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건 강동원과 고수라는 투톱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 두 사람만의 영화인 건 아니다. 극중 규남(고수)의 폐차장 동료이자 동생으로 나오는 알과 버바는 미처 예상치 못한 웃음을 영화 곳곳에 뿌려놓았고, 초인(강동원)과 규남의 대결에서 규남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알 역의 에네스 카야는 놀라울 정도의 유창한 한국어 구사로 단 한 작품 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터키 청년의 이력이,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한 건 그래서다. 다음은 ‘통역 없이’ 그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에네스 카야와의 대화 기록이다. 그는 단순히 한국말을 잘하는 수준이 아닌, 상당한 달변가였다.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제 좀 엔터테이너가 된 기분이 드나.
에네스 카야 : 아직까지 그 정도로 많이 한 것 같지는 않고, 개인적으로 생활의 색이 좀 달라진 정도? 전체 색이 달라지는 건 아니고 몇 가지 색이 추가된 느낌. 그리고 진짜 엔터테이너가 된다고 생활방식이 바뀔 거 같지는 않다. 더 바빠지긴 하겠지만.“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단어 몇 가지 빼면 이해 못할 게 없었다”
사실 이제 작품 하나를 한 거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버바 역의 아부다드 때문에 가 재밌었다고 말한다.
에네스 카야 : 솔직히 영화 찍기 전, 오디션을 볼 땐 내가 맡은 알 캐릭터의 역할에 대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사회로 처음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우리가 영화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이 미니홈피에 들어와서 재밌었다고 글도 남기고 주변 사람들도 외국인 둘이 영화 안에서 큰일 했다고 해서 뿌듯하다.
영화 안에서 굉장히 코믹하면서도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역할인데 미처 몰랐나.
에네스 카야 : 몰랐다. 그냥 폐차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둘을 연기하면 된다고만 알았다. 그리고 내가 맡은 알은 나와 많이 비슷하다. 알이 영화 속에서 기도를 하는 것처럼 나도 무슬림이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내 모습 그대로 가면서 폐차장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될 줄 알았다. 이렇게 화제가 되고,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될 줄 몰랐지.
그런 캐릭터의 프로필 말고 성격적인 부분도 잘 맞았나. 버바와는 다른 냉정함이랄까.
에네스 카야 : 감독님께서 촬영하다가 잘 안 나오면 “에네스, 넌 그냥 너답게 하면 돼”라고 하셨다. 가령 규남(고수)이 무슨 말을 할 때 싸가지 없게 반응을 해야 하면 그냥 연기하지 말고 내 모습대로 하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좋다고 넘어갈 때도 있고. 내가 싸가지 없는 건 아니지만. (웃음) 정확히 말해 나는 냉정하다기보다는 직설적이다.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그 자리에서 말하는 타입. 덕분에 알 역할 연기는 쉽게 했다.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게, 단순히 한국어 대사를 잘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의 정서를 정확히 알더라. 가령 입원한 규남에게 ‘이제 인생의 고난은 끝났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때.
에네스 카야 : 그 신에서 한 컷을 26번 간 게 있다. 대사 외우는 건 문제 없었다. 다만 그걸 어떤 감정으로 규남이에 이야기하느냐가 잘 안 됐나 보다. 감독님이 계속 시킨 걸 보면. 하지만 일단 나는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을 때 단어 몇 가지 빼면 이해하지 못할 게 없었다. “임규남 정신 차려” 할 때도 그렇고.
“터키라는 나라가 더 알려지고 사랑 받길 바라는 마음”
그런 면 때문에 외국인 배우인 당신의 이력이 궁금해지는 거 같다. 2002년 한국에 온 걸로 아는데 그 때 한국말은 전혀 몰랐나.
에네스 카야 : 몰랐다. 터키에서 수능 치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아버지께서 자기 친구가 한국에 있으니 가보겠느냐고 해서 그냥 별 기대 없이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데려가더라. 가기로 결심하고서 10일 만에 바로 왔으니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걱정이 많았다. 만약 한국어를 못 배워서 터키로 다시 들어가면 재수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미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 도착한 다음날 어학당 다니는 친구에게 책을 받아 봤는데 볼 때부터 재밌었다.
