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무엇을 했을지, 대체 이 배우는 어디서 온 건지 궁금했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조성하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한껏 지어 보이며 하늘을 가리켰다. 성균관의 아이들을 아낀 인자한 정조(KBS )나 젠틀하고 지고지순한 재벌 2세(MBC )로만 알고 있었던 그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마치 김윤석과 하정우의 인줄로만 알았던 영화에서 누구보다 도드라졌던 그의 반전처럼. 물론 조성하는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배우는 아니다. 뮤지컬을 하며 고민도 했고, 오랫동안 연극을 했으며 아침 드라마와 주말 연속극의 지나가면 잊혀지는 배역도 거쳤다. 그리하여 연극 무대를 거쳐 드라마로, 영화로 옮겨 갈 때마다 몸집이 커지는 중년 배우들의 어떤 그룹에서 현재, 가장 핫한 인물이 되었다. 미팅 때문에 연극을 시작한 소년이 작은 디테일만으로도 설득력을 가지는 배우가 되기까지를 조성하가 시종일관 발랄하게 들려줬다.
* 이 기사에는 영화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0년을 누구보다도 알차게 보낸 배우인 것 같다. 부터 영화 와 최근 까지 연이어 성공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성하: 그렇지만 방송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출내기 배우고, 영화도 고작 몇 년 안 된 신인 배우다. 올해의 목표는 신인상을 노리는 거다. (웃음) “나 같이 평범하고 발랄한 사람이 왕을 하려니…”
신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조성하라는 배우를 처음 본 건 2006년이다. (웃음) KBS 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곁에서 지켜보고, 황진이와 은호 도령을 이어주려는 악공 엄수는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연기 내공이 만만치 않더라. 그 전에도 오랫동안 연극을 해온 걸로 알고 있는데.
조성하: 프로 데뷔는 90년에 뮤지컬 로 했다. 뮤지컬은 노래가 생명이니까 노래에 힘을 좀 실어야겠다 싶어서 성악 지도도 받고, 춤은 재즈와 발레를 배웠다. 그렇게 하다가 뮤지컬이 나하고 맞느냐 안 맞느냐를 좀 곰곰이 생각했는데 안 맞더라. 내가 다른 분들에 비해서 팔다리가 짧아서… (웃음) 10년 후에 이 길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이거 안 되겠다, 극단에 들어가서 제대로 연기 수업 받아서 1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서울예대에서부터 연극을 전공했다. 서울예대 출신 배우들을 보면 고등학교 연극부-예대 연극과-연극-영화 식의 루트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 연극을 시작한 건가.
조성하: 서라벌 고등학교 연극반 출신이다. 고등학교 진학해서 서클 선배들이 후배들을 뽑을 때 일주일에 미팅 네 번 시켜준다고 해서 시작했다. (웃음) 다른 데는 미팅을 한 번 내지 두 번을 시켜준다고 했는데 여기는 최하 네 번이라는 거다. 역시 세다, 센 데 가야지 해서 들어갔는데 첫 날부터 ‘빠따’만 맞고 미팅은 한 번도 안 시켜주고. (웃음) 그런데 하다보니까 청소년 연극제 같은데서 상을 받으면서 장학금도 받고 표창장도 받고, 학교에선 나름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다보니까 또 적성에 맞더라. 그래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맹목적으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조성하라는 사람은 아주 단순한 친구다. (웃음) 지금 에 같이 나오고 있는 조민기 씨도 고등학교 동기다. 고등학교 때 그 친구 하고도 연극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나눴다.

