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득일까요, 실일까요? 개인차야 있겠지만 토크쇼에서 빼어난 예능감을 발휘해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인지도까지 높인 제국의 아이들의 황광희 군이라든지, 아예 주말 버라이어티쇼 고정 자리에 투입된 애프터스쿨의 리지 양이나 슈프림팀의 쌈디처럼 예능의 블루칩으로 등극한 케이스를 보면 더할 나위없는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말 한 마디로 오해를 사 두고두고 비난거리가 되는 몇몇 경우를 보면 차라리 출연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더군요. 새겨 들어보면 그다지 이해 못할 말도 아니건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발췌해 꼬집고 또 꼬집으려 드는 게 대중들의 심리인 모양이에요. 그래서 연예인들 중에서는 그토록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꺼리는 이들도 많은 게지 싶어요. 자칫 잘못했다 뜻하지 않게 명성에 흠을 입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배우 신현준 씨의 MBC ‘오늘을 즐겨라’ 출연은 의외였습니다. 하루 나오는 초대 손님도 아니고 아예 붙박이 출연이라니,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게 훨씬 많다 여겨져서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실제 ‘오늘을 즐겨라’에서 보여주는 신현준 씨의 이미지는 레드카펫 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더군요. 편집 탓인지도 모르지만 ‘오늘을 즐겨라’를 통해 이루어지는 유명 선수와의 대결 중 패인의 태반이 신현준 씨의 실책으로 비춰지는 실정이고, 게다가 매번 ‘체육학과 출신임에도’라는 단서가 붙다보니 여간 허당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거든요. 회가 거듭되며 입은 숱한 부상으로 몸 상태도 요즘 최악이시라고 들었어요.
신현준 씨의 배려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 이봉주 선수의 모교인 천안 성거초등학교 학생들과의 1:190 하프 마라톤 대결을 위한 조 편성 때 신현준 씨가 조장이 된 5조 아이들에게서 나온 노골적인 탄식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그들이 열렬히 원했던 젊은 피 서지석 씨나 이특 씨에 비해 체력적으로 열세일 게 너무나 빤했으니까요. 더구나 정준호 씨와 신현준 씨 중 조장으로 누굴 원하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한결같이 ‘정준호!’를 연호했죠? 같은 연령대인 정준호 씨에게조차 밀리다니! 아무리 어린 아이들의 반응이라 해도 충분히 심정 상할 수 있는 일이련만 너털웃음을 지으며 쿨하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신현준 씨의 여유로운 성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어요.사실 ‘오늘을 즐겨라’를 보고 있노라면 신현준 씨의 여유 자적한 배려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연기자 후배인 서지석 씨에 대한 배려도 그래요. 신현준 씨나 정준호 씨야 이미 배우로서의 입지가 확고하니 좀 망가져 준다 해도 본분이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아직 성장 중인 연기자, 서지석 씨의 입장은 다르지 않겠어요? 그런 점을 고려해 서지석 씨에겐 에이스와 러브라인을 맡기고 다소 구질구질한 역할은 두 분이 알아서 맡아주시는 거, 다 눈치 채고 있답니다.
‘오늘을 즐겨라’ 출연 결정, 잘하신 겁니다
얼마 전 김태원 씨가 MBC 에서 의미 있는 심사평을 해서 화제가 되셨죠? 밀림에는 사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기린도 살고 하마도 살아야 한다고요. 그 말씀처럼 예능에도 굳이 웃기는 사람만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 경기에서 각기 포지션이 다르듯 예능에서도 웃음을 터뜨려주는 슈터가 있다면 중간에서 적절히 조율하는 역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아마 그 역을 지금 신현준 씨가 하고 계시지 싶습니다. 한동안 고전 중이었던 김현철 씨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도 이 프로그램부터였고, 정형돈 씨 역시 MBC ‘레슬링 특집’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해 ‘미친 존재감’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는 ‘오늘을 즐겨라’였거든요. 반 박자쯤 느린 김현철 씨나 정형돈 씨를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칭찬해주는 멤버들 덕에 기대 이상 선전할 수 있었던 거죠.
마치 정글과도 같은 주말 예능, 피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오늘을 즐겨라’가 갖는 남다른 점은 아마 이 배려라는 덕목일 거예요. 지난 마라톤 특집만 해도 그래요.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190명과 박빙의 대결을 펼친 이봉주 선수는 진정 존경할 마라토너시더군요. 마라톤이 누가 누굴 이기기 위한 경기가 아니라 함께 달리기 위한 경기라는 게 실감이 났어요. 코스 배정 오류로 혼자 뛰게 된 여자 후배 어린이가 혹여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봐 일부러 속도를 늦춰가며 함께 손을 잡고 달려준 이봉주 선수의 훈훈한 배려도 고마웠고, 즉석에서 다문화 가정 소녀 다희 양의 “외갓집인 파라과이에 가고 싶어요”라는 새해 소망을 이뤄준 신현준 씨의 마음 씀씀이에 또 한 번 고마웠습니다. 공항에서 다희네 식구를 배웅하며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제가 더 행복합니다”라고 하시던 장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오늘을 즐겨라’ 출연 결정, 잘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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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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