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이에요.” 의 메이킹 필름에서 이선균은 파트너였던 서우에 대해 적절한 표현을 찾으려 애쓰다 이렇게 말한다. 독보적이다. 맞는 말이다. 여배우에게, 그것도 데뷔 3년차의 어린 여배우에게 ‘괴물 같은’이나 ‘귀신 같은’ 따위 ‘과격한’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그동안 서우가 보여주었던 연기 때문이다.
깡마르고 작은 체구에 커다란 눈과 도톰한 입술, 인형 같은 외모와 별도로 서우는 보는 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힘을 가졌다. 이름도 채 알려지기 전인 신인 시절의 아이스크림 광고는 물론 의 비범하고 황당한 중학생 종희, MBC 의 눈물 많지만 당찬 해녀 버진, 의 외로운 소녀 은모에 이르기까지 출연한 작품마다 서우가 보여준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다. 신선하다거나 노련하다거나 하는 말로는 부족한, 작품을 통째로 씹어 삼켜 소화시킨 것 같은 연기는 2008년 의 서우에게 각종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어다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잇따르는 호평에도 여전히 “제가 연기를 잘 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강조하는 서우는 “스크린 안에서의 모습은 일부일 뿐, 그 바깥에는 아직 신인이고 아마추어인 서우가 있어요. 울기도 많이 울고 구르고 깨지고 하는 과정들을 다 빼고 백 번 중에 한 번 잘 한 모습만, 그래서 그 하나하나를 합쳐 놓으니까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제가 보면 ‘어머, 포장을 너무 잘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라며 웃는다. 그래서 연기를 할수록 “연출의 힘, 영화 자체가 갖는 힘이 크다는 걸 느낀다”는 서우가 장르를 불문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들을 이야기한다.
1. (Gone with the wind)
1939년 | 빅터 플레밍
“어릴 때는 비디오로 봤는데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라 몇 년 전부터 DVD로 다시 보고 있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정말 옛날 영화인데 영상이나 연기, 미술 같은 게 참 세련되고 좋아서 어떻게 그 당시에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도 해요. 왠지 리메이크되는 게 기다려지고, 만약 한국판으로 리메이크된다면? 당연히 저도 하고 싶겠죠. 스칼렛 오하라는 너무나 매력 있는 여자여서 많은 여배우들이 탐낼 텐데, 굉장히 예쁜 사람이라 제가 일단 비주얼 적으로도 많이 부족하지만 메이크업에 좀 의지해서라도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에요. 하하.” 마가렛 미첼의 장편소설 를 원작으로 남북 전쟁 전후 미국 남부인들의 삶의 변화상을 거대한 스케일 안에서 섬세하게 그린 작품.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강한 의지를 지닌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는 영화 사상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추석이나 설 연휴에 단골로 방송되었던 러닝타임 222분의 대작.
2. (Autumn In New York)
2000년 | 조안 첸
“뉴욕에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뉴욕이나 서울처럼 삭막해보일 수 있는 대도시라는 공간에서 따뜻한 감정을 잘 끌어낸 영화 같아요. 위노나 라이더의 귀엽고 깜찍한 매력과 리처드 기어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 같은 게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배우라면 그렇게 자기만의 분위기를 가질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에 나오는 모자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이나 처럼 한국적 정서에 잘 맞는 정통 멜로라서 그런지 보는 내내 펑펑 울었던 작품이에요.”
평생 바람둥이로 살아온 뉴욕의 레스토랑 주인인 윌(리처드 기어)은 50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구속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온 20대 초반의 샬롯(위노나 라이더)과 사랑에 빠지지만 사람의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고 다시 상처받은 샬롯은 그를 떠난다. 옛 연인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불치병에 걸린 여자 등 전형적인 멜로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위노나 라이더와 리처드 기어가 보여주는 화학작용이 마음을 흔든다. 3. (The Show Must Go On)
2007년 | 한재림
“솔직히 말하면 ‘가족’에 대한 영화는 평상시에 즐겨 보지 않아요. 딸만 셋인데 언니들이 외국에 살고 있어서 다 같이 보기가 힘들다 보니 가족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가족 영화를 보면 창피할 정도로 많이 울거든요. 는 오랜만에 둘째 언니가 한국에 왔을 때 이런 영화인지 모르고 마음의 준비 없이 같이 보러 갔다가 너무 울어서 다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못 일어날 정도였어요. 특히 마지막에 송강호 선배님이 혼자 집에서 라면 드시는 장면의 연기가 너무너무 가슴에 와 닿았거든요.”
송강호와 조폭이라면 대개 를 떠올리겠지만 한동안 충무로를 휩쓸었던 조폭 영화 사이에서 는 독특하게도 중년의 가장인 조직 중간 보스 인구(송강호)의 인생을 조명했다. 조직에서 그만 손을 씻고 가족들과 소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구의 지난한 고군분투는 극적이지 않아서 더욱 가슴을 때린다.
