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메이저리그 그만두고 일본으로 간다며?
정말 유명한 소식인가 보구나. 너도 알고.

심지어 이승엽이랑 같은 팀이라며.
그렇지. 이번에 이승엽이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옮긴 오릭스 버팔로스라는 팀이야. 박찬호까지 입단하게 되면서 말 그대로 한국 역대 최고의 투수와 타자가 한 팀에서 뛰게 된 셈이지.

그런데 일본 야구보다는 메이저리그가 더 유명한 거 아니야?
당연히 그렇지? 그럼 이제 예전보다 못하게 되어서 일본으로 오게 된 건가?
좀 냉정히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예전처럼 메이저리그에서 10승 이상을 거두고 주요 선발투수로 활동하던 시기라면 굳이 메이저리그를 떠나진 않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만큼 못해서 퇴출된 건 아니야. 지난달에만 해도 메이저리그 4개 구단에서 영입 제의가 있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것처럼 어디서 야구를 하느냐보다 어떻게 야구를 하느냐는 부분에서 일본을 선택한 거 같아.

일본에서 하면 메이저리그보다 뭐가 좋은데.
무엇보다 선발투수로 나올 수 있다는 거지. 아무리 현대 야구에서 투수진의 역할이 분업화되었다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투수 최고의 보직은 역시 선발투수니까.


선발투수는 뭐가 좋은 건데.
간단하게 말하면 경기 처음부터 던지기 시작해서 가장 많은 이닝 동안 팀의 승패를 책임지는 자리라고 보면 되는 거야. 9회까지 진행되는 야구에서 최근의 류현진 같은 특급 선발투수가 6~7회까지 2, 3점 정도만 내주면 그만큼 팀이 승리할 확률은 굉장히 높아지지. 보통 선발투수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보직으로 꼽는 게, 팀이 이기고 있을 때 마지막 1, 2회 동안 실점하지 않고 승리를 확정짓는 클로저야. 선동렬이 일본에서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의 보직 역시 클로저였고. 하지만 정말 1회 동안은 천하무적인 클로저라고 하더라도 이미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등장할 이유가 없지. 그런 면에서 선발투수가 앞에서 얼마나 잘해주느냐가 팀 승리의 관건인 거야. 그렇기 때문에 선발투수가 실점을 적게 해서 이기고 있다가 클로저가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승리까지 갔을 때, 1승의 기록은 선발투수가 갖고, 클로저는 승리를 지켰다는 뜻의 세이브를 갖게 되는 거지. 그럼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는 선발투수를 못하고 일본에서는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물론 박찬호 본인은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를 하고 싶었겠지만 실질적으로 그게 어려워진 상황이었어. 선발이 아닌 만큼 승수를 쌓기도 쉽지 않았고. 그래서 선발투수가 보장된 리그로 옮기려 했겠지. 그게 일본인 거고.

그럼 일본에서는 박찬호가 승수를 쌓을 수 있는 건가?
우선 선발이라면 다른 보직보다는 승수를 쌓을 확률이 높겠지. 그리고 박찬호가 분명 전성기는 지난 상황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십 년 이상 활약한 경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오릭스의 관계자가 두 자릿수 승수, 즉 10승 이상을 기대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게 단순한 인사치레라고 생각하진 않아. 물론 일본 야구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단계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추신수가 보여준 것처럼 A급 메이저리거의 능력이라는 건 정말 대단하거든. 박찬호는 단순히 메이저리그에 있던 투수가 아니라 아시아인 메이저리그 최고 승수인 124승을 기록한 투수야. 말하자면 아시아 최고의 투수가 누구냐고 할 때 언제나 언급될 이름인 거지.

124승? 예전에 123승이라고 얘기했던 거 같은데?
거기서 1승 더했으니까 124승인 거지. 그 때 123승이 화제가 됐던 건, 일본의 노모 히데오가 세운 아시아인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과 타이를 이뤄서인 건데, 거기서 1승을 더 추가하면서 명실상부한 단독 1위가 된 거지. 본인도 말했지만 그 기록을 세우면서 메이저리그에 대한 미련을 어느 정도는 접은 거 같아. 물론 여기서 1승을 추가할 때마다 그게 그대로 역사가 되겠지만 선발이 아닌 상황에서 승수를 쌓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럼 그냥 멋있게 아시아 최고 기록을 세우고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하는 건 어땠을까?
그런 얘기가 없는 건 아니야. 사실 팬들은 선수 본인의 의지를 가장 존중하고 그가 꾸준히 활동하는 걸 반기지만, 한편으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에 대한 로망도 없진 않거든. 가령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왼손 투수 중 하나로 꼽히는 샌디 쿠펙스의 경우 소위 화려한 5년 이후 팔꿈치에 무리를 느끼자, 정말 무리하지 않고 바로 은퇴를 결정했어. 그 때문에 그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화려한 모습으로 남아있지.


그래, 그런 거. 일본에서 10승 이상을 쌓는 것도 좋겠지만 메이저리그보다 못한 리그에서 지고 홈런 맞고 그러면 팬들이 보기에도 좀 그렇지 않을까?
마음이야 아프겠지.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팬이란 건 결국 선수 본인의 의지를 가장 존중하는 법이야. 그리고 이건 좀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는데 뛰어난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가르는 기준은 최전성기 이후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린 거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흔히 몬스터 시즌이라고 해서 한 선수가 한 시즌 동안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여줄 때가 있어. 올해의 이대호처럼. 뛰어난 선수의 경우 그런 몬스터 시즌을 포함해 약 몇 년 정도 최고의 기록을 보여주지. 아까 샌디 쿠펙스의 5년에 대해 말했지만 93~97년도의 이종범이나 99~03년도의 이승엽처럼 5년 동안 정말 무시무시한 기록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어. 양준혁처럼 10년 이상 말도 안 되게 꾸준히 잘하는 선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몇 년 동안 임팩트 강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도 결국에는 하락세를 겪게 돼. 언제나 3할을 칠 것 같던 양준혁도, 언제나 30홈런 이상을 칠 것 같던 이승엽도, 언제나 40도루 이상은 할 것 같던 이종범도. 하지만 그렇게 전성기가 지나도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하면서 계속해서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잘하는 선수는 비로소 위대한 선수가 된다고 생각해. 이종범과 양준혁이 신이라 불리게 된 건 오히려 최고 전성기를 지난 이후야. 어떤 선수가 멋진 모습만 남기고 떠나길 바랄 수는 있어.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기 몫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늙어 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럼 박찬호도 이제 위대한 선수로 거듭날 때라는 건가?
박찬호는 이미 위대한 선수지. 그리고 그 위대한 선수가 또 한 번의 도전을 위해 변화를 감수하는 거고. 충분히 일본에서 잘할 거라고 믿지만 혹 10승을 채우지 못해도, 홈런을 두들겨 맞아도 그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박수쳐주는 게 맞다고 봐. 아쉬움이 있다면 기왕 메이저리그를 벗어나는 거, 좀 더 구질이 떨어지기 전에 한국으로 바로 와서 활동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뭐 어때. 그리고 이미 박찬호는 오늘로서 또 하나의 기록을 경신했는걸.

무슨 기록?
‘내일은 10관왕’ 최다 출연?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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