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한 번 빨리 가네. 2010년이다 싶더니 이제 조금 있으면 동계 올림픽이 열린다며?
응, ‘10관왕’을 위한 시즌인 거지. 이번 달에는 동계 올림픽, 6월에는 남아공 월드컵이니까 2010년 상반기는 정말 후딱 지나가지 않을까? 중계 보느라 잠 한 숨 못 자겠지만.
하긴, 넌 또 시뻘건 눈으로 아침을 맞겠구나. 그런데 이번 동계 올림픽은 SBS로만 볼 수 있는 거야?
아마도?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 정돈 스포츠에 관심 없어도 알 수 있는 시사 상식이라고.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되면 KBS랑 MBC는 올림픽 중계를 못 하는 거야?
현재로서 SBS가 동계 올림픽 중계권을 독점으로 확보했고, KBS는 중계는커녕 현지 취재까지 포기했으니 거의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거야? 나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방송 3사가 올림픽을 중계하지 않는다는 건 좀 이상한데?
사상 초유의 사태이긴 하지. 그래서 최근까지 KBS와 MBC는 SBS가 확보한 중계권에 대해 공동 중계를 제의하며 방송통신위원회에 분쟁조종 신청을 냈지만 SBS가 그걸 거부했고, 그에 대해선 방통위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야. 물론 과거에 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중요한 건 SBS가 단독 중계권을 확보하는 과정에 있어서 과연 페어플레이를 했느냐, 그리고 그렇게 SBS만 중계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느냐에 대한 것이겠지. 그게 궁금해?
응, 궁금해. 나름 기사를 검색해서 읽어봐도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그럼 우선 중계권 확보에 대한 것부터 얘기해보자. 올림픽 중계권은 국제올림픽위원회, 그러니까 IOC로부터 구매하는 거야.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통 중요 스포츠 중계에 있어 코리아 풀이라고 해서 지상파 3사가 일종의 연합을 맺고 하나의 주체로서 중계권을 구매해왔어. 적어도 지상파끼리 구매 경쟁이 붙어서 괜히 중계권료를 높이지 않으려는 방법인 동시에 시청자들의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지.
보편적 접근권?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단어로도 쓰이는데, 말하자면 국민적 관심이 높은 스포츠 경기나 주요 문화 행사를 공중파를 통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인 거야. 올림픽이나 월드컵, 조금 넓게 보면 월드베이스볼클래식까지 보편적 접근권이 필요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방송법에서는 국민관심행사를 일반 국민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중계방송권을 다른 방송사업자에게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가격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거야. 이걸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중계권을 가진 SBS가 합리적이고 공정한 가격으로 KBS와 MBC에게 중계권을 제공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 그럼 SBS가 제공해야 맞는 거잖아.
그런데 여기서 문자 그대로의 법조항보다 중요한 건 결국 그 조항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보편적 접근권이라는 권리인 거잖아. 그래서 SBS는 KBS나 MBC와 공동중계를 하지 않더라도 보편적 접근권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하려는 거야. 경남 지역 민방인 KNN 같은 지역 민방 네트워크만으로도 전 국민의 90%가 시청 가능하기 때문에 보편적 접근권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럼 SBS는 잘못이 없다는 거야?
그렇게 빨리 답을 얻으려고 하니까 헤매는 거야. 차근차근 따라와 봐. 어쨌든 코리아 풀이라는 구매 연합이 있는 이유는 설명이 됐지? 그리고 그게 SBS의 단독 행동으로 깨졌어. 근본적으로 방송 3사의 합의로 만들어진 코리아 풀을 깬 만큼 그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겠지? 여기서 SBS가 제시한 이유는 코리아 풀 외에도 스포츠 마케팅 회사가 구매 경쟁자로 뛰어드는 환경에서 코리아 풀이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자기네가 총대를 멨고 단독 구매를 했다는 거야. 만약 코리아 풀이 아닌 일반 기업이 중계권을 확보하면 보편적 접근권이 훼손될 테니까.
그럼 SBS가 잘했다는 거야?
여기서 약간 문제가 생기는 게, SBS가 언급한 마케팅 회사는 이런저런 상황을 다 종합했을 때 아시아 축구 연맹의 경기 중계권을 독점한 IB스포츠라고 볼 수밖에 없어. 그런데 SBS가 올림픽 중계권을 확보한 건 IB스포츠와 손잡은 덕분이거든. IB스포츠가 코리아 풀이 준비한 것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 IOC로부터 중계권을 구매하고 그걸 SBS에 재판매한 거지. 그렇기 때문에 SBS가 코리아 풀을 깬 이유는 조금 명분이 부족해. 자신들이 2009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중계에서 KBS와 MBC에게 배제되었던 불공평한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SBS가 코리아 풀을 깨고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단독으로 확보한 건 2006년이고, 그 배제 자체가 SBS의 단독 행동에 대한 패널티였다는 건 말하지 않는 것 같고.
그럼 SBS가 잘못했다는 거야?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럴까. 우선 법적인 책임만을 따진다면 SBS의 독점에는 문제가 없어. 아까 말한 것처럼 보편적 접근권 역시 훼손하지 않았고. 하지만 분명 상도덕이라는 측면에서 SBS의 행위가 깨끗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어. 물론 SBS의 주장대로 다른 방송사 역시 상도덕에 어긋한 행위를 했던 적이 있지. MBC는 엄청난 중계권료를 지불하면서 메이저리그 박찬호 경기를 중계하고, KBS 역시 IB스포츠에게 WBC 독점 중계권을 구매했던 전적이 있고. 그런 선례가 없었더라면 SBS가 올림픽이라는 거대 이벤트를 혼자 중계하겠다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진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럼 방송 3사가 다 잘못했다는 거야?
나는 이쯤 되면 방송사들끼리 잘잘못을 따지는 행위 자체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게 아닌가 싶어. 적어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중대차한 행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건 우리 시청자들의 권리라고 생각해. 코리아 풀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그것이었으니까. SBS에서는 올림픽을 위해 총 200시간을 편성한다고 하지만 각 방송국의 다양한 해설 중 입맛에 맞는 걸 고르거나 김연아 경기 외에도 동시간대 벌어지는 여러 경기 중 관심 있는 종목을 선택해서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할 때, 과연 이 모든 소동의 끝에 우리에게 남는 건 뭘까? 최소한의 보편적 접근권이 보장되는 것에 만족하고 고마워하는 걸로 끝나야 할까? 정작 이 모든 논의에서 가장 배제되어 있는 건 우리인 것 같은데 모든 방송사는 시청자의 권익을 명분으로 삼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나는 이번 사태를 보도하는 매체가 ‘사실 누가 방송하든 국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같은 표현을 쓸 때 너무 화가 나. 난 정말 관심이 많은데 말이야.
국민들이 뭔가 어필을 할 필요가 있는 걸까? 그런데 어디서부터 접근해야할지 나 같은 사람은 좀 막막하네.
안 어려워. 천리 길도 한 댓글부터인 거지.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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