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는데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네요. 하하.” ‘스타의 친구’가 소녀시대의 유리와 미팅을 할 기회를 얻는다면 엄청난 행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가 프로게이머 이윤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타크래프트의 양대 리그인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을 석권한 것은 물론, 세대교체가 빠른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데뷔 이후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윤열은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는 ‘전설’로 불리기에 충분한 존재다. TV에 출연하지 않았을 뿐, 그는 팬카페 회원 16만을 자랑하는 슈퍼스타인 것이다. 이윤열이 에서 춘 이른바 ‘로봇춤’은 이제 네이버의 검색창에 ‘이윤열 로봇춤’으로 자동 검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윤열은 이미 그 때의 후유증(?)을 벗어난 모습이다. “그건 이벤트 같은 거죠. 제가 더 민망해서 오락 프로그램에는 못나갈 거 같아요. 더 많은 분들에게 게임에 대해서 알릴 수 있었으면 충분해요.” 그만큼 출연 뒤에도 이윤열의 생활은 달라진바 없다.

에서 출연자 붐은 이윤열에게 농담 삼아 “16강까지 갈 거 같다”고 말했지만 이윤열은 MSL 8강까지 진출했다. 안타깝게도 8강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제 몸은 많이 지쳐있지만, 제 몸은 제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팬과 가족, 팀이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는 없죠.”라는 그의 말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여전한 열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윤열의 플레이리스트의 테마는 여전히 게임에 매진하는 그가 평소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데 필요한 음악들이다.

1. Ennio Morricone의 OST
이윤열이 첫 번째로 뽑은 앨범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 의 OST였다. 는 갱들을 통해 미국 근현대사를 조명한 작품. 빼어난 영화의 완성도는 물론, 엔니오 모리코네가 참여한 OST가 작품의 격을 높인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의 인물별 테마나 영화의 메인테마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음악들. 이윤열은 평소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OST 음악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장면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감동이 잔잔하게 전해지는 음악들을 좋아해요. 그러면서 차분하게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른 생각들을 없앨 수 있거든요.”2. Kiyoshi Yoshida의 OST
일본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연출한 는 한 여고생의 학창 시절과 시간 여행을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한 애니메이션. 국내 개봉 당시 상영관 수는 적었지만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너무 독특했어요. 보고나서 정말 내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구요. 일단 계속 과거로 돌아가서 연습을 더 많이 할 거 같지만요 하하.” 특히 이윤열은 의 OST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Aria’를 새롭게 해석한 곡을 즐겨듣는다. “보통 이 곡의 연주보다 굉장히 느리게 연주한 걸로 알고 있어요. 정말 시간을 느리게 가도록 하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차분한 연주를 들으며 여러 생각을 정리하게 돼요.”

3. 유성규의
유성규는 일반 대중에게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룹 바이브의 랩을 담당한 래퍼, 혹은 노블레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많은 대중들에게 그의 목소리를 들려줬던 뮤지션이다. 이윤열은 바이브 시절부터 유성규의 목소리를 좋아했다고. 특히 그의 1집 앨범에 수록된 ‘사랑’은 이윤열이 유독 아끼는 곡. “이런 저런 생각이 들다가도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상당히 나아져요. 낭만적인 노래이기도 하지만, 저한테는 기분을 바꿔주는 노래이기도 한 거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 1순위구요 하하.” 이 말에 장난기가 동해 에서 파트너가 됐던 그룹 소녀시대의 유리에게 들려주고 싶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윤열의 재치 있는 대답. “에이, 유리 씨는 소녀시대 팬들의 연인이죠.”

4. My Chemical Romance의
이윤열은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를 네 번째 앨범으로 골랐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미국 출신의 록밴드로, 펑크와 이모코어, 퀸을 연상시키는 록 오페라적인 스타일의 음악들을 섞어 록 음악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 밴드로 평가 받는다. 이윤열이 이 앨범을 고른 것은 그의 개인적인 추억 때문. “제가 2006년에 우승했을 때 엔딩 곡으로 이 밴드의 음악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듣기 시작했죠. 저에게는 우승만큼 값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의미 깊은 곡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 들어도 피가 끓어오르는 거 같아요. 그 때를 기억하면서 더 열심히 연습하려구요.”5. 김동률의
“김동률씨는 정말 노래 부르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모든 걸 노래에 쏟아 붓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의 곡들은 노래마다 첫 소절만 들어도 김동률씨의 감정이 확 와 닿는 것 같아요.” 이윤열은 김동률의 를 플레이리스트의 마지막 앨범으로 꼽았다. 는 기존의 김동률 특유의 화려한 오케스트라 편곡이 빛나는 곡들과 한결 힘을 뺀 곡들이 적절하게 조화돼 김동률의 새로운 변신을 알렸던 앨범. 이윤열은 비가 오는 날 를 들으며 차분한 마음을 갖는다고. “김동률씨는 전람회 때부터 늘 좋은 음악을 만드시잖아요. 자기 스타일도 분명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하지 않는 것도 아니구요. 오랫동안 자기 세계를 가지고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 저도 제 일에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꿈과 목표를 위해 달릴 겁니다.”

“제 앞에 놓인 인생에 있어서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고 꿈과 목표를 위해 달릴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윤열은 구체적인 계획 대신 자신의 인생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해가 바뀔 때마다 판도가 바뀌는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이윤열은 세대교체의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고’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다. 그와 같은 프로게이머의 열정과 팬들의 성원이 PC게임을 e-스포츠로 발전시켰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시켰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서 목표로 하는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의 열정. 이윤열의 열정이 그의 인생에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주길 기원한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