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띈다. 그것은 스타로서 더할 나위 없이 큰 장점이다. 그러나 등장하는 순간 시선을 끄는 강동원에게 그것은 일종의 굴레였다. 그가 고집 센 다혈질 청년 이재인을 연기한 MBC 에서도, 시니컬한 야심가 차강재로 출연한 SBS 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강동원의 외모였다. “밑도 끝도 없이 시나리오만으로” 출연을 결정했을 만큼 캐릭터에 의욕을 가졌던 영화 는 ‘강동원이 얼마나 망가졌는가’로 관심을 모았고, 노골적으로 그를 관음 하도록 만든 영화 은 ‘보이는 강동원’의 절정을 만든 작품이었다. 결국 태성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지는 못해도 우산 속으로 뛰어 들던 강동원의 미소만큼은 생생하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를 캐릭터의 이름을 빌어 부른 적이 없었다. 눈이 보이는 한 가장 또렷하게 양각된 것은 강동원 그 자체였으니까.
지울수록 또렷해지는 강동원이라는 존재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자신이 어떤 농도로 작품에 스며드는지 본인 스스로가 모를 리 없다. “실수하는 것을 싫어”하는 “완벽주의자”인 강동원은 자신을 두고 실험을 결심 했다. 가진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한 그는 말을 잃은 채 영화 에서 아주 그림이 되기로 작정을 했고, 접어 넣었던 혀로 눈, 코, 입을 빚어 낸 영화 는 반대로 그림이 아닌 무엇으로 존재하기 위한 시도였다. 영화 에서 사형수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자신을 재단해 넣었던 그는 영화 에서는 아예 강동원이라는 이름을 떨쳐 내려는 듯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평소보다 둔하게 살이 붙은 턱, 스타일을 잊은 헤어스타일, 신경질적이고 과장된 목소리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강동원의 흔적을 수세미로 박박 문대어 없애려는 듯 낯설고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노력들이 더해질수록 그의 존재는 오히려 움푹 파인 음각으로 위치를 알렸다. 여기, 자신을 숨기려 하는 강동원이 있어요, 라고.
그래서 강동원과 영화 의 만남은 서로에게 영리한 선택이다. 도저히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배우와 “유명한 이름은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 법”이라며 제 잘난 맛에 사는 도사의 만남은 마치 천생의 연분처럼 절묘하다. 결과적으로 요괴를 물리쳤으니 영웅이지만, 대의명분이나 인류애에 기반 하지 않아 어딘가 불량한 전우치에 질량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격투가나 샤프한 인상으로 적의 약점을 파악하는 지략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싸우는 순간에도 관람자들을 의식하는 것 같은 약간의 허세나 몸으로 돌진하기 전에 일단 말로 기세를 잡아보려는 얕은 수작이 주인공의 매력으로 긍정될 수 있는 것에는 아무래도 극악해보이지 않는 강동원의 힘이 크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파괴적이지 않은 도술이지만 십수명의 전우치가 복제되어 도심으로 쏟아지는 장면이 그 자체로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것이 강동원과 강동원, 그리고 강동원이 등장하는 장면이기에 가능 한 일이다. 지켜보는 즐거움만이 남았다
바로 그 장면은 또한 강동원이 가진 모든 얼굴을 일별 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최동훈 감독은 강동원을 캐스팅 한 이유로 “약간 기묘한 느낌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아직 강동원의 이미지는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았고, 그래서 상상의 여지를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독님이 나를 (작품에) 반영 했다기 보다는 내게서 끌어내고 싶은 무엇인가를 반영”했을 것이라는 그의 짐작은 결국 자신이 탐나는 재료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이야기다. 아직 무엇인가 더 있을 것 같은, 그래서 자꾸만 생각나는, 아무래도 눈길을 돌릴 수 없는 그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확실한 스파이스로서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그를 뭉근하게 요리할 수 있는 주재료로 다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덕분에 그는 로 스크린을 휘젓는 역동을 보인 다음 송강호와의 앙상블을 경험한 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계획 했던 대로 “군대 가기 전에 한 작품 더” 할 수 있는 일정이 진행 중이다.
