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여지없이 웃음은 터졌다. “선배가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자고 할 때 붙을 걸 그랬어. 너무 억울해. 주먹이 불끈 쥐어져!”라고 앙탈을 부리는 박성호에게 요술봉의 마법이 작렬하자 그의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그리고 덧붙는 인생의 비밀 한 가지. “알고 보니 복싱 선수!” 첫 방송부터 화제를 모으며 KBS2 의 인기코너로 자리매김 한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는 치밀한 조사로 엮어낸 공감의 그물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바닥부터 긁어간다. 규격화된 진행의 공식 때문에 자칫 식상함의 늪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사이드에서 코너의 키를 쥐고 있는 박성호는 조금씩, 그러나 효과적으로 웃음의 포인트를 조율하고 있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주인공으로, 때로는 받침대로서 언제나 (이하 )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는 박성호를 만났다. 2000년대 한국 개그의 가장 뛰어난 멀티플레이어인 그는 심지어 진지함과 중후함마저도 갖춘 사나이였다.

데뷔 이래로 요즘처럼 많은 인터뷰를 소화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 (웃음)
박성호 : 아무래도 내 개인의 인기라기보다는 ‘남보원’이 인기가 많으니까 인터뷰도 많이 하게 되고, 여러분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 것 같다.

“왜 남자아이가 오줌 싸는 동상은 있는데, 여자아이는…”

사실 ‘남보원’ 이전의 당신은 좀 마니아적인 개그맨이었다. 세상의 절반을 향한 개그를 하면서 계속 공감을 유발하자면 아무래도 소재 발굴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데.
박성호 : ‘남보원’은 데이트를 하면서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관한 개그인데, 당연히 한계가 온다. 보통 남녀가 만나면 영화관 가고, 공원 가고, 그 이상 뭐가 있겠나. 그래서 장소에 대한 소재를 벗어나서 남자와 여자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시선의 차이에서 오는 차별을 주목하려고 한다. 예컨대, 여자가 남자처럼 옷을 입으면 털털하다고 하지만, 남자가 여자처럼 옷을 입으면 이상하다고 보지 않나. 그런 관점의 차이를 다룰 계획이다. 코너의 아이디어는 의 김석현 PD가 제공한 것이라고 들었다.
박성호 : 김석현 감독님이 황현희에게 ‘남성부’라는 이름으로 개그를 하나 짜보라고 했다. 단지 ‘남성부’라는 이름 하나만 있는 상황에서 황현희가 나에게 그 얘기를 한 거다. ‘도움상회’ 이후 쉬고 있을 때였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강기갑 의원이 생각나더라. 이전부터 강기갑 의원을 캐릭터로 패러디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이 코너에 들어가면 딱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왔다.

어떤 점에서 강기갑 의원을 주목한 것인가?
박성호 : 그건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해야할까. 누구나 그 분을 알고 있고, 굉장히 딱딱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어쩐지 무서울 것 같은 분인데, 오히려 그런 캐릭터가 조금만 재미있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와 닿는 법이다. 게다가 수염도 달고, 두루마기도 입고 뭔가 비주얼적인 포인트들도 좋았다. 처음에는 ‘봉숭아 학당’에 강기갑 의원 캐릭터로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남성부’와 ‘강기갑 의원’이 만나자 ‘남보원’이 짠! 하고 탄생하던가.
박성호 : 처음에는 스타일이 조금 달랐다. 보다 남녀 차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왜 남자아이가 오줌 싸는 동상은 있는데, 여자아이가 그런 동상은 없냐, 그런 거였다. 우리가 개그적으로 생각할 때는 재미있었는데, 많은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으신 것 같더라. 첫 녹화 할 때 반응이 없었는데, 마지막에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은 니가 사라” 구호를 외치니까 거기서 터지더라. 그래서 개그를 전부 엎고 구호를 중심으로 다시 개그를 짰다. 처음에는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다”가 포인트였다면 나중에는 “괜히 했어”가 중심이더니 요즘에는 요술봉을 흔들고 나서 하는 멘트가 핵심이더라. 계속 웃음의 포인트가 이동하는 것 같다.
박성호 : 처음에는 “살림살이”랑 “인간적으로”만 해도 관객들이 많이 웃으셨는데, 그건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두 부분이라서 갈수록 힘이 빠지더라. 그래서 점점 포인트를 뒤로 주고 있다. 어떤 말투가 유행을 해도 금방 약화되는 것 같아서 계속 반응을 체크 한다.

“항상 관심 받길 원하는 것이 개그의 동력”

한동안 김대범과의 호흡이 부각되었는데, 지금 멤버들은 예상 밖의 시너지를 준다. 10년차로서 팀을 구성하는 노하우 같은 것이 있는지?
박성호 : 후배들과 코너를 짤 때는 연기력이 좋은 후배보다는 아이디어가 좋은 후배를 선호한다. 이 현장에 오래 있으니까 평상시 말하는 것이나 주변의 평판을 눈여겨 봐 뒀다가 괜찮은 사람에게 같이 하자고 하는 식이다.

