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자동차를 폭파시키고, 아키타에선 댐에서 주인공이 뛰어내린다. 시작부터 줄곧 대작 드라마의 위용을 과시한 KBS 는 지난 주말 광화문 한복판에서도 차량을 폭파시키고, 총격전을 벌였다. 교통체증과 별개로 광화문을 로케이션 장소로 택한 의 선택은 현명했다. MBC 과 함께 유일하게 시청률 30% 이상을 기록하는 이 인기 드라마는 신국의 번영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한반도와 전지구의 안녕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종 는 신물과 제사장이 등장하는 신라시대보다도 더 멀게 느껴진다. 그것은 우리를 구할 김현준(이병헌)이 모든 시련을 너무도 쉽게 극복하기 때문일까, 믿지 않는 전설 따윈 말해주지 않는 법칙 때문일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말하지만 비현실적인 공기로 가득 차 있는 에 대해 윤희성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편집자주

KBS 는 무거운 드라마다. 남북관계라는 배경 위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국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들은 한없이 무겁고 어둡다. 한 회안에서도 몇 번이나 연출되는 액션신은 거칠고 집요하며, 비행기를 격추시키고, 댐에서 뛰어내리며, 핵폭발을 도모하는 인물들의 각오는 거대하다. 무엇보다도 에서 가장 묵직한 것은 주인공 김현준(이병헌)의 운명이다. 조직에서 퇴출당하고, 조국에서 거부당한 그는 죽음을 강요당하며 위기에 처한다. 야쿠자 두목을 죽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기대했지만 생존을 보장받지 못했고, 목숨을 걸고 지켜내고자 했던 유키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스스로를 구원받지도, 타인을 구원하지도 못하는 그는 철저히 고립되고 유폐된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처지가 처절해질수록 김현준의 캐릭터는 견고하게 여물어가는 법이다.

믿지 않는 전설은 말해주지 않는 법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설정의 추정일 뿐, 실제 가 그려내는 김현준의 입장은 생각보다 막막하지 않다. 인물이 궁지에 몰리는 과정과 그 상황이 해소되는 시점이 만나는 지점에서 긴장감이 발생하는 법인데, 김선화(김소연)와 쉽게 투합하고, 박철영(김승우)에게 금방 받아들여지는 그는 유정훈(김갑수)을 만나고,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만나면서 너무 쉽게 사건의 중심부로 이동했다. 그 와중에서 김현준이 겪었던 고군분투의 기록은 희미하게 뭉개져 버린다. 마치 원래 그렇게 진행되기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일들은 너무나 순식간에 손쉽게 진행된다. 이 드라마에서 ‘어떻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항이 아니다. ‘어디로’ 역시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목적과 방법이 흥미를 끌지 못하는 구조에서 주인공이 중요한 포인트에서 쐐기를 박으며 여정의 스케일만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설명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은 멜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김현준과 최승희(김태희)가 재회하는 장면의 격정이 기대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그들의 사랑이 얕았거나, 그들의 관계가 진부한 설정 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가 사전에 제시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있지만, 추억되는 이야기는 없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입증하지 못한 채 김현준을 찾겠다고 조직의 규율을 거침없이 어기는 최승희의 행동은 애절하기 보다는 아마추어적으로 보인다. 까닭 없이 김현준에게 집착하는 것은 김선화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을 국가의 병기로 살아온 그녀가 가족의 안위 때문에 충성심을 버리는 것도 억지스럽지만, 그런 감정이 김현준을 향한 사랑으로 변환되는 과정은 도무지 논리적인 개연성을 갖지 못한다. 이들의 혼란을 설명할 길은 오직 하나다. 그들은 ‘김현준을 사랑하게끔’ 설계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가 있는 이상, 의 세계에서 이유와 경위는 생략해도 무방한 항목들이다. 믿지 않는 전설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의 경제관념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없는 화면의 감흥의 유효기간은 짧다
이처럼 불성실하게 이야기를 던져 놓으면서 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볼거리’다. 카드로 지은 집처럼 앙상한 텍스트 위에 올려 진 액션은 적당히 달콤하고 자극적이다. 사실 김현준의 육신을 전시하고, 최승희의 몸짓을 관찰하고, 광화문을 불바다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전쟁 직전의 상태에 놓인 것은 남한과 북한이든, 혹은 스파르타와 트로이든 상관이 없다.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인 긴장과 경각심을 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피차일반이다. 그래서 를 보는 심정은 능숙하지 못하나 욕심은 충만한 스케이터를 관전하는 기분과 흡사하다. 결정적인 몇 개의 기술로 숭숭 구멍 뚫린 구성을 만회하려는 스케이터의 프로그램은 점프와 점프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이분될 뿐이다. 점프를 향한 욕심은 전체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독이자, 그가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다. 때문에 는 생방송의 악조건 속에서도 더 크고 탐스러운 액션을 준비하도록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 그것이 시청자를 위한 최상의 서비스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포인트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스킵해도 무방한 것이라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슬픈 일이다. 이야기가 없는 화면의 감흥이 증발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글 윤희성