미팅 얘기가 아니고? (웃음)
조성하: 그 친구는 부족한 게 없었던 모양이더라. 여자가 늘 있었던 건지. (웃음) 주로 연기 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하는 일 중 하나가, 오늘 대학로에 가서 어떤 연극을 볼 것이냐였다. 한 달에 많게는 20편, 적게는 10편. 늘 가서 극장 앞에 가서 선배님들께 사정을 해서 공연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꿈을 키워서 배우가 됐는데, 연극판이 힘들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 않나. 10년 가까이 연극을 하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으니까 생활에 굉장한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조성하: 서른 살 넘어서인가 연봉이 20만원, 30만원 이런 식이었다. 당연히 많이 힘들 수밖에 없다. 시간 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고. 근데 조금 철이 늦게 들어서 (웃음) 돈에 대해 개념이 없었다. 결혼을 해도 산업 전선에 늦게 발을 들여놓았다. 연극을 하면서 혼자 있을 때는 돈이 필요한 줄 몰랐다. 늘 선배들 만나면 먹을 게 해결되고 잠자리가 해결되고, 혼자 몸을 의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결혼하고 애가 생기니까 돈의 필요성에 대해 절실히 생각하게 되더라. 이걸 어떻게 연계해서 일도 하고 돈도 벌 것이냐. 그래서 좀 더 대중적인 문화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하게 됐다. 아직도 그런 과정 속에 있다. 아직도 신인배우고, 갈 길이 멀다. (웃음)

연극을 하면서 고생을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드라마에서는 유난히 배역 운이 따라줬다. 의 엄수부터 KBS 의 스승 이수나 의 정조까지.
조성하: 내가 그렇게 무게감 있는 사람이 아닌데 엄수를 잘 소화를 한 게 방송 쪽에서는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담당하는 큰 형님, 아버지 같은 면모를 지속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계속 놀라고 있다. (웃음) 사극을 하면서 여태까지 배우들과 다른 식의 화법, 늘 봐 왔던 그런 패턴의 연기 기술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쭉 그렇게 해왔는데 에서 왕을 해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의 정조는 정말 맞춤옷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본인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는데 정작 스스로는 의외였나 보다.
조성하: 아니 뭘 나 같은 사람이 왕을… 그냥 신하나 아무거나 시켜주지. (웃음) 그래서 김원석 감독이 ‘선배님, 이번엔 왕을 해주셔야 합니다’ 하길래 ‘왕 말고 다른 거 없어? 무슨 왕인데?’ 했더니 ‘정조입니다.’ ‘야, 정조랑 세종은 쉬운 왕이 아니지 않냐’ ‘선배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이러는 거다. 그런데 상대역을 김갑수 선배님이 하신다길래 재미있겠다 싶었다. 연구해보자 했지. 사실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왕의 가장 큰 그림자는 유동근 선배님 같은 분들인데 나 같이 평범하고 발랄한 사람이 하려니… (웃음) 그런데 의외로 첫 등장부터 정조에 대한 사랑을 표현 해주셔서, 끝나는 순간에는 어마어마한 느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덕분에 2010년을 잘 마무리 했다.“앞으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자긍심이 발동하지 않을까”

조성하의 2010년이라면 뿐만 아니라 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성하: 는 작업 자체가 늘 만만치 않았다. 일단 하나에서 열까지 나홍진 감독이 쉽게 넘어가지 않으니까. 그러다보니 배우들도 욕심이 나고. 그 많은 좋은 배우들이 욕심을 내고 감독이 욕심을 내다보니 계속 해서 작업은 아주 높은 양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가 아니었다면 정말 약이 올랐을 거 같다. 내가 출연했기 때문에 앞으로 언제든지 얘기가 나왔을 때 자긍심이 발동하지 않을까.

