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도 홍대 앞에는 ‘시애틀 에스프레소’라는 커피전문점이 있었다. 정문 옆 스타벅스의 이웃 자리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대학에 입학 하고 나서 그곳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주로 2층 창가 자리가 아지트였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늦은 등굣길이나 공강시간, 주로는 자체 휴강 시간에 들리면 창가엔 늘 아는 얼굴이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시럽을 가득 탄 커피라기엔 뭣한 설탕물 같은 액체를 즐겨마셨는데, 흠모하던 여자 선배가(아마 3학년인 미대 선배로, 그때는 그녀가 굉장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타지 않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걸 보곤 그 이후로는 열심히 쓰디쓴 액체를 삼켜보았다. 처음에는 양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갈 정도로 쓰기만 하던 액체가 어느 순간 향긋해지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단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론 아침에 진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요즘도 시내 곳곳의 커피 좀 한다하는 가게들은 꼬박 꼬박 찾아 가보지만 아직까지도 2001년 시애틀 에스프레소 2층 창가에서 먹었던 에스프레소가 최고의 커피다. 아무것도 타지 않은 에스프레소를 즐기게 된 첫 날,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으니까. 물론 이제는 그게 대단한 착각이었단 걸 알지만 말이다. 그립다, 그 때의 시애틀 에스프레소도, 그 선배도, 나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최고의 커피는 무엇입니까? (사진은 두 번째로 맛있었던 롯본기 애니버서리 카페의 에스프레소)

글ㆍ사진.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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