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배 높은 어른들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을 반기지 않는 편입니다. 물론 가끔 나오셔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시고 피가 되고 살이 될 말씀을 들려주신다면, 그야 당연히 반길 일이죠. 예를 들어 MBC ‘무릎 팍 도사’에서 나직한 음성 하나로 천하의 강호동을 압도하셨던 윤여정 씨나 KBS ‘불후의 명곡’에서 누구도 범접 못할 카리스마와 열정을 보여주신 패티 김 씨처럼 가슴으로부터 우러날 감동을 주신다면 오히려 대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처럼 존경을 받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물지 않나요? 존경은커녕 눈치 없고 말 못 알아듣는 아줌마, 아저씨로 몰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예요. 선배 연예인 쪽에서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니들도 나이 한번 먹어봐’라며 버럭버럭 목소리나 높이기 마련이고요. 누구, 누구라고 꼬집어 거론하긴 뭐하지만 왜 굳이 저런 자리에 나와서 웃음거리를 자처하는지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노 촌장님의 앞날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 촌장(노주현)님께서 KBS 에 나오신다는 소식도 실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어요. 예전에 이경실 씨가 아내로, 강수정, 정선희가 딸로 나왔던 KBS ‘노家네 로망스’라는 농촌 시트콤을 하셨던 이력이 있으시지만 대본이 있는 시트콤과 순간 대처 능력을 필요로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지 않겠어요? SBS 시트콤 이후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오셨지만 전쟁터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지라 걱정이 될 수 밖에요. 게다가 걸 그룹 멤버들로 이루어진 G7은 딸 정도를 넘어 손녀벌일 테니 소통 또한 원활할 리 없고요. 아니나 다를까 중간 역할이던 MC 남희석 씨까지 하차하고 나니 혼자 겉도는 기색이 역력하시더군요. 그나마 유치리 주민이신 로드리 아저씨나 이장님이 계셔서 다행이지 그분들이라도 계시지 않았다면 어쩔 뻔 하셨을지. 가족들에게 소외받는 요즘 중년 남성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라 씁쓸했습니다.
젊은 층들은 노촌장님이 과거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지 아마 잘 모르지 싶어요. 물론 대충 얘기야 들었겠지만 크게 관심을 둘 리도 없고, 지금의 어느 누구와도 비교 불가한 원톱이셨다는 사실 또한 믿어지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일부 네티즌들에게는 한 때 대스타였던 분이 젊은 친구들과 눈높이를 맞추느라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연예인에게 잔소리 하는 모습만 거슬리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리고 G7이 유치리 주민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노촌장님이 두루 다리 역할을 해주셨다는 것도 아마 짐작 못할 걸요? 언젠가 강정과 인절미를 만들던 날 막걸리를 사들고 임기를 마친 이장님을 찾아가 치하하시는 걸 보며 G7 모르게 뒤에서 수습하고 계신 부분이 많겠다 싶었습니다. 어린 친구들과 잘 지내는 비법이 있습니다
지난번 촌장님의 초대를 받아 댁으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김태우, 김신영 씨와 G7은 촌장님께 지나치게 무심했던 자신들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더군요. 저는 무엇보다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어언 반년 너머 함께 해온 촌장님의 연락처를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그 사이 해가 바뀌고 명절도 몇 차례 지났는데 누구 하나 문자 한번 보내드리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뭐 그렇다고 그리 서운해 하실 건 없습니다. 나이 많은 이와 젊은이의 관계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다 똑 같은 거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어찌 하던 괘념치 마시고 우리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저 언젠가 MBC 에서 양희은 씨가 알려주신 ‘나이 어린 후배들과 잘 지내기’만 기억하면 될 거예요. 무조건 많이 칭찬 하고, 많이 사주고, 빨리 자리를 피해주라는 말씀, 잊지 말자고요. 특히나 지나친 잔소리와 호통일랑 부디 자제 해주십사 부탁드려요. 중년 남자들이 소외당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그 두 가지라는 거, 설마 모르시는 건 아니죠?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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