어학당을 다녔지만 그곳에서 ‘싸가지 없다’ 같은 말을 가르쳐줄 것 같진 않은데. (웃음)
에네스 카야 : 절대로 안 가르쳐주지. 나는 책을 펴고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만약 어학당 선생님들에게 나에 대해 묻는다면 좋은 대답이 안 나올 수도 있다. 숙제 한 번 안 하던 애라고. 실제로 한국어로 일기 쓰기나 문장 만들어오기 같은 숙제를 한 번도 안 했다. 대신 알던 모르던 한국 사람을 보면 무조건 말을 걸었다. 학교에서도 학교 층계참에서 무조건 사람들에게 말 걸고. 언젠가는 누구에게 말을 걸었더니 ‘터키 사람이죠?’ 그러더라. 학교에서 저 터키 학생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고 소문이 났다고. 그 외에도 터키어로 어떤 말을 생각하고 그걸 한국어로 번역해서 다음날 학교에서 써먹었다. 선생님 얼굴이 폈네요, 꽃 같아요. 이런 식으로. 그 때 많이 놀라시더라. 어디서 그런 거 듣고 왔느냐고. 그렇게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대학에 입학했다. 말도 유창하고 태도도 유쾌해서 대학 생활 하면서 학우들과 잘 어울렸을 거 같은데.
에네스 카야 : 나는 한국에 나를 맞추려 했는데 한국이 유일하게 내게 맞춰주지 못한 게 술 문화다. 우리나라에 무슬림이 대부분인데 술 안 먹는 계율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안 지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우리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라 그런 문화를 접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 왔을 때에는 술 먹는 자리는 무조건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술자리를 피하면 자리가 없지 않나.
에네스 카야 : 어찌 보면 내 학생 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1학년 시작할 때 MT를 가야하는데 선배들이 MT 가면 술만 먹고 죽는다고 해서 그냥 안 갔다. 그런데 다녀오고 나서 다들 자기들끼리 친해진 거다. 다 친하고 나 혼자 왕따고. 가끔 술자리 가면 다들 술이 조금 들어가서 “나, 에네스 너 좋아하는데 이 자식 술을 못 먹어서…” 이러다가 다음날 아는 척하면 기억 잘 못하고 어색해 한다.
무슬림으로서의 어려움이었던 건데, 그 외에도 어떤 선입관 때문에 힘들었을 거 같다.
에네스 카야 : 그게 정말 무슬림으로서 아쉬운 거다. TV에 나오는 무슬림은 폭탄 테러 아니면,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 이런 거니까. 사실 근본주의자와 다수 무슬림은 다를 텐데.
에네스 카야 : 이슬람교에서는 이유 없이는 나무도 자를 수 없다. 그만큼 생명에 대해 민감하다. 그런데도 이슬람교 하면 테러, 이런 얘기들이 나오니까. 건물 세우는데 몇 년이 걸려도 무너뜨리는데 30분도 안 걸리지 않나. 마찬가지다. 내가 방송 연예 활동을 하는 것도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성공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살던 터키라는 나라가 더 알려지고 사랑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거다. 내가 작년에 FC 서울의 귀네스 전 감독님 통역 일을 했는데 그 때 배운 게 많다. 사실 그 분이 FC 서울에서 트로피 하나도 얻질 못했는데, 트로피를 얻더라도 그만큼은 받지 못할 사랑을 받았다. 한국을 떠날 때 팬들이 새벽 12시에 나와서 눈물로 보내줄 정도라. 그게 단순히 축구를 잘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터키라는 존재를 잘 대표해서라고 본다. 만약 감독님이 한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려 했으면 나갈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본인이 한국에서 하는 일이 축구이기에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고 생각하셨고, 그러면서 터키인으로서 터키를 어떻게 대표할지 생각하셨다.