태원 역은 오디션 경쟁률이 800대 1이라고 들었다. 배역을 만나기까지 녹록치 않았을 거 같은데.
조성하: 사실 란 작품을 하는 줄도 몰랐다. (웃음) 어느 날 사무실에 오디션을 보라고 통보가 왔나보더라. 그러니까 회사에서 ‘조성하 선배님은 오디션을 안 봅니다’ 한 거다. 몇 번 통보가 또 왔는데 안 가니까 그 쪽에서 그럼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 그래서 갔다. (웃음)

아무래도 조성하를 태원 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나보다. (웃음)
조성하: 그건 모르겠고, 한 사람이라도 더 보고 싶었겠지. 김윤석도 하정우도 한국에서 손꼽히는 배우고, 나홍진도 손꼽히는 감독이고. 이 셋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뽑는 건데, 우리나라에서 난다긴다하는 배우들은 다 관심이 있을 거 아닌가. 그 많은 이들 중 나도 한 사람이었겠지. 처음에 보자고 해서 갔는데, 가기 전에 쪽지 세 장이 왔다. 할 얘기가 없더라. 감독은 생각이 다르겠지만 배우가 쪽지 세 장 보고 두 시간 반이 넘는 영화의 무엇을 분별할 수 있겠나. 그래서 얘기를 했더니 수긍을 하시더라. 한 달이 넘어가서 대본을 보냈길래 보고 다시 만났다. 대본을 가지고 얘기하고, 그 대사들로 실연을 해 보이고, 또 얘기를 하고. 감독이 두 번째 만남에서 ‘조성하 선배님과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더라. 나도 하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한다 하는 배우는 다 봤다고 하더라. 그 800명 중에 내가 1등으로 된 거지. (웃음) 안 그래도 한국의 남자배우들은 백이면 백 를 보고 질투심을 느끼겠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다.
조성하: 구남이는 구남이대로의 여정이, 많은 굴곡과 힘이 전달이 되고, 면가는 면가대로 마초적 기질, 정말 짐승으로서의 느낌, 그러면서도 찾아보면 또 인간적 면모들이 있다. 또 태원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풍성한 느낌으로 등장하고 큰 산처럼 등장하지만 결국은 너무나 찌질한 이유 때문에 아주 초라한 마감을 하게 된다. 그런 세 인물의 조합과 그 외에도 많은 조연 분들의 연기 때문에 너무 볼거리가 많은 영화다. 그리고 어디서 이런 영화를 보겠나. (웃음)

처음 태원을 글로 접했을 때 인상은 어땠나. 사실 남자배우로서 여기저기 치이면서 매우 초라한 종말을 맞는 배역은 꺼리게 될 것 같다.
조성하: 처음에 그게 느껴져서 싫었다. 찌질해서. (웃음) 태원이를 봤을 때 면가(김윤석)랑 비교하게 됐다.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상대가 파워풀한 역할이면 내가 뒤지면 안 되지 고민하게 된다. 아주 짱짱한 맛을 주면서 시작하고 싶은 데 가면 갈수록 태원이는.. 풍선을 빵빵하게 터질 거 같이 불어놓고 꼭지를 놨을 때, 피시시식 하면서 마지막에는 아주 초라하게 쭈글쭈글한 형태가 남지 않나. 태원이 그렇게 볼품이 없어지는 거다. 너무 치졸하고 너무 비굴하고. 마지막 장면의 그 대사를 빼자고 감독한테 얼마나 부탁했는지 모른다. 나 그런 배우 아니다. 나 힘 있는 배우 되고 싶은데, 나 내면으로 먹고 살고 싶지 않다. 나도 비주얼 있는 거 좋아한다며. (웃음)