어린 시절 김현준(이병헌)의 꿈은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국의 평화를 지키고 국가를 위협하는 적을 물리치는” NSS 요원으로 성장한 그가 정작 그 길을 택한 이유는 ‘애국심이나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재미를 느껴서’였다. 조국에 대한 신념과 이상이 전부였던 박철영(김승우)과 다르게 순수한 개인적 욕망으로 움직였던 김현준은 그래서 그 욕망이 배반당하자 거리낌 없이 조국에 복수를 결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많은 고난과 테스트를 거쳐 돌아온 자리는 조국과 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거대한 적과 맞서는 곳이다. 김현준은 결국 슈퍼맨이 될 운명적인 위치를 벗어날 수 없었다.더 강력한 영웅담에 대한 판타지
KBS 가 지금 한국 대중들의 욕망에 부응하는 지점은 단지 거대한 규모의 볼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는 그간 서구적 영웅담을 벤치마킹하며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서사의 크기는 외형의 규모를 따라잡지 못했던 과거의 실패작들과 달리 볼거리와 이야기의 스케일이 거의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몇몇 신화적 영웅을 다룬 제왕 사극을 제외한다면 한국 드라마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었던 강력한 영웅 판타지다. 초국가적 비밀조직이 지구 마지막 냉전국가인 남북한의 통일을 막기 위해 제2의 한국전을 일으키려 한다는 의 설정은 한반도를 세계적 이야기의 중심무대로 확장시키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음모에 연루되어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김현준은 최근 첩보물 히어로의 공식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종국엔 그 거대조직에 맞서며 한국 드라마사상 최초의 전지구적 슈퍼히어로가 된다. 잘 다듬어진 복근을 드러내며 어떤 위기에서도 불사신처럼 살아남는 그는 1980년대 헐리웃 영화 속의 ‘하드 바디’ 영웅들을 연상시킨다.

의 이러한 성격과 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동시간대 방영되는 MBC 가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과 비교되며 일정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금의 대중들은 그간 우리 드라마 속 영웅물의 한 가지 경향이었던 탈신화화된 소시민적 영웅담보다 강력하고 이상적인 영웅의 이야기를 욕망하고 있다. 에서 김현준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한명의 강력한 영웅인 대통령의 모습 일부와 영화 의 카리스마 넘치는 대통령 차지욱(장동건)이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족주의자이자 개혁성향의 대통령이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도적인 남북통일을 이뤄나가자고 말하는 모습은 차지욱이 미국과 일본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북한과 직접 대화하며 자주적 외교를 펼쳐나가는 영화 속 상황과 유사하게 그려진다.

의 성공이 시사하는 것
물론 극중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이어받으려는 모습에서 강한 국가와 강력한 영웅에 대한 이 판타지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의 후예를 자처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가 라는 뉴스는 그 의구심을 더욱 부추긴다. 서울시가 “국가 이미지 향상을 위해” 를 전폭 지원하고 그에 대해 가 “이명박표 청계천과 오세훈표 광화문광장”이 등장하며 “서울시와 이명박 정부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고 비판한 대목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의 대중적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근본적으로 가 선사했던 판타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분명 ‘현실에는 없는’ 강하고 이상적인 영웅에 대한 욕망과 판타지다.
글 김선영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글. 김선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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