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것.”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타 한 대로 마음을 적시던 보헤미안은 떠났다. 언제나 ‘버라이어티 정신’을 외치며 분위기를 띄우던 야생 원숭이는 이빨과 함께 빠졌다. KBS 의 ‘1박 2일’이 ‘즉흥여행’편에서 단 자막은 그들의 현재다. 인기 정상의 오락 프로그램이 이렇게 휘청거릴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러나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 태풍으로 원래 일정을 취소하고 시작한 즉흥여행이 ‘강호동 VS 이만기‘라는 대박을 낳았듯, 두 멤버의 하차는 ‘1박 2일’을 새로운 방향으로 안내했다. ‘1박 2일’은 낮에 여행하고, 밤에 복불복으로 예능을 했다. 요즘은 미션을 통해 두 가지를 상당히 통합시킨다. ‘식도락 특집’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등산하는 건 게임이지만, 그 과정에서 각각의 멤버가 스태프들과 대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아는 건 여행이다. 과거 멤버들의 예능을 위해 제시되던 미션이 최근에는 여행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1박 2일’의 정서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모든 좋은 예능 프로그램의 조건

여행에 예능을 더하던 프로그램이 이제는 미션으로 예능의 틀을 짜고, 그 안에서 여행의 감수성을 부각시킨다. 위험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만재도 특집’에서 출연자들이 낚시를 하게 되자, 강호동은 “예능과 낚시는 안 돼”라며 걱정했다. 강호동이 이만기를 부른 ‘즉흥여행’이나 출연자들이 방송분량을 만들어야 했던 ‘6대 광역시 특집’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여행에 상당부분을 맡겼다. 그러나 그게 바로 나영석 PD다. ‘즉흥여행’처럼 여행 일정이 꼬였을 때, 나영석 PD는 직접 나서 강호동과 밥 내기를 한다. 그는 그렇게 프로그램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거기에 도달한다. 김C가 ‘1박 2일’에 준 감수성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음악여행’은 제작진이 직접 유재하의 노래를 깔면서 여행의 서정성을 일부 되살렸다. 섬에서 낙오되면 물고기라도 잡으며 예능을 하던 MC몽은 없다. 대신 나영석 PD는 ‘서울 여행’, ‘만재도’, ‘식도락 여행’, ‘6대 광역시 특집’ 등에서 출연자들에게 개별 미션을 주며 각자의 ‘1박 2일’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은지원은 놀이기구를 타는 ‘초딩’이 됐고, 김종민은 스스로 ‘1박 2일 여행단’을 만들어 관광 가이드를 자처했다. 두 명의 캐릭터가 떠난 뒤, 나영석 PD는 출연자들 스스로 뭔가 하면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기획을 제시했다.

우격다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6대 광역시 특집’에서 멤버들은 중고 책을 찾으며 부산 시민들을 만났고, 무등산에서 팬 사인회를 했다. 최근 몇 편의 에피소드에서는 밥차 아주머니와 운전기사 아저씨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1박 2일’은 어느새 출연자의 범위를 전 스태프로, 예능의 범위를 ‘1박 2일’ 팀이 아닌 여행지의 모든 사람으로 넓혔다. 이승기가 이대호를 만나는 계기는 야구를 좋아하는 ‘1박 2일’의 운전기사 아저씨로부터 시작됐다. ‘1박 2일’의 미션은 출연자들을 어떤 상황에 던져놓는 것 같지만, 꾸준히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인다. 나영석 PD는 미션을 통해 여행의 특성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1박 2일’ 특유의 감수성을 강화시켰다. 차이나타운의 사람들이 함께 줄넘기를 뛰고, 이대호와 이승기가 조개구이를 먹는 컷이 전달하는 따뜻한 분위기는 ‘1박 2일’만이 가진 정서다. 멤버들이 ‘버라이어티 정신’을 외치는 사이에도 그들 주변의 풍경을 풀샷으로 잡아내던 나영석 PD의 감수성이 프로그램의 위기와 함께 전면에 드러났다. 모든 좋은 예능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1박 2일’도 결국 ‘PD의 예능’이었고, 요즘 ‘1박 2일’은 나영석 PD가 좋은 기획자이자 뚝심 있는 연출자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웃음보다 앞서야 할 정체성

나영석 PD가 보다 나서고 있는 지금의 ‘1박 2일’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실제 여행처럼, 나영석 PD는 여행의 방향은 제시할 수 있어도 과정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강호동은 양준혁의 집을 구경하며 어떻게든 ‘꺼리’를 만들려고 했다. 반면 이수근은 이종범과 덤덤하게 밥만 먹었다. 출연자 모두가 강호동이 아닌 한, 출연자에게 여행에 대한 답을 내도록 하는 나영석 PD의 연출은 일정부분 예능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마저 생긴다. 지금 ‘1박 2일’에는 시청자들에게 회자될 수 있는 웃음의 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승기가 혼자 부산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이대호와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승기는 이대호와 강호동처럼 이대호를 상대로 토크쇼를 벌이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이 하루 사이 가까워지는 과정은 큰 웃음이 없어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나영석 PD는 미봉책을 쓰는 대신 프로그램의 비전을 정하고, 어떻게든 팀원들을 그곳으로 끌고 가면서 ‘1박 2일’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간다. 웃음은 그 위에서 쌓으면 된다. 그리고 나영석 PD는 지난주 출연자들에게 스태프 없는 여행을 제안했다. ‘1박 2일’의 스태프는 최근 ‘1박 2일’의 또 다른 출연자였다. 협상을 할 나영석 PD도 없을 때, 5명의 출연자들은 무엇을 할까. 그들이 어떤 화학작용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1박 2일’도 새로운 분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다. 여행도, 예능도 그렇다. 그리고 나영석 PD는 이 알 수 없는 예능과 여행과 인생의 결합인 ‘1박 2일’을 헤쳐 나가는 좋은 선장이다.

글. 강명석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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