그럼, 막내인 최효종은 영광의 발탁을 당한 셈이겠다. (웃음)
박성호 : 그렇다. 사실 효종이랑 현희랑은 그 전에도 다른 코너를 짰다가 실패한 경험도 있다. 제목은 ‘위인 황현희’라고, 황현희를 작정하고 띄워 주는 코너였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는 코너였다. (웃음) 그 지점이 늘 궁금했다. 어째서 ‘위인 박성호’가 아닌가. 당신은 의 최고참인데 말이다. 아직도 중심인물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데에 스스럼없어 보인다.
박성호 : 사실 나도 나서서 주인공이 되고 싶고, 육봉달이니 위인이니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왜 없겠나. 그렇지만 어떤 코너를 짜면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이 생긴다. 바꿔서 황현희가 내 역할을 하라고 하면 잘 못한다. 그 묘미를 못 살리니까 어쩔 수 없니 내가 잘 하는 역할을 맡는 것뿐이다.

최고참이면서 여전히 연습벌레라는 얘기도 있다.
박성호 :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경험에 비춰 볼 때,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소리가 ‘쿵’하고 난다거나, 웃길 줄 알았는데 반응이 없다거나. 그러면 움찔하고 아무 생각이 안 날 수가 있다. 다음 대사를 해야 하는데 내가 충분히 대본을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까먹을 수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입에서 대사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 동안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하는 거다. 아, 여기서 어떻게 해야 다음을 웃기게 만들 수 있겠구나.

10년차인데도 여전히 그런 긴장을 가지고 가나?
박성호 : 당연히.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들은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녹화를 두 번 하면, 웃기는 포인트만 골라서 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매주 처음 만나는 분들 앞에서 하자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된다. 후배 개그맨들이 평소에도 가장 웃기고 예측불가능한 사람으로 항상 박성호를 꼽더라. 그것 역시 일상에서도 개그맨으로서의 긴장을 유지하는 덕분인가?
박성호 : 옛날부터 남들을 웃기고 놀래키는 걸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개그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들을 웃음으로서 깜짝 놀라게 하는 거니까. 강박을 가지는건 아니지만 항상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내 또래의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개그를 할 때”
전공이 미술이라고 들었는데, 학창시절에 그런 면모를 어떻게 발산 했나.
박성호 : 미술을 전공하면 각자 사물함으로 쓰는 캐비닛이 있다. 여자애들을 놀래켜 주려고 그 안에 한시간씩 숨어 있다가 ‘왁!’하고 뛰어 나오고 그랬었다. 엉뚱하게 보이려고 고무신 신고 다닌 적도 있었고. (웃음)

연습시간에 파자마에 어그부츠를 신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웃음) 그런 차림도 개그의 연장선상인가?
박성호 : 아, 그건 편해서 그런 거고. (웃음) 사람이 여러 가지에 집중 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개그에만 집중하다보니 옷 입는 것이나 외모에 신경을 잘 못쓴다. 배우나 패션 관련 종사자도 아니니까, 옷 생각할 시간에 개그를 더 고민하겠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자리에서 입을 옷은 와이프가 샥, 사준다. 물론 나도 정장도 많이 있는데 그걸 입고 회의 하고 연습 할 수는 없지 않나. 드러눕기도 하고, 커피도 흘리고 그럴 텐데. 그런 긴장 때문인지 특별한 슬럼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박성호 : 항상 남의 개그를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방송3사를 다 모니터 하면서 개그 스타일의 트렌드나 새로운 유행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캐치하려고 한다.

개그는 끝없이 새로워야 하는 장르인데,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감각 자체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비결이 있을 것 같다.
박성호 : 사실 누가 하라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개그를 좋아하고 즐겨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공부처럼 머리를 싸매고 몇 시간 씩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아침에 출근 하면서 차를 운전 할 때도 라디오를 듣고, 뉴스를 들으면서 언제나 생각한다. 아, 이어 개그로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그러면 자연적으로 되는 일인 것 같다.

데뷔 시절 박준형, 김현기와 함께 활동 했던 ‘스마일 마니아’시절을 돌이켜 보면 개그 스타일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앞으로는 어떤 개그를 지향할 예정인지.
박성호 : ‘스마일 마니아’는 특별히 개그 스타일이 같았던 게 아니라, 그런 팀이 정해져 있고 오디션을 통과한 세 명이 그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거였다. 개그 우등생 세 명이었지. (웃음) 다양한 장르를 경험 했지만, 결국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은 말로 하는 개그인 것 같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키우면서 이제는 내 또래의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개그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은 모든 연령대가 보는 프로그램이다. 그 안에는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코너도 있고, 청춘 남녀들이 좋아하는 개그도 있다. 그렇다면 유부남이나 중년들이 웃을 수 있는 코너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에 맞는 비슷한 눈높이의 시청자들을 위한 개그를 구상 중이다. 아직 내가 할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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