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얄미운 인생 같으니. 당신이 ‘엄친아’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김민식 감독의 인생사는 듣지 않는 것이 좋다. 그는 자원학과를 멀쩡히 졸업한 공대생이면서도 단지 “엔지니어가 되는 건 갑갑할 것 같아” 한 외국계 기업의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더니 “프리랜서로 통역사로 일하면 좋을 것 같아” 독학으로 통역대학원에 입학했고, 다시 영어 공부를 위해 접했던 시트콤을 본 뒤로 “시트콤 감독이 되고 싶어” MBC 예능국 PD에 합격했다. 그리고, 만들고 싶은 시트콤을 열심히 만들다 보니 어느새 MBC 청춘 시트콤의 대표 브랜드였던 시리즈를 이끌고 있었다. 시리즈의 대학생들이 취업난에 시달려도 언제나 구김살 없는 총천연색의 인생을 살았던 건, 언제나 원하는대로 선택하며 남들이 부러울 만큼의 결과를 보여준 그의 여유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민식 감독은 2년 전, 다시 잘나가는 예능국 PD의 자리 대신 드라마국 신입 연출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시트콤이 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드라마를 찍으면 그게 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김민식 감독은 용기 있게 선택하고, 과감하게 돌진하는 열혈남아는 아니다. 무표정으로 있어도 왠지 눈과 입이 웃고 있는 것만 같은 그의 표정에는 늘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지만 더 여유롭게 자신의 선택을 증명하는 사람의 유쾌함이 보인다. “메디컬 드라마를 시트콤적으로 다뤄보고 싶었던” 를 찍으며 드라마와 시트콤의 차이에 대해 배웠고, 의 공동연출을 맡으며 고동선 감독에게 드라마와 코미디의 조화에 대해 배웠다. “고동선 선배가 나 을 하면서 드라마 속에 코미디를 많이 해본 분이잖아요. 그래서 밀착마크하면서 드라마국의 코미디에 대해 배웠어요. 한 번은 마음대로 해봤고, 다음에는 드라마 B팀으로 배워본 거죠.” 그리고, 고동선 감독은 그에게 “코드가 맞을 것 같다”며 자신이 에서 함께했던 김인영 작가를 소개했고, 그와 김인영 작가는 작가의 히트작 의 4년 후 이야기를 그리는 를 준비 중이다. 김민식 감독이 다시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물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전화로 얘기를 받자마자 세 작품이 떠올랐어요.” 그러니 김민식 감독이 ‘인생을 바꾼 드라마’를 세편 고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생의 분기점마다 단순 명료해 보일 만큼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던 그는 자신의 인생처럼 명료하게, 그리고 자신의 그런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고른 세 편의 작품은 그의 지난 시간들만큼 소소한 유쾌함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함께 있는 작품들이었다.
美
1990~1998년 NBC
“개안하는 기분이었어요.” 는 그렇게 김민식 감독을 시트콤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 때까지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전부 따뜻한 가족 이야기만 있었잖아요. 아무리 갈등해도 결국엔 화합하는 가족들. 그런데 는 되게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뉴요커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그게 너무 통쾌하고 후련했어요. 그 때 를 보고 한국에서 최초로 시트콤을 만드는 감독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MBC 예능국에 들어가니까 이 나오더라구요. 하하.”美
1998~2004, HBO
“ 시리즈부터 까지 하면서 시트콤의 진화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어요. 청춘 시트콤은 점점 쇠약해지는데 새로운 형식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럴 때 를 보면서 굉장한 자극이 됐어요. 그 전까지 시트콤은 우리나 같은 시트콤이나 모두 스튜디오가 중심이었잖아요. 그런데 는 야외로 나가면서 여자들의 일상을 더 촘촘하게 보여줄 수 있었어요. 네 명의 여자들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도 신선했구요. 그걸 보면서 새로운 시트콤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더 확신을 가지다 이제 말할 그 작품을 보게 됐죠. (웃음)”
美
2004~ , FOX
“을 드라마로 분류하지만, 개인적으로 시트콤이라고 생각해요. 캐릭터나 에피소드들이 굉장히 시트콤적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드라마로서 미스터리라는 이야기의 축을 만들고, 시즌마다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면서 시트콤의 틀을 깨버린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시트콤이 드라마와 결합해서 뭔가로 진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 같아요. 그래서 을 보고 예능국에서 드라마국으로 옮겼어요. 그리고 이제 를 하게 됐으니까, 정말 제대로 해야겠죠.”
“, 시청률 안 나오면 내가 독박 쓸 드라마”
김민식 감독은 내년 1월 MBC 첫 수목드라마로 방영하는 를 “웃음에 대한 계산이 정확하고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의 포인트가 분명한” 김인영 작가와 “너무나 예쁜 여배우들과 그들보다 더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김범”이 함께 하는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자신이 이끌었던 와 달리 “대본의 품에서 놀아보고” 싶고, “아내가 대본을 읽는데 너무 재밌다며 이거 시청률 안 나오면 내가 독박 쓸 거라고 그래요”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시트콤의 진화를 꿈꾸는 김민식 감독과 6년 전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유쾌하게 그려낸 김인영 작가의 만남은 감독의 꿈대로 를 “로맨틱 코미디의 진화”로 완성시킬 수 있을는지. 로 시작해 MBC 드라마국까지 온 한 시트콤 감독의 꿈이 여기까지 왔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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