운 또한 좋아 보이지만, 이 모든 스케줄을 가능케 한 일등 공신은 결국 강동원이다. “항상 작품이 끝나면 뭘 얻었나 생각을 하고, 시작할 때는 목표를 잡고 간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낭비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다못해 “내게는 중요해도 관객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부족한 부분을 결국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작품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남는다. “송강호 선배가 영화를 끌어가고 나는 조연”이라고 슬쩍 발을 빼지만 강동원은 를 통해서도 무언가를 얻어 냈을 것에 틀림이 없다. 하나씩, 원하는 것을 제 손에 모아 든 그는 언젠가 일곱 개의 드래곤 볼을 모아 온 주인공처럼 자신이 가장 원하는 큰 그림을 사람들 앞에 펼쳐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심지어 이 남자의 좌우명은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의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다. 못하는 것, 지는 것이 싫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나가는 이 남자는 이기기 위해 즐기는 자가 되었다. 우리가 할 일도 마찬가지다. 이 남자의 유혹을 즐기면 된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지울수록 또렷해지는 강동원이라는 존재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자신이 어떤 농도로 작품에 스며드는지 본인 스스로가 모를 리 없다. “실수하는 것을 싫어”하는 “완벽주의자”인 강동원은 자신을 두고 실험을 결심 했다. 가진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한 그는 말을 잃은 채 영화 에서 아주 그림이 되기로 작정을 했고, 접어 넣었던 혀로 눈, 코, 입을 빚어 낸 영화 는 반대로 그림이 아닌 무엇으로 존재하기 위한 시도였다. 영화 에서 사형수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자신을 재단해 넣었던 그는 영화 에서는 아예 강동원이라는 이름을 떨쳐 내려는 듯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평소보다 둔하게 살이 붙은 턱, 스타일을 잊은 헤어스타일, 신경질적이고 과장된 목소리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강동원의 흔적을 수세미로 박박 문대어 없애려는 듯 낯설고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노력들이 더해질수록 그의 존재는 오히려 움푹 파인 음각으로 위치를 알렸다. 여기, 자신을 숨기려 하는 강동원이 있어요, 라고.
그래서 강동원과 영화 의 만남은 서로에게 영리한 선택이다. 도저히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배우와 “유명한 이름은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 법”이라며 제 잘난 맛에 사는 도사의 만남은 마치 천생의 연분처럼 절묘하다. 결과적으로 요괴를 물리쳤으니 영웅이지만, 대의명분이나 인류애에 기반 하지 않아 어딘가 불량한 전우치에 질량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격투가나 샤프한 인상으로 적의 약점을 파악하는 지략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싸우는 순간에도 관람자들을 의식하는 것 같은 약간의 허세나 몸으로 돌진하기 전에 일단 말로 기세를 잡아보려는 얕은 수작이 주인공의 매력으로 긍정될 수 있는 것에는 아무래도 극악해보이지 않는 강동원의 힘이 크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파괴적이지 않은 도술이지만 십수명의 전우치가 복제되어 도심으로 쏟아지는 장면이 그 자체로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것이 강동원과 강동원, 그리고 강동원이 등장하는 장면이기에 가능 한 일이다. 지켜보는 즐거움만이 남았다
바로 그 장면은 또한 강동원이 가진 모든 얼굴을 일별 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최동훈 감독은 강동원을 캐스팅 한 이유로 “약간 기묘한 느낌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아직 강동원의 이미지는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았고, 그래서 상상의 여지를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독님이 나를 (작품에) 반영 했다기 보다는 내게서 끌어내고 싶은 무엇인가를 반영”했을 것이라는 그의 짐작은 결국 자신이 탐나는 재료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이야기다. 아직 무엇인가 더 있을 것 같은, 그래서 자꾸만 생각나는, 아무래도 눈길을 돌릴 수 없는 그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확실한 스파이스로서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그를 뭉근하게 요리할 수 있는 주재료로 다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덕분에 그는 로 스크린을 휘젓는 역동을 보인 다음 송강호와의 앙상블을 경험한 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계획 했던 대로 “군대 가기 전에 한 작품 더” 할 수 있는 일정이 진행 중이다.
운 또한 좋아 보이지만, 이 모든 스케줄을 가능케 한 일등 공신은 결국 강동원이다. “항상 작품이 끝나면 뭘 얻었나 생각을 하고, 시작할 때는 목표를 잡고 간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낭비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다못해 “내게는 중요해도 관객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부족한 부분을 결국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작품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남는다. “송강호 선배가 영화를 끌어가고 나는 조연”이라고 슬쩍 발을 빼지만 강동원은 를 통해서도 무언가를 얻어 냈을 것에 틀림이 없다. 하나씩, 원하는 것을 제 손에 모아 든 그는 언젠가 일곱 개의 드래곤 볼을 모아 온 주인공처럼 자신이 가장 원하는 큰 그림을 사람들 앞에 펼쳐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심지어 이 남자의 좌우명은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의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다. 못하는 것, 지는 것이 싫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나가는 이 남자는 이기기 위해 즐기는 자가 되었다. 우리가 할 일도 마찬가지다. 이 남자의 유혹을 즐기면 된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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