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된통 깨진 날, 잘나가는 친구의 승진 소식을 들었을 때, 헤어진 연인의 청첩장을 받았을 때. 별 일 없이 사는 일상이라도 이처럼 마음은 허기가 지고, 나는 무얼 위해 사는 걸까,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의 줄리(에이미 아담스)와 줄리아(메릴 스트립)는 주저 없이 부엌으로 향한다. 지쳐 있던 그녀들은 팬을 달구고 버터를 녹이며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말단 공무원으로 이리저리 눈치 보기 바쁘지만 여전히 소설가의 꿈을 한 켠에 간직한 2002년의 줄리. 남편의 발령으로 따라간 파리에서 여유를 만끽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싶은 1949년의 줄리아. 이름도 삶도 닮은 두 여자는 죽어 있던 일상을 요리로 다시 깨운다. 누군가의 아내로만 머물던 줄리아는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배우며 다시 꿈을 꾸게 되고, 줄리는 줄리아가 만든 레시피를 마스터하며 블로그를 시작한다.



시간 여행하듯 거품기와 자동 믹서가 교차되며 펼쳐지는 두 여자의 요리에 보는 내내 침이 고이고 마음에는 훈풍이 분다. 물론 그 온기의 중심에는 메릴 스트립이 있다. 그녀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하이 톤의 목소리와 귀여운 몸짓은 줄리아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 웃음이 넘치게 한다. 그렇게 메릴 스트립이 다시 세상으로 불러온 줄리아는 엄격할 것만 같은 프렌치 셰프의 고정관념을 깨준다. TV 요리쇼에서도 바닥에 흘린 재료를 다시 주워 담으며 누가 안 보면 괜찮다며 능청스러운 웃음을 짓는 줄리아는 소박한 그녀의 요리처럼 매력적이다. 또 에서 악명 높은 편집장 미란다와 그녀에게 기죽어있던 패션 디렉터 나이젤(스탠리 투치)이 에선 잉꼬부부로 호흡을 맞춰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미 수많은 요리 블로거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에서 요리 블로거로 성공해나가는 줄리의 이야기는 사실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러나 줄리에게서 무료한 나날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요리를 하는 수많은 블로거를 발견하게 되면 지지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는 인생의 큰 깨달음도, 눈물 흘릴만한 감동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든든한 집 밥을 먹고 나면 다시 싸울 힘이 생기는 것처럼 두 여자의 요리는 일상에 지친 속을 달래준다. 실제 프렌치 셰프로 활약했던 줄리아 차일드와 그녀의 요리책을 마스터하는 블로그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줄리 파웰의 이야기를 담은 는 12월 10일 개봉한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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