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과 스위스에서 공학 공부를 하며 가끔 한국에서 음반을 내던 루시드폴이 공학도의 삶을 포기하고 한국에 정착한 뒤 발매한 4집 앨범의 제목이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니. 그에게 앨범 얘기보다 먼저 동시대의 한국은 어떤 의미였는지 물어본 건 그래서다. 3집 에 수록된 ‘사람이었네’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중동 소녀에 대해 쓰고 디지털 싱글 ‘물고기 마음’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되겠노라 말했던 그에게 과연 누가, 그리고 왜 불쌍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루시드폴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적 방법론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됐을까.
2009년 초에 한국에 돌아와 거의 온전히 1년을 보냈다. 직접 숨 쉬며 느낀 동시대의 한국은 어떤 느낌이었나. 루시드폴: 민감한 얘기일 수 있는데 일단 자본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뭔가 옛것이나 비효율적인 것을 효율적으로 바꿔가는 게 당연시되는 풍토가 된 것 같다. 그저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이 쭉쭉 올라가고 철거되고 재개발되는 지역은 늘어가고. 2009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만금이나 천성산 터널 문제를 들으면서도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 4대강 사업도 비슷한 느낌이다.
“여러 방식이 있다면 그 중 옛날 방식이 더 좋지 않을까”
말하자면 경제적 효율성이 사회적 가치를 대체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겠다. 루시드폴: 굳이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예를 들어 경희궁을 보라. 경복궁은 과거의 40% 정도밖에 안 남아있는데 경희궁은 완전히 제로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경희궁이 복원되기도 전에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초고층 오피스텔이 들어서는 거다. 그 동네 갔을 때 끔찍하더라. 광화문 광장도 너무너무 이해가 안 가는 게 그게 덩치가 큰 국가적 프로젝트 아닌가. 그렇다면 도로를 지하에 내고 그 위에 진짜 광장을 만들고 옛 것을 복원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조금 뜬금없는 얘기지만 남대문이 불탔을 땐 어땠나. 루시드폴: 그땐 솔직히 말해 별 느낌 없었다. 한국에 없어서 피부에 와 닿지 않으니까. 그런데 요즘 지나다니다 보면 환자를 보는 거 같다. 붕대를 감고 병들어 있는 모습? 뭔가 우리나라 동시대의 단면을 보는 거 같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옛 것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루시드폴: 꼭 유물이나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렇다. 예를 들어 내가 정말 못 버리던 것 중 하나가 MD 플레이어다. 1999년에 용산에 갔는데 그게 최고의 디지털 매체였다. 12개월 할부로 사서 CD에 있는 음악을 넣어 다녔는데 음질도 좋아서 되게 좋아했다. 그래서 버리기 힘들더라. 고장 나서 용산 어디에 맡겼는데 못 찾았다. 게임도 옛날 게임, 가령 같은 거 찾아본다. 퇴행적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여러 방식이 있다면 그 중 옛날 방식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이다. 악기 같은 것도 예전에 만들어진 악기가 지금까지 전승되는 건 디지털 악기로 대체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서는 아닐까.
자연스레 음악 얘기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번 4집을 들으면서 루시드폴이란 뮤지션은 어쿠스틱 기타라는 악기의 소리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단순히 최소 편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루시드폴: 나는 스스로 내 취향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사람인데 어쿠스틱 악기를 좋아하더라. 악기 자체의 음에 매료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베이스도 콘트라베이스로 했고. 모든 악기를 아날로그로 편성하는 게 로망이었는데 일렉트릭 피아노가 한 곡 정도 들어갔다. 그래도 일렉트릭 악기지, 일렉트로닉 악기는 아니니까. 방금 어쿠스틱 기타 얘기를 했지만 통에서의 울림이 좋다. 심지어는 일렉트릭 기타를 쓸 때도 할로 바디(통기타처럼 안에 울림통이 있는 일렉트릭 기타 모델)가 있는 걸 쓴다. 내추럴한 소리에 대한 욕심이 있다.“나는 내 목소리를 되게 싫어하는 편이다”
실제로 이번 음반에서도 어쿠스틱 기타나 현악 등 악기 자체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굉장히 명료해진 느낌이다. 단순한 엔지니어링의 성과인지, 지향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루시드폴: 정교하게 모든 것을 다 의도하는 뮤지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엔 ‘그냥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볼까? 이렇게 시도하니 좋네?’ 할 때도 많다. 과연 편곡이란 것이 무엇일까.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편곡이란 모든 요소가 매체에 기록되어 모든 연주인들이 보고 연주를 할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음악적 결과물이란 의도된 것을 기반으로 한 우연의 산물인 거 같다.
이번엔 특히 현악 편곡이 돋보였는데. 루시드폴: ‘레미제라블 Part 1’의 경우 코드로 노래를 만들고서 좀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현악 4중주를 넣을까 생각했다. 딱 거기까지만 내 편곡이었다. 현악 편곡자를 섭외해서 부탁하고 별다른 피드백 없이 결과물이 나왔는데 편곡이 좋더라. 그리고 녹음도 잘 됐고.
‘고등어’의 편곡도 궁금하다. 현악 편성이지만 버라이어티하기보다는 미니멀한 느낌이다. 루시드폴: 일단 현악을 쓰긴 했는데 목소리가 안 들리더라. 내 목소리의 경우 유행하는 말로 엣지가 없다.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서 귀에 잘 안 들린다. 그래서 목소리가 잘 들리게 하는 게 내 믹싱의 키다. 그걸 신경 쓰지 않으면 가사 전달이 안 되니까. 사실 현악기를 쓰겠다고 할 때 내 목소리가 가려질 거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고등어’는 첫 믹싱 때 목소리가 안 들려서 목소리 파트를 높이고 현악 파트를 줄였다. 그래야 겨우 목소리가 들렸다. 엣지가 없다고 했지만 당신의 목소리는 음악 스타일 안에서 소박하게 묻어나오는 당신만의 스타일로 느껴진다. 그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루시드폴: 나는 내 목소리를 되게 싫어하는 편이다. 분명 어떤 장점이, 다른 이가 못 가진 게 있겠지만 그만큼 핸디캡도 크다. 어쨌든 극단적인 목소리다.
그 핸디캡이 아니라면 현재 음악 스타일보다 좀 더 화려한 음악을 시도할 욕심도 있나. 루시드폴: 글쎄? 시도하면 재밌긴 하겠지. 빅밴드 같은 거. 그런데 꼭 그렇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기보다는 목소리에 엣지가 있으면 다 될 텐데 싶은 아쉬움이 더 크다. 가령 사물놀이를 도입한다고 해서 ‘깨갱깨갱’ 거리면 목소리가 전혀 안 들릴 거 아닌가. 정말 뭔가 하고 싶다면 나는 그에 따른 목소리 믹싱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 걸 많이 느낀다.
그렇다면 루시드폴 음악의 기본적 출발점을 목소리라고 보면 될까. 루시드폴: 그러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내가 노래를 잘 못하지만 그나마 잘 소화할 수 있는 음역이 있지 않나. 그 음역대의 곡을 불러야 나도 기분이 좋고 듣는 사람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부르다 ‘삑사리’날까봐 땀나고 걱정되고. 그런 걸 알면서도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라이브 할 때 힘들고 안 부르게 되는 곡도 나오고. 그러다 보니 3집 때는 (이)적이 형한테도 곡을 줬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레미제라블 part1’을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하나. 결국 내가 부르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