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번째 ‘연예계 이주의 인물’은 진중권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혹은 배우 고현정일 것 같다. 고현정은 지난달 31일 대상을 수상하며 밝힌 소감 때문에, 진중권은 최근 트위터에 올린 심형래 감독의 에 대한 글 때문에 그 누구보다 많이 연예 매체에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진중권이 ‘겸손은 미덕이지 의무가 아니’라며 고현정에 대한 비난 여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두 사람의 이름을 이제 한 기사 안에서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둘이 비슷한 시기에 논란의 주인공이 된 건 우연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화제의 인물인 진중권이 고현정 논란에 대해 입을 연 것은 우연도 오지랖도 아니다. ‘자화자찬을 했나보지, 하고 넘어갈 일’이라는 그의 발언은 자신과 고현정을 부정적 이슈의 주인공으로 만든 동일한 메커니즘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고현정에 대한 옹호는 문제가 됐던, 더 정확히 말해 사람들과 언론이 문제 삼았던 자신의 관련 멘션에 대한 방어 논리이기도 하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난 한 번 불량품을 판 가게에는 다시 들르지 않는 버릇이 있어서 이번엔 봐드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말로 를 보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 역시 고현정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혹자는 보지도 않은 작품을 헐뜯었다고 비판하지만 정확히 말해 진중권은 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그가 불량품이라 평가한 것은 이고, 그에 대한 기억 때문에 를 보지 않겠다 말한 것뿐이다. 물론 이것이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다. 의외로 가 진중권에게도 재밌는 코미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정법일 뿐, 그에게 그 영화를 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급함 때문에 좋은 작품을 놓쳤다면 그건 그의 손해일 뿐이다. 결국 진중권에 대한 비난 역시 뉘앙스에 대한 불쾌함의 문제로 귀결된다.

여론의 오해, 문제의식 없는 언론이 부추긴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직관적으로 불쾌할 수는 있다. 하지만 듣기 조금 불쾌하다고 해서 옳지 못하거나, 사과나 수정을 요구해야할 발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룸(살롱)에 가면 자연산을 찾는다더라’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말이 문제가 되는 건 그저 불쾌해서가 아니라 여성 성형을 비하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그 옳지 못한 부분에 대한 반박을 통해, 대중이 느낀 불쾌함은 하나의 여론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여론은 대중이 느낀 감정 혹은 직관적 생각의 평균치가 아니다. 수많은 사적 개인들의 의견들이 나름의 근거를 가진 상태에서 싸우고 절충하며 나름의 논리 체계를 가진 명제가 됐을 때 그것을 여론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진중권과 고현정에 대한 수많은 산발적 비난은 있을지언정 이를 비난 ‘여론’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공론장 안의 논의 과정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이 일련의 사태의 진정한 문제는 상당수 대중이 그 둘을 비난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슈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이 이런 비난을 아무 고민 없이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유통하고 논란을 키우는 과정에 있다. 불특정 다수의 의견을 제한적으로 선택해, 비난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방패삼고 근거삼아 특정인을 압박하는 기사를 쓰는 것은 본말이 뒤집힌 경우다. 대중의 비난이 있다면 그 현상의 근거를 따지는 것이 먼저지, 그것을 근거삼아 논리를 진행하는 것은 난센스다. 오히려 전통적인 언론의 역할 중 하나는 대중이 느낀 직관적 감정들을 합리적 언어로 정리해 공론화하는 것이지 않은가? 본인들이 가진 상당한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진중권과 고현정의 발언은 사적인 차원이라 해도 조금 성급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명인의 성급한 사적 발언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건, 문제의식 없는 공적 언론의 영향력이다. 그 힘 앞에서 누구나 진중권처럼 꺾이지 않고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현정은 ‘그저 기분 좋아진 여배우의 어리광이라 생각해주셔요’라고 트위터를 통해 해명해야했고, 그나마도 일부 언론은 논란 사흘 뒤의 때늦은 해명이라고 공격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연예인이든 누구든 침묵할 권리가 있다는 상식은 이 압박의 메커니즘 앞에서 종종 무력하다. 이처럼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도 매체의 힘은 제법 세다. 하지만 그 힘이 매체의 권위와 비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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