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설명: 금발
한국인의 염색체 어딘가에 금발의 DNA가 숨어 있었던 것일까? 지드래곤도 제시카도 금발이 됐다. 지금쯤 “한번 뿐인 인생, 금발로 살고 싶어!” 외치며 탈색제를 손에 들고 있을 지 모를 트렌드세터들을 위한 금발 사용 설명서.
1) 명사. ‘금빛이 나는 머리털’이라고 국어사전은 설명하지만 일반적으로 금빛 보다는 갓 딴 옥수수수염 색깔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가리킴.
2) 평균적으로 한 인간의 머리카락 수는 10만개 정도. 금발인 사람들은 모발 두께가 다른 이들보다 가늘기 때문에 평균 14만개라고 함. 다양한 색깔의 머리카락 중 가장 가늘고, 따라서 가장 부드러움.
3) 아름다움의 상징. 섹시함의 상징. 그로 인해 유사 이래 여자들은 늘 금발 머리를 갖고 싶어 했고 금발 머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함.
1) 역사로 보는 제품 제조법
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금발 가발을 쓰는 것. 로마의 귀부인들은 독일에서 수입한 비누로 머리를 염색했는데 점차 북유럽을 로마가 정복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정복지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로 만들어 썼다고 함.
② 1825년에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던 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잿물 1리터정도를 끓인 뒤 바다 애기똥풀 뿌리와 심황 뿌리 15그램을 넣고 3.5그램 정도의 사프란과 백합뿌리, 1.7그램씩의 현삼 꽃, 양골담초의 꽃, 세인트 존의 맥아즙을 넣어 만든 액체를 정기적으로 머리에 바르면 금발이 된다고 함. 1825년에 서양에서 발표된 논문을 읽을 리 없을뿐더러 애기똥풀, 현삼, 양골담초가 어떻게 생긴 건지 알 리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과산화수소수와 맥주를 애용해왔음. 바르고 있는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컬러를 조절하는 간편한 시스템, 저렴한 가격 등이 강점.
③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몇 년 전부터는 탈색제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됨. 단, 사용해본 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를린 먼로 풍의 금발이 되는 게 아니라 머리털이 빗자루로 변한다고 함. 빗자루가 아닌 ‘개털’ ‘먼지털이’ 등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다수.2) 권장 제품 제조법: 금발 가발을 산다
3) 시뮬레이션 해보는 그나마 권장하는 제품 제조법
미용실에 간다. “한번 뿐인 인생, 금발로 살고 싶어요”라고 외친다.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머릿결이 많이 상할 텐데요”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전문가의 손에 의해 탈색을 두 번 한다. 머릿결이 많이 상한 것을 발견하고 후회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찰나, 미용사가 다가온다. “한 번 더 남았어요.” (그는 그렇게 시달린 머리에서 다시 붉은 기를 없애는 코팅을 한 번 더 시도할 것이다) 또 후회한다.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를 비롯한 가족에게서 욕을 먹는다. 또 한 번 후회한다. 사람들이 나의 금발 머리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머리뿌리에서 검은 머리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또또또, 후회한다.
4) 오작동을 막으려면
① 여러 번의 탈색과 염색 과정을 거쳐야 흔히 ‘금발’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예쁜 색깔이 나온다. 그러나 검은색으로 염색한 경력이 있는 모발, 파마 모발로는 불가능하다. 모발에 남아있는 화학과 탈색제가 충돌을 일으켜 머리카락이 끊어지고 조직이 파괴된다. 다시 말해 ‘버진(virgin) 헤어’여야만 가능하며, 그것조차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같은 검은 머리라도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므로 탈색 뒤 나타나는 머리카락의 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②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지만 그렇다고 머릿결이 상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어느 전문가 왈 “그걸 왜 ‘헤어 다이(dye)’라고 부르는 지 알아? 머리카락을 끝장내거든! ‘다이(die)’ 알지, 다이!”
③ 탈색과 염색으로 상한 머릿결에 염색 모발 전용 샴푸와 컨디셔너 등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④ 금발의 장점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뭘 입어도 눈에 띈다는 것. 그러므로 실루엣만 아방가르드하고 컬러는 무채색인 옷이나 원 컬러 포인트, 머리카락 톤에 맞춰 페일(pale)한 컬러의 옷을 입는 게 스타일리시해보인다. 컬러가 화려한 옷을 입으면 촌스러워 보인다. 영화 의 리즈 위더스푼처럼.
⑤ 금발의 단점은 뭘 입어도 사람들이 머리부터 본다는 것. 매일 옷 갈아입기 귀찮은 사람들이라면 그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닐 수도 있음. 어차피 사람들은 금발이 뭘 입었나는 보지도 않음.