4. (Black)
2005년 | 산제이 릴라 반살리
“인도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아는 분에게 좋은 작품이라는 추천을 받고 몇 개 없는 상영관을 뒤져서 찾아갔어요. 주인공들의 연기도 정말 좋았고, 캐릭터가 존경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 그들의 흔하지 않은 사랑 역시 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어요. 참 여러 가지 ‘향’이 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의 이경미 감독님도 을 재밌게 보셨다는 얘기를 듣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게 참 반가웠어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덟 살 소녀 미셀(아예사 카푸르)에게 ‘마법사’를 자처하는 교사 사하이(아미티브 밧찬)가 찾아온다. 사하이의 끊임없는 노력과 사랑 덕분에 미셀은 자라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지만 사하이가 알츠하이머에 걸리며 두 사람은 새로운 벽에 부딪힌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보던 헬렌 켈러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그것도 발리우드 러브스토리로 옮겨져 새로운 감동을 보여준다.
5.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년 | 토마스 알프레드슨
“스웨덴 영화라서 처음부터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졌던 작품은 아니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였어요. 특히 두 아역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어쩜 저렇게 할 수 있지?’ 하고 굉장히 놀랐어요. 영화에서 여자아이가 높은 곳을 훌쩍 뛰어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와이어나 다른 장치 없이 배우의 신체만을 활용한 것 같아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연기를 하는 또래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연기만을 보고 지냈다면 그 아이들의 연기가 제 보는 눈을 폭넓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외톨이 소년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은 옆집으로 이사 온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와 친구가 되지만 어느 날부터 마을에서는 피가 전부 사라져 죽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뱀파이어가 나오지만 ‘뱀파이어 영화’라고 할 수는 없는 이 기묘한 성장담, 혹은 사랑 이야기는 지난 해 11월 국내 개봉 후 영화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음껏 뻗어나갈 서우
는 박찬옥 감독의 주제의식과 이선균의 음성, 서우의 눈빛이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루는 영화다. 치명적인 외로움을 지닌 두 남녀의 사랑, 의심, 죄의식 등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 안개 낀 국도를 달려가듯 진행된다.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끌어내서 표현해야 할지가 어려웠어요. 관객들이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모호한 감정을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중학생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8년의 시간동안 겪는 성장은 물론 야생동물 같은 눈빛으로 형부를 향한 애증을 드러내는 은모의 캐릭터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담아낸 서우는 정작 스스로에 대해 “단순한 성격이라 섬세한 감정 표현이 어렵다”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본능과 동물적인 감각은 배워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놀라운 법이다. 그래서 지난 해 여름부터 잇따른 촬영으로 쉴 새 없는 강행군을 해왔다는 서우가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음껏 뻗어나가도록 지켜보고 싶은 배우, 서우는 그렇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깡마르고 작은 체구에 커다란 눈과 도톰한 입술, 인형 같은 외모와 별도로 서우는 보는 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힘을 가졌다. 이름도 채 알려지기 전인 신인 시절의 아이스크림 광고는 물론 의 비범하고 황당한 중학생 종희, MBC 의 눈물 많지만 당찬 해녀 버진, 의 외로운 소녀 은모에 이르기까지 출연한 작품마다 서우가 보여준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다. 신선하다거나 노련하다거나 하는 말로는 부족한, 작품을 통째로 씹어 삼켜 소화시킨 것 같은 연기는 2008년 의 서우에게 각종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어다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잇따르는 호평에도 여전히 “제가 연기를 잘 한다는 건 편견”이라고 강조하는 서우는 “스크린 안에서의 모습은 일부일 뿐, 그 바깥에는 아직 신인이고 아마추어인 서우가 있어요. 울기도 많이 울고 구르고 깨지고 하는 과정들을 다 빼고 백 번 중에 한 번 잘 한 모습만, 그래서 그 하나하나를 합쳐 놓으니까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제가 보면 ‘어머, 포장을 너무 잘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라며 웃는다. 그래서 연기를 할수록 “연출의 힘, 영화 자체가 갖는 힘이 크다는 걸 느낀다”는 서우가 장르를 불문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들을 이야기한다.
1. (Gone with the wind)
1939년 | 빅터 플레밍
“어릴 때는 비디오로 봤는데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라 몇 년 전부터 DVD로 다시 보고 있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정말 옛날 영화인데 영상이나 연기, 미술 같은 게 참 세련되고 좋아서 어떻게 그 당시에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도 해요. 왠지 리메이크되는 게 기다려지고, 만약 한국판으로 리메이크된다면? 당연히 저도 하고 싶겠죠. 스칼렛 오하라는 너무나 매력 있는 여자여서 많은 여배우들이 탐낼 텐데, 굉장히 예쁜 사람이라 제가 일단 비주얼 적으로도 많이 부족하지만 메이크업에 좀 의지해서라도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에요. 하하.” 마가렛 미첼의 장편소설 를 원작으로 남북 전쟁 전후 미국 남부인들의 삶의 변화상을 거대한 스케일 안에서 섬세하게 그린 작품.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강한 의지를 지닌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는 영화 사상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추석이나 설 연휴에 단골로 방송되었던 러닝타임 222분의 대작.
