하긴 그래도 언니는 잘생긴 회사동료들한테 모두 고백 받았으니까 보상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언니를 ‘못 생긴 친구 1호’라고 부르던 산호 오빠가 장 과장님 보는 앞에서 언니한테 고백한 건 정말 어메이징했어요. 그러고 보니 언니는 언니 좋다던 아저씨들은 다 차고 잘생긴 남자만 골라서 연애했네요. 아, 언니한테 기습 키스한 지순 오빠도 있었구나. 미안해요.

아무튼 저는 회사 들어와서 연애 한 번 못하고 있는데 언니는 그렇게 연애가 끊이지 않는 거 보니까 정말 매력있나봐요. 그래도 욱하는 성격은 고치시는 게 좋을 거에요. 언니 속 긁어놓던 맞선남이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키위주스에 침 뱉다가 누구 만났어요? 원준이랑 장 과장님, 언니가 아무리 술주정 부려도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이 벙찐 표정으로 쳐다본 거 기억나요? 어차피 이틀도 못갈 금주, 다이어트 결심만 하지 말고 성격개조프로젝트를 한 번 시도해 봐요. 이게 다 언니를 위해서 하는 말인 거 알죠? 미안해요.

그래도 대머리 독수리 사장님과 윤 과장님한테는 더 세게 나가도 못 본 척 할게요. 언니가 생수통 갈고 복사기 고치는 동안 두 남자는 가관이데요. 사장님은 만날 ‘덩어리’라고 놀리고, 윤 과장님은 옆에서 ‘센스쟁이’라고 거들고, 지원 언니하고 같은 원피스 입고 온 날에는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웃고. 결국 그 원피스 찢어져서 후줄근한 티셔츠 사 입고 왔을 때는 버릇없는 후배까지 비웃었잖아요. 그래요. 그 사람들은 언니가 만든 비듬 들어간 식빵, 침 뱉은 홍삼, 구두 굽 문지른 녹차티백을 먹을만 해요. 늘 먹을 때마다 맛있다잖아요? 그리고 언니는 참 인간미 있어서 좋아요. 지원 언니한테는 막돼먹은 짓을 안 하잖아요. 잡히지도 않는 뱃살 억지로 움켜쥐면서 다이어트 해야 된다고 잘난 척 하고, 장 과장님과 진도 나가게 해준다고 커플여행 가서는 윤 과장님과 ‘핫’한 밤 보내느라 정신없었던 지원 언니요. 아, 언니도 새해 첫 날 장 과장님과 좋은 밤 보냈죠? 비록 세트 속옷은 못 챙겼지만, 겨드랑이 제모라도 하고 왔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언니 겨울 되면 겨드랑이 신경 안 쓰잖아요. 아, 프라이버시죠. 미안해요. 그래도 언니를 보며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몰라요
<막돼먹은 영애씨

그래도 언니, 전 언니 때문에 얼마나 큰 힘을 얻는지 모른답니다. 언니가 남자한테 실연당하고, 직장상사한테 깨져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날 때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금요일 날 언니를 만날 때마다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어요. 원래 행복은 상대적인 거잖아요. 언니가 있으면 저는 그래도 행복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계속 그렇게 살아주시면 안돼요? 언니, 정말 아버지 손잡고 예식장까지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 하긴, 설날 아침까지 잠적했다가 언니네 집을 찾아왔던 장 과장님 표정을 보니까 그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미안해요. 그래도 언니를 믿어요. 영애 언니 화이팅!

P.S 요즘 원준이랑 연락 안 되죠? 얼마 전에 가수 데뷔했거든요. 언니가 늦잠 자면 건너뛰는 아이라인 두껍게 그리고선 다른 여자한테 반지 끼워주던데요?

<막돼먹은 영애씨


글. 이가온 thir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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