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렇게 좋은 인터뷰 자리에 불러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윤시윤은 길게 첫인사를 건넨다.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만큼 앳된 소년의 얼굴을 가진 그가 사실은 이십대 중반의 나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표정부터 손짓까지, 의젓한 어른이 배어있는 이 청년이 십대 후반의 풋풋한 설렘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그의 첫 배역이라는 점이야말로 윤시윤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지점이다. 전날 새벽 5시까지 녹화가 이어졌다는 매니저의 귀띔에 컨디션을 걱정하자 “아뇨, 아뇨. 5시 반에 끝났어요. 30분 빼시면 억울해요. 하하하”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MBC 의 고등학생 정준혁이라면 상상도 못할 넉살과 여유. 유쾌한 간극이 소년과 청년의 사이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준혁이도, 저도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어요”

그 골짜기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통로에는 ‘준혁 학생’과 그의 교집합에 해당되는 몇 가지의 것들이 존재한다. “고등학생 때도 이 목소리였어요”라고 불균질한 성장의 궤적을 털어 놓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표현을 잘 못해서 짝사랑을 많이 했어요”라며 멋쩍은 목소리로 에피소드를 전하는 그는 솔직 담백한 사나이의 싹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스로를 “딱 준혁이 같아요”라며 덧붙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 청년의 마음속에는 어쩌면 중년의 보석이나 노년의 순재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요한 것들이 충분하게 있어요. 너무 부유한 것도 아니고, 물질에 눌리지도 않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상태에요. 준혁이도, 저도 그래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죠.”

그러니 깊고 어두운 계곡의 안쪽에 고여 있는 청년의 이야기들이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운 무게를 가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된 면담 오디션을 거치면서 그는 캐스팅되기를 감히 소망하기 보다는 그 불안한 시간 자체를 기회로 여겼다. “이 과정이 힘들고 길어질수록 제가 절박해 질걸 알았어요. 그리고 초조해질수록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 잡았죠” 그리고 결국 “벼락처럼” 출연이 결정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몸치인 까닭에 무술감독을 붙들고 발차기 동작을 하나하나 배우거나 꼼꼼한 감독 덕분에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차라리 학습의 순간이었다. “제 자신과의 싸움. 그게 가장 두려웠어요. 할 수 있을까. 발가벗겨지면, 이런 기분일까. 자신감이 없었죠.” 깊은 미로에 빠졌지만, 의외로 답은 명료했다. “여기까지 온건, 제가 잘해서가 아니거든요. 이렇게 좋은 연출가, 훌륭한 스태프들을 만났는데, 제가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의지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인정받을 건 타고난 사람 복, 그거 하나에요. 제가 체력이 약하다고 스타일리스트가 손수 약을 지어다 줄 정도 거든요.”

그저 즐거운 것을 하고 싶은 청년의 진심

마치 색맹검사 시험지처럼 낯선 청년 윤시윤의 이미지는 복잡한 색반들로 흐릿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큰 문제가 없는 한,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뚜렷하게 단순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배우가 되고 싶은 이유는 정말 단순해요. 전 근성이 없는 아이라서 아무것도 밤새 해 본 적이 없어요. 게임조차도요. 그런데 연기는 그게 가능해요.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주도 없지만, 연기는 밤새도록 해도 즐거워요. 단지 그거 하나뿐이에요.” 예리한 눈매에 힘이 주어진다. 소녀의 것처럼 날렵한 턱선과 섬세한 콧날이 풀썩 앞으로 쏟아지는 머리카락의 그늘에 가려지자 그 자리에는 그저 꼿꼿한 어깨만 남는다. “만약 하이킥 오디션에 떨어졌어도 전 계속 도전 했을 거예요.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서도, 계속.” 가정할 필요 없이, 벌써 티켓을 거머쥔 그의 어깨에 올려 진 꿈은 더 이상 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꿈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존재감을 남기는 어느 날, 청년의 어깨에 돋은 것은 아마도 지붕을 뚫고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일 것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