“터키에 돌아가면 한 달도 못 버틸 만큼 한국인에게 정이 들었다”
말하자면 연예 활동이 일종의 수단인 건데, 그래도 그 자체를 즐기는 마음이나 자의식이 없으면 어렵지 않나.
에네스 카야 : 나는 말이 많은 편이고, 한국에서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으로 사는 게 재밌다. 이걸 나 혼자 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과 같이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꼭 스타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면 좋겠다는 생각. 영화든 예능이든 기회가 오면 잘할 자신이 있다.
특히 예능을 잘할 거 같다.
에네스 카야 : 아, ‘1박 2일’에 내가 들어가야 하는데. (웃음) 터키에 계속 있었어도 방송 연예 쪽으로 진출했을까.
에네스 카야 : 아닐 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떤 엔터테인먼트 업체 사장님이 내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와서 모델이나 연기해보겠느냐고 했다. 그걸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걔네 맹인이래?’라고 하시더라. ‘왜? 나 못생겼어?’라고 했더니 그냥 공부나 하라고 하시더라. 터키에 있었으면 심리학 전공해서 심리 상담사가 됐을 거다.
사실 한국에서도 외국인 방송인 혹은 배우의 길이 쉽진 않다.
에네스 카야 : 나도 대학교 3학년 때부터 MBC ‘다시보기’로 방송 일을 해서 어느 정도는 안다. 외국인으로서 방송에서 성공하기란 어렵다. 일단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을 방송에서 보여주는 건 신기한 게 1순위인데, 결국 호기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방송인으로서도 배우로서도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그런 꿈은 있다. 내가 처음으로 연기로 상을 받는 외국인이 되면 어떨까. 사실 외국인 배우 몇 명을 위해 상을 신설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내가 수많은 한국 배우 사이에서 신인상 같은 걸 타기도 어렵다. 하지만 꿈을 가지면 안 될 거 없지 않나. 내가 한국 처음 왔을 때 먼저 온 터키 선배들 보며 언제 저렇게 한국말을 잘하나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선배들의 한국 친구들이 나보고 더 잘한다고 하더라. 또 방송 몇 번 나간 선배를 보며 부러워했는데 ‘다시보기’ 나가면서 그분보다 더 많이 나가게 됐다. 나는 그런 꿈을 가졌는데 해낸 거고, 또 내가 상을 받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 될지 어떻게 아나.
그렇게 유명해진다면 터키의 어떤 면을 알려주고 싶나.
에네스 카야 : 터키와 한국이 왜 형제의 나라인지, 어떻게 우정이 더해졌는지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하고 싶게 만들고 싶다. 2002 월드컵 3, 4위전에서 서로 안아주고 국기를 펴주며 좋아하지 않았나. 나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사실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그에 대한 자의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에네스 카야 : 고구려와 돌궐의 관계 이런 건 역사적으로 너무 깊게 들어가는 거고, 가장 강한 건 6. 25 참전이다. 터키는 자원입대 하는 군인들이 많았는데, 그 중 터키 정부에서 한 마을 당 한 명씩 뽑았다. 그들이 돌아와 한국이라는 나라에 정이 들어 이야기를 해줬다. 또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이슬람교에서는 자기 나라나 믿음, 명예를 위한 전쟁에서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 형제가 누워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은 사랑 받는 나라가 된다. 터키 놀러간 한국 사람들 중 80퍼센트는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밥을 얻어먹고 차를 얻어먹었을 거다.
그렇다면 직접 동시대의 한국을 사는 당신에게 이 나라에서 사는 건 어떤 의미인가.
에네스 카야 : 나는 (참전한) 우리 할아버지들 덕에 터키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편히 산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외국인으로서 편히 살 수 있는 게 미국인과 일본인이다. 그런데 형제의 나라라는 그 하나로 터키인은 외국인보다 한 단계 더 가까운 대우를 받는다. 그러면서 정이 들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보다는 한국인에게. 지금 터키에 돌아가면 한 달도 못 버틸 만큼.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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