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끝없는 고민과 마주친다. 학생 때는 진로를, 졸업반이 되면 취업을, 직장에 들어가면 인간관계와 커리어를 고민한다. 연애는 해도 못 해도 고민덩어리다. 하지만 어른의 고민이란 부모와 나누기는 어렵고 친구에게 말하기엔 창피한 법, 그래서 말 못할 고민들로 울고 싶은 수많은 어른들은 ‘캣우먼’에게 SOS를 친다. KBS 에서 매주 화요일 늦은 밤 방송되는 ‘헉소리 상담소’와 의 ‘이기적인 상담소’가 바로 캣우먼, 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주 무대다. 진로 고민에 우왕좌왕하는 이십대에게는 “생각은 안 하고 고민만 하고 있으니 대안 없는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서 가두고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하고, 앞뒤 재느라 연애를 망설이는 삼십대에게는 “비현실적인 이상형을 만들어서 ‘완제품’이 와주기를 바라지 말고 결혼보다 연애를 시작해 보라”며 냉철하게 방향을 제시하는 그의 상담은 가슴을 쿡 찌르도록 신랄하지만 귀에 쏙 들어오게 현실적이기도 하다. “일을 통한 행복과 희열감을 느끼면서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은 마음에 미친 듯 과로를 해 댔던” 12년의 직장 생활과 결국 건강을 해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한 5년, “좋아하면 그냥 사귀기 시작하다 보니 ‘삽질’도 적잖게 했던” 연애사를 거쳐 ‘배트맨’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남자와 결혼해 두 살짜리 딸을 키우며 살게 되기까지의 평범한 실전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비범한 수준의 내공이 되었다. 그래서 라디오에서의 거침없는 말투처럼 그의 글 또한 산탄처럼 쏟아지는 생생한 충고로 가득하지만 수십 통의 이메일 가운데 사연을 하나 골라 답장하는 데는 이틀이 꼬박 걸린다. “대부분 문제의 근원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걸 잘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 자체가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나 기회를 주진 않지만, 다들 좀 더 솔직해지면 좋겠어요. 때로는 굉장히 감정적일 필요도, 굉장히 이성적일 필요도 있는데 무엇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놓아 버리는’ 경험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 주특기인 연애상담서와 직장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전기 등 몇 편의 책을 내놓았던 그는 요즘 내년쯤 출간될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질투, 욕망, 경멸처럼 숨기고 싶은, 하지만 사람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직면해야 하는 감정들을 좀 더 깊게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저는 그렇게 불완전한 인간들이 너무 좋고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그는 드라마 속에서도 ‘여자 대 남자’ 구도에서 마네킹같이 전형적인 남자의 모습보다 불완전해서 인간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날 때가 가장 섹시하다고 말한다. “드라마가 실생활보다 재미없을 때도 많은 걸 보면, 여기 나온 남자들의 구체성은 다른 드라마들이 보고 배울 필요가 있어요.” ‘마성의 남자’ 유희열과 자웅을 겨루는 통찰력의 소유자이기에 한층 무게가 실리는 추천이다.
美 (Six Feet Under)
2001~2005년
“장의사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어쩌다 보니 가업을 잇게 된 네이트(피터 크라우스)란 남자가 주인공이에요. 우유부단과 야비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그 야비한 매력이 소름 끼칠 정도로 강렬해요. 삶과 죽음을 계속 다루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도 재미있고, 인간에 대해서도 굉장히 복합적이면서 깊게 그려요. 네이트가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탈피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인간적인 모습이 정말 잘 드러나죠. 인간의 그런 ‘구리구리한’ 면을 어떻게 하면 지저분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가, 그런 게 능력인 것 같아요.”
SBS
2006년. 극본 박연선, 연출 한지승
“어떤 의미에서 진짜 연애는 결혼한 이후에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 전에 생각해야 했던 여러 가지 조건들이 서로 사라지고 난 이후이기 때문에 정말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도 굉장히 다양해질 수 있거든요. 는 그런 것들을 잘 그려낸, 연애 드라마라기보다 휴먼 드라마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남자주인공 동진(감우성)이 겉으로는 굉장히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불완전하고 날카롭고 취약한 면이 있는 캐릭터라는 게 참 매력적이었어요.”
MBC
2007년. 극본 이기원, 연출 안판석
“진짜 섹시하고 매력적인 남자는 여자에게 관심 없는 남자인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쁜 남자’는 대부분 사이비라서 자기 에고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자를 이용하거나 도망갈 구석만 찾는 남자인거고, 진짜 ‘고수’는 자기 안에 너무 푹 파묻혀 있어서 자기밖에 모르고 그 어떤 여자보다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그런 면에서 의 장준혁(김명민)은 여태까지 본 한국 드라마의 남자 캐릭터 중에 섹시하기로 치면 1위할 만하죠. 얼마나 매력 있었던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준혁 교통카드’ 같은 기념품까지 샀다니까요!”
그에게 쏟아지는 연애 상담 사연 대부분이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인 만큼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싱글들의 하소연도 구름처럼 밀려들지만 캣우먼의 대답은 명쾌하다. “크리스마스가 별 건가요. 사람들이 밸런타인데이는 상술이려니 무시할 수 있지만 크리스마스는 연말 증후군과 겹치면서 한 해를 잘 보냈느냐 아니냐에 대한 성적표처럼 느끼기 때문에 민감한 것뿐인데 거기에 속으면 안 돼요. 그냥 이브 당일 오후 세 시부터 자정까지, 아홉 시간만 버티면 된다니까!” 그 아홉 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찾지 못한다면 그가 작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단편 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또, 앞뒤로 쌓여 있는 상담 사연들에 하나씩 공감하며 자신을 돌아보다 보면 혹시 모르지 않나.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연애하고 있을지.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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