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의 소녀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 몸으로 프랑스로 입양되면서, 그 동안 써오던 한국어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몸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던 모국어를 잃은 소녀는, 서로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아도 소통하는 법을 찾고자 애써왔다. 그렇게 찾은 ‘무언의 언어’가 바로 영화다.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는 아홉 살에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프랑스인 감독 우니 르콩트가 그리는 1975년 한국 고아원의 풍경이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온 진희(김새론)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버려진 강아지처럼 까만 진희의 눈동자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차츰 받아들이면서 그 깊이를 더해간다. 상처는 그대로 거기 있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을 깨달아가는 진희가 어른이 되면 이런 모습일까. 다음은 영화 속 진희를 많이 닮은 우니 르콩트 감독과 불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화 세 개의 언어로 나눈 이야기다.

“는 영화적 글쓰기였지,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학교를 나온 뒤 첫 작품이다. 다른 어떤 소통의 방식도 아닌,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우니 르콩트: 내게 영화는 하나의 언어이다. 영화 언어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적 경험 때문인데, 아홉 살까지는 한국어를 했지만 불어를 배운 뒤 모두 잊었다. 그래서 구어(口語)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라는 언어는 구태여 말로 하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언어이다. 를 찍으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영화와 관객 사이만이 아니라, 영화가 있다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감독과 배우들과의 소통도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영화 언어라는 것은 결핍과 장애를 채워줄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걸 어떤 방식으로 조절하려고 했는가.
우니 르콩트: 어려운 질문이다. 이 영화를 반드시 자전적인 영화라고 해야 한다면,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영화 속 진희와 나 사이의 감정적인 관계에서 나온다. 집중하고자 했던 것은 영화적 글쓰기였지,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녀 스스로가 왜 버려졌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버려짐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그걸 구태여 설명하려고 들지 않고 영화 이외의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했다. 영화에서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제한된 ‘경계인’의 것과 같은 진희의 시점이다. 현실을 왜곡 시키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현실이 소녀의 내면과 대립하는 지점에서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이 나온다.

영화를 프랑스에 입양된 아이를 캐스팅해서 찍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니 르콩트: 한국의 아이가 프랑스에 있으면 이미 서구에 대해서 안다. 영화를 위해서는 서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아이가 필요했다. 김새론이나 나머지 배우들 모두 외국 문화를 접하지 못한 아이들이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의 인물들을 캐스팅하면서 어려웠던 것은, 이미 한국의 아이들은 그 시절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의 아이들은 70년대 아이들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결국 배경이 되는 보육원이 있는 경기도 청평의 아이들을 캐스팅했다. 그 아이들은 모습이나 태도 모두가 도시의 아이들과 달랐다.

“물론 친아버지에게 를 보여주고 싶다” 자전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치유의 성격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스스로 정화된 부분은 있는가?
우니 르콩트: 이 영화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 상처란 살아가면서 계속 남아있고, 치유되지 않는다. 상처를 스스로 인정할 때, 사람은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간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은 언제인가?
우니 르콩트: 상처는 단순히 입양 자체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상처였다. 내가 사랑을 받을 만 한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게 가장 큰 상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사랑받을 만 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죄책감 같은 것. 어느 순간 깨달았다기보다 지금도 계속, 아마도 앞으로도 그 상처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를 만들고 나서 처음으로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지
우니 르콩트: 물론 친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언젠가 그 분이 한국의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냥 평범한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보러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국적이나 사는 곳은 상관없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첫 영화를 찍고 개봉까지 하게 된 지금도 이러한 생각이 유효한가?
우니 르콩트: 국적이나 국가는 그저 추상적인 개념일 뿐, 그걸 이루는 것은 인간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같다. 물론 첫 영화를 한국에서, 한국배우들과 찍은 것은 나에게 큰 의미다. 한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점이 기쁘고, 그렇게 한국으로 다시 올 수 있게 된 것이 감동적이기도 하다. 사실 1991년 이후로 한국에 올 기회가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과 나의 관계를 깊게 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었다. 그 당시에 그것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데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과거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를 이루어 가는 데에 대한 질문이다.

“임순례 감독은 파리에서 처음으로 사귀게 된 한국인”

그렇다면 여성감독으로서의 정체성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우니 르콩트: 칸 영화제에 갔을 때도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하지만 국적에 대한 질문에 대한 관점과 같다. 누군가 영화 작업을 하고 싶다면, 성별이든 나이든 상관없이 영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여성영화제는 있는데 남성영화제는 없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여성의 권익운동과 같은 것들이 오히려 여성을 한계 짓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구분 짓고 떼어놓는 분리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임순례 감독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궁금하다.
우니 르콩트: 임순례 감독과는 오래된 친구 사이로 임순례 감독이 파리에서 영화 공부를 했던 88~89년부터 알고 지냈다. 나에게는 파리에서 처음으로 알고 사귀게 된 한국인이다. 91년부터 한국에 오게 된 계기도 임순례 감독과 연결되어 있다. 임순례 감독은 영화와 한국, 두 가지 모두에서 의미를 가진 오래되고 소중한 사람이다. 이번에 부산에 와서도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신념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나, 재정적인 문제들도 있고. 사람들이 질적인 면이 아니라 관객의 영화의 관객 수로 판단하게 되어가는 것 같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문제라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의 영화 계획이 있는지?
우니 르콩트: 계기가 된다면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일단 차기작도 한국에서 찍게 될 것 같다. 계속 를 함께 했던 사람들과 작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영화는 스태프, 기술자, 배우들과 열정과 공유하면서 서로의 능력을 발견해주는 작업이다. 꼭 똑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다.

글. 부산=윤이나 (TV평론가)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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