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을 두드리는 청량한 빗소리와 함께 연극은 시작되고, 이내 흘러나오는 비틀즈 음악이 마음을 두드린다. 냉철하고 자기중심적인 동생과 그런 동생을 끔찍하게 아꼈던 자폐를 앓는 형의 이야기, 연극 의 프레스콜이 첫공연을 몇 시간 앞둔 4월 24일 대학로 SM아트홀에서 열렸다.

임원희와 이종혁을 6~7년 만에 무대로 부른 연극 은 20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1988년 제작된 톰 크루즈,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동명영화를 원작으로 삼았다. 뮤지컬배우로 시작했지만 최근 뮤지컬 , 연극 등의 연출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임철형 연출가가 이번 작품에 참여한다. 영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초연되는 연극 은 형제가 서로의 벽을 허무는 계기로 축구공을 등장시켰다. “공은 혼자서도 가지고 놀 수 있지만, 형제가 공을 주고받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배우들이 축구공을 주고 받는 장치는 공연의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현재 형식만 있고 배우들에게 애드리브로 열어둔 상태”라는 연출가의 말처럼, 이날 프레스콜 현장에서는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장면에서만 10여분의 시간을 소비하며 관객들의 긴장을 이완시키기도 했다. ‘막장’의 홍수 속 20년 만에 무대 위에서 재연되는 연극 은 5월 31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계속된다.

동생의 아이를 다치게 할까봐 떠나는 레이몬드, 임원희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레이몬드 역에는 ,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 임원희가 맡았다. “학창시절 진지하고 때로는 신비스럽기까지 보였다”는 임철형 연출의 발언처럼, 7년 만에 무대에 선 임원희는 등의 스크린에서 보여주었던 코믹함을 버리고 진지한 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무대에 오랜만에 섰다는 것 자체가 제일 두려웠다. 정말 소극장에 서있으니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영화 속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를 많이 연구하고 있고, 비슷한 나 같은 영화들도 모두 챙겨보았다. 특히 레이몬드는 대사량이 정말 많은데 원주율을 외우는데는 2달이 걸렸다. (웃음) 수학을 중 1때 포기했는데 여기서 원주율을 외우고 있다. 하하”줄곧 ‘레인맨’을 그리워했던 찰리, 이종혁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특유의 예민하고 까칠한 모습을 드러냈던 이종혁이 찰리 역을 맡았다. 찰리는 이번 연극에서 자동차 중개인 대신 노트북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인터넷 주식 트레이더로 변했다. 스스로는 “찰리스럽지 않은 성격을 지녔다”고 말하지만,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시니컬해 보이는 비주얼이 찰리를 더욱 부각시킨다. “뮤지컬 , 도 했지만 2003년 이후 소극장 공연은 처음이라서 너무 떨린다. 오늘 카메라가 이렇게 두려운 줄 몰랐다. (웃음) 레이몬드의 대사가 많다고 했지만, 레이몬드 못지않게 내가 맡은 찰리의 대사도 정말 많다. 공연 보름 전부터는 자다가 깨서 다시 대사보고 자고 그랬었다. 감정은 둘째 치고 진짜 대사 잊어먹지 않기를 제일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웃음)”

관전 포인트
TV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고성이 오가는 ‘막장드라마’들이 판을 치지만, 최근 무대에서는 마음 한 켠이 알싸하게 달궈지는 ‘치유계’ 작품들이 많이 올라가고 있다. “생계형 이산가족이 많은데, 이 작품을 통해 가족의 온기를 전하고 싶다”는 연출가의 말처럼, 연극 은 가족과 형제의 화해를 작은 무대에서 따스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그동안 영화 등에서 선보였던 코믹함을 배제한 임원희의 연기 역시 더스틴 호프만 못지않다. 종종거리는 발걸음, 그 어떤 이도 응시하지 못하는 불안한 눈빛, 내내 읊어대는 불길한 징조 리스트는 임원희 레이몬드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한다. 그 누구도 품지 못했던 형이 떠나기 전 동생을 어루만지는 모습은 관객들 마음 속 깊은 여운을 남기게 될 것이다.

사진제공_쇼팩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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