특히나 태원의 마지막은 영화의 중요한 엔딩이기도 한데 그 신은 촬영도 굉장히 오래 했다.
조성하: 지하실에서 면가가 태원을 끌고 나와서 엔딩까지 가는데 면가와 태원이 죽음을 맞기 까지가 영화에서는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우리는 33일간 찍었다. 물론 하루 찍고 이틀 비오고, 하루 찍고 3일 비오고. 찍다가 비 구경하고, 찍다가 비 말리고. 그렇게 33일을 보내면서 스케줄상으로는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죽었다. 정말 죽기도 어려웠다. (웃음) 3개월이면 죽을 줄 알았는데 1년에 걸쳐서 죽은 태원이었지. 말이 11개월이지, 그 사이에 다른 작품을 하면서 템포를 가져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조성하: 하려고 한 건 아니고, 영화가 11개월 동안 갈 줄 몰랐다. (웃음) 처음에는 12월에 시작해서 2월에 끝난다고 했다. 난 단순하게 기다렸지. 그랬더니 1월이 되었는데 분위기가 2월에 끝날 수는 없을 거 같더라. 감독한테 언제 끝나겠냐 물었더니 ‘5월에 끝나지 않겠습니까’ 하더라. 그렇지? 5월에는 끝나겠지, 6개월인데. 그런데 4월이 됐는데도 끝날 거 같지 않은 거다. 그러더니 ‘아무리 늦어도 추석엔 걸어야 해요’ 이렇게 말을 하길래 그래, 네 말이 맞겠지 했다. (웃음) 그러다 또 7월이 되고 8월이 되니까 이제 누구도 확답을 못 했다. 그래서 는 거의 하고 같이 끝났다. 현장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여차하는 순간 캐릭터에 혼선이 오기도 했다. 두 작품 끝내고는 또 바로 을 들어가야 했고. 결국은 그렇게 다하게 됐는데, 나홍진 감독은 다른 욕심이 있었던 거 같다. 아무도 모르는 배우를 세상에 짠 내놓고 싶었나보다. 그런데 편집하는 2개월 사이에 다니는 데마다 알아보니까 ‘아니, 이게 아니었는데 선배님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하더라. (웃음)

“내가 김윤석보다 나은 건 왕과 멜로”

태원은 구남(하정우)이나 면가처럼 강렬한 캐릭터가 아닌데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묘하게 도드라진다. 부하를 함부로 부리던 사장이다가 면가 옆에서 조용히 눈을 내리깔거나 어깨를 움찔 거릴 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역설적으로 가장 크게 보여줬다. 그런 디테일한 설정들은 원래 대본에 있었나.
조성하: 대본에는 거의 지문이 없다. 구남을 보면 대사도 없다. 지문도 ‘산을 뛰어 간다. 구른다. 또 구른다.’ 이런 거만 써 있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그 매순간을 집중하고, 꺼리를 찾아야 하고, 계속해서 살아 움직여 줘야 한다. 태원도 별거 없었다. 대사 몇 줄 정도. 게다가 나 같은 경우는 감독과 대화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두 배우는 처음 시나리오를 기획할 단계부터 감독과 계속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작품과 함께 내면이 성장해 왔는데, 나는 얘기할 시간도 없이 바로 현장에서 만났으니까. 그래서 더 많은 대화가 필요했고 계속 뭔가를 같이 찾아가야 했다. 자꾸 기어들어가는 역이었는데도 그게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내가 처음 봤을 때처럼 영화의 완벽한 구성이 주는 힘인 것 같다. 나는 그냥 숟가락만 하나 얹었을 뿐이다. (웃음)

미니홈피를 보니까 대문에 ‘내 인생의 모래시계는 한 번에 한 알씩 내려간다’고 적어 놓았던데 본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문구 같았다.
조성하: 사람이 어느 순간에든 욕심을 내게 되어 있다. 매번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 괴롭고 힘들게 되어 있고. 학창시절과 대학로에 있을 때는 큰 역할도 많이 했는데 영화를 하면서, 방송을 하면서 늦게 인정을 받다 보니 힘들 때가 있었다. 아, 내가 더 큰 역할도 할 수 있는데 하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느 계통에 가도 세월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연극에서도 10년 몸 담고 공부했을 때 기회가 오기 시작했고 무대에서 놀 수 있는 꺼리들이 많이 생겼다. 영화도 10년 가까이 되다 보니 이제 인정해주는 분들이 생기고, 방송도 이제 5년 되어 가는데 한 10년 되면 훨씬 더 풍부하게 놀 수 있는 꺼리가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에 하나씩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뜻이다. 내 마음의 비움과 노력에 대한 표현이다.