2. (Autumn In New York)
2000년 | 조안 첸
“뉴욕에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뉴욕이나 서울처럼 삭막해보일 수 있는 대도시라는 공간에서 따뜻한 감정을 잘 끌어낸 영화 같아요. 위노나 라이더의 귀엽고 깜찍한 매력과 리처드 기어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 같은 게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배우라면 그렇게 자기만의 분위기를 가질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에 나오는 모자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이나 처럼 한국적 정서에 잘 맞는 정통 멜로라서 그런지 보는 내내 펑펑 울었던 작품이에요.”
평생 바람둥이로 살아온 뉴욕의 레스토랑 주인인 윌(리처드 기어)은 50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구속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온 20대 초반의 샬롯(위노나 라이더)과 사랑에 빠지지만 사람의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고 다시 상처받은 샬롯은 그를 떠난다. 옛 연인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불치병에 걸린 여자 등 전형적인 멜로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위노나 라이더와 리처드 기어가 보여주는 화학작용이 마음을 흔든다. 3. (The Show Must Go On)
2007년 | 한재림
“솔직히 말하면 ‘가족’에 대한 영화는 평상시에 즐겨 보지 않아요. 딸만 셋인데 언니들이 외국에 살고 있어서 다 같이 보기가 힘들다 보니 가족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가족 영화를 보면 창피할 정도로 많이 울거든요. 는 오랜만에 둘째 언니가 한국에 왔을 때 이런 영화인지 모르고 마음의 준비 없이 같이 보러 갔다가 너무 울어서 다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못 일어날 정도였어요. 특히 마지막에 송강호 선배님이 혼자 집에서 라면 드시는 장면의 연기가 너무너무 가슴에 와 닿았거든요.”
송강호와 조폭이라면 대개 를 떠올리겠지만 한동안 충무로를 휩쓸었던 조폭 영화 사이에서 는 독특하게도 중년의 가장인 조직 중간 보스 인구(송강호)의 인생을 조명했다. 조직에서 그만 손을 씻고 가족들과 소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구의 지난한 고군분투는 극적이지 않아서 더욱 가슴을 때린다.
4. (Black)
2005년 | 산제이 릴라 반살리
“인도 영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아는 분에게 좋은 작품이라는 추천을 받고 몇 개 없는 상영관을 뒤져서 찾아갔어요. 주인공들의 연기도 정말 좋았고, 캐릭터가 존경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 그들의 흔하지 않은 사랑 역시 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어요. 참 여러 가지 ‘향’이 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의 이경미 감독님도 을 재밌게 보셨다는 얘기를 듣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게 참 반가웠어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덟 살 소녀 미셀(아예사 카푸르)에게 ‘마법사’를 자처하는 교사 사하이(아미티브 밧찬)가 찾아온다. 사하이의 끊임없는 노력과 사랑 덕분에 미셀은 자라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지만 사하이가 알츠하이머에 걸리며 두 사람은 새로운 벽에 부딪힌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보던 헬렌 켈러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그것도 발리우드 러브스토리로 옮겨져 새로운 감동을 보여준다.
5.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년 | 토마스 알프레드슨
“스웨덴 영화라서 처음부터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졌던 작품은 아니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였어요. 특히 두 아역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어쩜 저렇게 할 수 있지?’ 하고 굉장히 놀랐어요. 영화에서 여자아이가 높은 곳을 훌쩍 뛰어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와이어나 다른 장치 없이 배우의 신체만을 활용한 것 같아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연기를 하는 또래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연기만을 보고 지냈다면 그 아이들의 연기가 제 보는 눈을 폭넓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외톨이 소년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은 옆집으로 이사 온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와 친구가 되지만 어느 날부터 마을에서는 피가 전부 사라져 죽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뱀파이어가 나오지만 ‘뱀파이어 영화’라고 할 수는 없는 이 기묘한 성장담, 혹은 사랑 이야기는 지난 해 11월 국내 개봉 후 영화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음껏 뻗어나갈 서우
는 박찬옥 감독의 주제의식과 이선균의 음성, 서우의 눈빛이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루는 영화다. 치명적인 외로움을 지닌 두 남녀의 사랑, 의심, 죄의식 등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 안개 낀 국도를 달려가듯 진행된다.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끌어내서 표현해야 할지가 어려웠어요. 관객들이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모호한 감정을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중학생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8년의 시간동안 겪는 성장은 물론 야생동물 같은 눈빛으로 형부를 향한 애증을 드러내는 은모의 캐릭터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담아낸 서우는 정작 스스로에 대해 “단순한 성격이라 섬세한 감정 표현이 어렵다”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본능과 동물적인 감각은 배워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놀라운 법이다. 그래서 지난 해 여름부터 잇따른 촬영으로 쉴 새 없는 강행군을 해왔다는 서우가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음껏 뻗어나가도록 지켜보고 싶은 배우, 서우는 그렇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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