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영장은 귀국에 앞서 발부되었다.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던 2003년 9월 22일, 공항에서 그를 맞이한 인파 속에는 친지들만이 아니라 국가정보원 요원들도 함께 있었다. 70년대부터 한국 내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유럽 지역의 반체제 운동을 주도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해 남북 어느 쪽의 입장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으로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내놓은 송 교수가 북한 권력 서열 23위인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와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공안당국과 한나라당의 공세로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이라는 꼬리표를 단 송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후 수구 언론에 의해 피의 사실이 낱낱이 공표되는 광풍 속에서 ‘노동당 탈당, 독일 국적 포기’ 등의 성명서까지 발표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마주해야 할 것들


2002년에도 송 교수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를 만들었던 홍형숙 감독은 를 기획하며 ‘철학자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초상’을 그려보고자 했다. 그러나 3주 예정이었던 한국 방문 일정이 출국 금지 명령과 함께 해를 넘기고 “반성을 조금만 더 하면 풀어주겠다”는 검찰의 오만은 물론 송 교수를 한국으로 초청했던 진보 인사들마저 그에게 전향을 권유하는 불편한 아이러니까지 끈기 있게 담아내면서 결과적으로 는 ‘철학자를 철학자로 살 수 없게 하는 대한민국의 야만’에 대한 자화상이 되었다. 공안당국이나 보수 세력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중년 남성들조차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송 교수에게) 사형을 내렸으면 좋겠다” “북한으로 보내 김정일하고 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장면은 ‘친남’하지 않으면 ‘친북’으로, 간첩이나 빨갱이로 간주하고 마는 우리 사회의 좁은 스펙트럼을 섬뜩하게 드러낸다.

결국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송 교수가 4개월을 복역한 뒤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 및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리고 그 후 7년이 더 흘렀다. 그러나 한 개인의 내면에 대해 사회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는 여전히 현재적이고 가장 첨예한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다큐멘터리다.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다수의 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이 작품은 3월 18일 개봉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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