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개리, 둘이 합쳐 리쌍. 10년 넘게 함께 힙합을 했고, 6장의 앨범을 냈으며, 꽤 많은 곡들이 히트했다. 하지만 리쌍이 온전히 ‘리쌍’으로 알려진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들은 허니 패밀리의 리쌍이었고, 리쌈 트리오의 리쌍이었다. 리쌍의 앨범이 나온 뒤에는 ‘무브먼트의 리쌍’이기도 했다. 힙합계에서 잘 나가는 팀 중 하나. 무브먼트의 또다른 세력. ‘내가 웃는 게 아니야’가 큰 히트를 기록할 때도, 두 사람은 가고 싶은 곳에 가며 자기 생활을 가질 수 있었다. 리쌍이 “우리의 이야기가 바로 너희의 이야기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인생이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골방의 작업실은 언젠가부터 좀 더 나은 장소로 바뀌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 5일 이상 곡을 만들고, 팔고, 공연하며 살았다.

성실 근속 힙합 직장인의 제 2막

골방에서 음악만 하다가 예능에서 활약도 하는 지금, 리쌍은 또다른 변화를 맞았다.
‘블링블링’한 힙합 스타가 아니라 매일 랩을 쓰고 비트를 입혀 먹고 사는 힙합 직장인. MBC 의 ‘무브먼트 특집’에서 길이 “힙합 앨범(리쌍,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 세장이 앨범 차트 1,2,3위를 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의 성실한 근속에 대한 보상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허니패밀리의 리쌍, 리쌈 트리오의 리쌍, 무브먼트의 리쌍, 그리고 힙합은 물론 대중음악계 전체에서 한 자리를 굳힌 리쌍. 그리고, 리쌍은 힙합 클럽이 아닌 에서 그 감격을 누리며 그들의 다음 시대를 열어 젖혔다. 길은 지난 1년 사이 힙합 뮤지션이 아닌 MBC 의 길이 됐고, 길은 가는 곳마다 그의 여자친구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리쌍을 ‘류승범이 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알던 사람까지 있던 시절에서 길이 ‘내가 웃는 게 아니야’를 작곡했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들이 생기는 현재로의 변화. 그들은 여전히 랩을 쓰고, 음악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우리’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리쌍이 스스로 “리쌍의 2막”이라 말한 여섯 번째 앨범 은 그 점에서 우리와 그들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들이 “가장 안정된 모습의 앨범”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붙였다는 이 정육면체 앨범은 그 안정된 구조 속에서 또다른 정 육면체들을 끌어들인다. 리쌍의 앨범에 장기하와 얼굴들, 루시드 폴, 이적, 캐스커, 윤도현 밴드가 등장하는 건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다. 그들이 맞이한 게스트를 따라 은 ‘우리 지금 만나’처럼 리쌍과 장기하와 얼굴들이 홍대 클럽에서 잼을 하는 듯한 음악이 되기도 하고, 무브먼트 패밀리들이 대거 참여한 `Canvas`처럼 힙합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록부터 힙합까지, ‘변해 가네’같은 과거의 명곡에서 나오는 복고의 감성부터 홍대 인디씬의 감성까지. 은 리쌍이 어느 단체나 장르에 속한 리쌍이 아니라, 그들이 그 모든 것을 끌어들일 수 있는 독립된 세계의 첫 시작점이다.

리쌍은 그렇게 늘 변한다

장르적 확장이나 많은 게스트들의 합류가 때론 지나친 욕심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을 들을 때의 진짜 쾌감은 게스트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트랙들이 오히려 리쌍 두 사람의 개성을 명확하게 드러낸다는데 있다. 유재석부터 현미까지 친하고, 개리가 아는 모든 연예계 사람들을 소개시켜줬다는 길은 “길이 누군지 몰랐던” 루시드 폴에게 전화를 걸어 참여를 부탁했고,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장기하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개리는 ‘부서진 동네’에서 그리는 철거촌의 황량한 모습으로 삶의 힘겨움을 쓰고, `To Leessang‘에서 ‘기억해라 주머니에 먼지밖에 없던 시절을’이라며 그 시절을 지나 스타가 된 그들의 변치 않으려는 정신을 말한다. 때론 ‘허름한 아파트의 어두운 지하실 담배와 본드에 취한 채 내 곁으로 온 어느 귀한 집 딸내미는….’이라며 적나라한 고백을 하고, 때론 ‘24시간 써내려간 한 편의 시가 종이 위에 흘린 볼펜의 검은 피가 내 아픈 상처를 치료 해 주기를 나는 바라고’라며 랩을 쓰는 고통에 대해 토로하는 개리의 가사는 의 다채로운 사운드 안에서도 듣는 사람이 가사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길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사운드의 외연을 넓히면, 개리는 한 남자의 인생을, 그리고 랩하기 보다는 시를 읽듯 흘러가는 그만의 랩 플로우를 관통시켜 리쌍의 감수성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더 많은 인기를 얻었고, 더 많은 음악을, 더 많은 뮤지션들을 그들의 세계에 끌어들였다. 하지만, 은 리쌍이 오히려 자신들의 세계를 공고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명의 개성이 모여 리쌍을 만들고, 리쌍의 개성이 조금씩 더 큰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동물원의 ‘변해가네’를 샘플링한 ‘변해가네’에서, 개리는 “좋거나 싫거나 해가 뜨거나 지거나 어쨌든 우린 변화 속에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허니 패밀리의 리쌍에서 리쌈 트리오의 리쌍으로, 다시 무브먼트의 리쌍으로. 리쌍은 그렇게 늘 변해왔다. 하지만, 리쌍은 그들이 무엇의 리쌍도 아닌 길과 개리의 리쌍이 되는 그 순간 그 변화가 자신들의 세계를 분명히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선언했다. 그래서 리쌍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다. 그들은 그렇게 살고, 랩하고, 성장했고, 다시 그 다음 우리가 해야 할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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