참고 문헌:, 데스몬드 모리스 저, 이경식-서지원 역, 휴먼&북스
도움말: 박미나(헤어스타일리스트)
글. 심정희 ( 패션디렉터)
한국인의 염색체 어딘가에 금발의 DNA가 숨어 있었던 것일까? 지드래곤도 제시카도 금발이 됐다. 지금쯤 “한번 뿐인 인생, 금발로 살고 싶어!” 외치며 탈색제를 손에 들고 있을 지 모를 트렌드세터들을 위한 금발 사용 설명서.
1) 명사. ‘금빛이 나는 머리털’이라고 국어사전은 설명하지만 일반적으로 금빛 보다는 갓 딴 옥수수수염 색깔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가리킴.
2) 평균적으로 한 인간의 머리카락 수는 10만개 정도. 금발인 사람들은 모발 두께가 다른 이들보다 가늘기 때문에 평균 14만개라고 함. 다양한 색깔의 머리카락 중 가장 가늘고, 따라서 가장 부드러움.
3) 아름다움의 상징. 섹시함의 상징. 그로 인해 유사 이래 여자들은 늘 금발 머리를 갖고 싶어 했고 금발 머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함.
1) 역사로 보는 제품 제조법
①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금발 가발을 쓰는 것. 로마의 귀부인들은 독일에서 수입한 비누로 머리를 염색했는데 점차 북유럽을 로마가 정복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정복지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로 만들어 썼다고 함.
② 1825년에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던 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잿물 1리터정도를 끓인 뒤 바다 애기똥풀 뿌리와 심황 뿌리 15그램을 넣고 3.5그램 정도의 사프란과 백합뿌리, 1.7그램씩의 현삼 꽃, 양골담초의 꽃, 세인트 존의 맥아즙을 넣어 만든 액체를 정기적으로 머리에 바르면 금발이 된다고 함. 1825년에 서양에서 발표된 논문을 읽을 리 없을뿐더러 애기똥풀, 현삼, 양골담초가 어떻게 생긴 건지 알 리 없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과산화수소수와 맥주를 애용해왔음. 바르고 있는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컬러를 조절하는 간편한 시스템, 저렴한 가격 등이 강점.
③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몇 년 전부터는 탈색제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됨. 단, 사용해본 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를린 먼로 풍의 금발이 되는 게 아니라 머리털이 빗자루로 변한다고 함. 빗자루가 아닌 ‘개털’ ‘먼지털이’ 등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다수.2) 권장 제품 제조법: 금발 가발을 산다
3) 시뮬레이션 해보는 그나마 권장하는 제품 제조법
미용실에 간다. “한번 뿐인 인생, 금발로 살고 싶어요”라고 외친다.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머릿결이 많이 상할 텐데요”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전문가의 손에 의해 탈색을 두 번 한다. 머릿결이 많이 상한 것을 발견하고 후회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찰나, 미용사가 다가온다. “한 번 더 남았어요.” (그는 그렇게 시달린 머리에서 다시 붉은 기를 없애는 코팅을 한 번 더 시도할 것이다) 또 후회한다.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를 비롯한 가족에게서 욕을 먹는다. 또 한 번 후회한다. 사람들이 나의 금발 머리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머리뿌리에서 검은 머리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또또또, 후회한다.
4) 오작동을 막으려면
① 여러 번의 탈색과 염색 과정을 거쳐야 흔히 ‘금발’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예쁜 색깔이 나온다. 그러나 검은색으로 염색한 경력이 있는 모발, 파마 모발로는 불가능하다. 모발에 남아있는 화학과 탈색제가 충돌을 일으켜 머리카락이 끊어지고 조직이 파괴된다. 다시 말해 ‘버진(virgin) 헤어’여야만 가능하며, 그것조차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같은 검은 머리라도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므로 탈색 뒤 나타나는 머리카락의 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②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지만 그렇다고 머릿결이 상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어느 전문가 왈 “그걸 왜 ‘헤어 다이(dye)’라고 부르는 지 알아? 머리카락을 끝장내거든! ‘다이(die)’ 알지, 다이!”
③ 탈색과 염색으로 상한 머릿결에 염색 모발 전용 샴푸와 컨디셔너 등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④ 금발의 장점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뭘 입어도 눈에 띈다는 것. 그러므로 실루엣만 아방가르드하고 컬러는 무채색인 옷이나 원 컬러 포인트, 머리카락 톤에 맞춰 페일(pale)한 컬러의 옷을 입는 게 스타일리시해보인다. 컬러가 화려한 옷을 입으면 촌스러워 보인다. 영화 의 리즈 위더스푼처럼.
⑤ 금발의 단점은 뭘 입어도 사람들이 머리부터 본다는 것. 매일 옷 갈아입기 귀찮은 사람들이라면 그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닐 수도 있음. 어차피 사람들은 금발이 뭘 입었나는 보지도 않음.
참고 문헌:, 데스몬드 모리스 저, 이경식-서지원 역, 휴먼&북스
도움말: 박미나(헤어스타일리스트)
글. 심정희 ( 패션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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