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마흔은 사소한 습관조차 바꾸기 힘든 나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마흔은 새로운 삶을 만나고 세상을 바꾸는 나이기도 하다. 1970년, 뉴욕의 증권회사 직원이었던 하비 밀크(숀 펜)는 마흔 살 생일을 맞아 더 이상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살기로 결심하고 연인 스콧 스미스(제임스 프랑코)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다. 그러나 게이라는 이유로 공공연한 모욕과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에 부딪힌 하비 밀크는 이들을 조직화하고 세력을 키우며 게이 스트리트인 ‘카스트로의 시장’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오로지 살아남을 힘을 얻기 위해 정치 무대에 뛰어든 하비 밀크는 몇 차례의 낙선과 갖은 고난 끝에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당선된다. 유명 가수 아니타 브라이언트의 대대적인 게이 반대운동과 상원의원 존 브리그스가 제출한 공립학교에서 게이 교사를 축출하는 법안 등 보수파의 동성애자 탄압으로 미국 전역이 요동치던 70년대 후반, 하비 밀크는 미국 최초이자 유일의 커밍아웃한 게이 정치인으로서 이들과 맞선다.
우리는 과연 야만의 시대에서 벗어났을까?
실존했던 인물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의 특성상 는 끝을 알고 볼 수밖에 없는 영화다. 하비 밀크는 1978년 시청 청사에서 동료 시의원이었던 댄 화이트에게 저격당해 사망했다. 경찰이 게이 바를 단속해 손님들을 끌고 가고 게이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항상 호신용 호루라기를 지니고 다녀야 했던,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생전에 이미 죽음의 위협을 감지하고 그 공포와 불안마저 녹음해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하비 밀크는 평범했던 한 인간이 얼마나 비범하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가장 훌륭한 모델 가운데 하나다.
다정다감하고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하비 밀크의 캐릭터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표현해 낸 숀 펜이 로 제 81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역시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젊은 작가 더스틴 랜스 블랙과 구스 반 산트 감독은 하비 밀크의 회상을 통해 그의 생애 마지막 8년을 지극히 정직한 방식으로 그려 나간다. 드라마틱했던 하비 밀크의 삶에 그 이상 극적인 효과를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신의 섭리’나 ‘인륜’이라는 이름하에 엄청난 야만이 자행되던 70년대 미국 사회에 온몸으로 부딪히는 하비 밀크와 그 동료들의 고뇌는 잔잔한 전개 속에서도 강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용기가 있지만 이런 모습의 용기를 지닌 사람이 있었음을 보다 많은 사람이 보아둘 필요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는 오랜 기다림 끝에 2월 25일 개봉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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