사실 중년 배우들에게는 놀 수 있는 폭이 그렇게 넓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시아버지, 시어머니에 많이 집중되어 있기도 하고.
조성하: 나는 그런 거에 비하면 행운아다. 내 앞에서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이 바로 김윤석이다. 나랑 성장과정이 거의 엇비슷하다. 물론 능력은 그 친구가 더 있지만. (웃음) 아침 드라마도 했고, 주말 드라마도 했고, 영화를 통해서 큰 임팩트를 줬고. 저 배우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힘이 생기더라. 어찌 되었든 지금 김윤석이 서 있는 저 곳까지는 못 가더라도 그 언저리까지는 가서 좋은 모습 많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찮게 비슷한 선을 걷게 되더라. 때 사실 김윤석이란 배우를 만난 걸 굉장히 크게 감사한다.

최근의 조성하를 보면 김윤석에 비해서 확실히 비교 우위에 있는 게 멜로다. (웃음) 을 통해서 ‘중년돌’이라는 별명도 얻고, 불륜임에도 순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사랑으로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조성하: 김윤석에 비해서 많이 모자라는데, 더 앞에 있는 건 왕을 했다는 거랑, 멜로, 삼각관계를 해봤다는 거? (웃음) 애틋한 멜로로 주목을 받은 건 감사하게 생각한다. 연극을 통해서 영화계, 방송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영화에서 주연급까지 올라가는 게 상당히 쉽지 않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가까운 곳까지 올라온 건 감사할 일이고,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니 개그감이 있다. 기품 있고 위엄 있는 배역들만 봐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코믹한 캐릭터도 완성도 있게 해낼 것 같다. (웃음)
조성하: 일단 슬랩스틱으로 시작을 해서… (웃음) 워낙 코미디 프로를 보는 걸 좋아한다. 의 김대희 씨나 김준호 씨, 달인 김병만 씨도 좋아하고. 나중에 좋은 작품이 있을 때 정말 좋은 코미디를 해보고 싶단 생각도 있다. 요즘 김갑수 선배님이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니까. (웃음)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많은 분들이 날 편안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 때는 막내아들처럼, 어린 동생처럼 편안하게 재미있는 걸 제공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내가 코미디를 하면 좀 부담스러워 하실 거 같다. 일단은 에서 ‘바보 대구’로 슬랩스틱을 한 번 해봤다. 쪽에 전화까지 해서 ‘바보 대구’ 해도 괜찮겠냐고 허락도 구했는데 다행히 반응은 좋더라. (웃음)

주로 주인공의 멘토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많이 한데다 기본적으로 좋은 이미지의 배우인데, 집에서는 어떤 아버지인가?
조성하: 집에서는 그냥… 아주 만만하다. (웃음) 시간 있으면 이야기도 많이 하고. 어쨌거나 아주 만만한 아빠다.

요즘처럼 사람들도 많이 알아보고 인기를 얻게 되면 딸들이 좀 우러러 보지 않던가. (웃음)
조성하: 절대로 우러러 보지 않는다. (웃음) 아빠가 어디에 출연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느냐보다 누구와 같이 출연하느냐, 송중기나 유아인의 사인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웃음) 사인 받아다 주면 ‘아빠, 일 좀 하는 거 같다’ 그러고. (웃음) 작품을 하면서 젊은 배우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어쨌든 내가 더 많은 폭을 가지게 되고, 우리 식구들은 식구들대로 더 많은 재미와 즐거움이 생긴다. 계속 내가 더 많은 선택이 있는 조건 속에 들어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지금은 팬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인 거 같고. 많은 사랑을 표현해주시는 데 뭐라도 인사를 드리는 게 지금 할 제일 큰 일이 아닌가. 팬 카페 같은데 글이라도 한 번 더 남기고, 그 분들이 올려주신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는 게 필요하다. 어디에 살던지 사람은 마음을 주고받는 게 가장 바람직하고 행복한 게 아닌가.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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