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간 것일까.’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달수 씨가 보이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벌써 시계가 11시를 넘어서고 있으니 2시간이나 지각이다. 어젯밤 회식 자리에서 내가 분명히 패밀리 레스토랑 할인 쿠폰이 있으니 점심을 같이 먹자고 얘기 했었는데, 그가 이렇게 늦을 리가 없다. 게다가 그 쿠폰 사용 기한이 딱 오늘까지라고 세 번이나 거듭 말했는데 말이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 온다. 그래, 달수 씨는 실종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수사를 개시해야겠다. 실종 사건은 사건 발생 이후 48시간이내에 해결하지 않으면 실종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서둘러야 한다.

실종 2시간 30분 경과

옆자리의 최선배가 혹시 그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지는 않을까. 가까운 사람부터 탐문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 그러나 까다로운 최선배가 업무시간 중에 나의 질문에 성의 있는 대답을 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럴 때는 허를 찔러야 한다. 에서 본 것처럼 조심스럽게 최선배의 마음을 파고들어 그 안에 있는 진실을 끌어내야지.
“선배님은 단 걸 좋아하시나 봐요.”
내가 자신의 책상 위에 어질러진 사탕들을 예리하게 확인 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최 선배는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당황한 눈빛. 그녀 안의 방어기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 뚱뚱하다고 놀림 받았었죠? 그리고 충치가 많아서 치과를 자주 갔을 거예요.”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지적에 더욱 놀랐는지 그녀의 동공이 확연히 커진다. “이거 므야. 업무 중에 미친 거 아냐? 나 신입 땐 상상도 못할 일이야!”
진심을 숨기려는 듯 과장된 어투. 분명 최선배가 숨기는 무엇이 있다. 그때, 사무실의 공기를 예민하게 가르는 굉음이 들려온다. “전화 와떠여- 힝, 속았지. 문잔데!” 그리고 뒤이어 심드렁한 편집장의 목소리에 상황은 급반전된다.
“오늘 달수 씨 좀 늦는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했어.”

실종 3시간 경과

벌써 시계는 12시를 향해 가고 있다. 이건 좀 늦는 게 아니다. 역시 수사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제라도 수첩을 꺼낸다. 그리고 달수 씨의 알리바이부터 정리하기 시작한다. 문자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지난밤 회식 자리에서 그와 헤어진 것이 11시. 그렇다면 그 사이 열두 시간 동안 그의 행적이 묘연하다. 를 떠올린다. 그래, 실종자가 어린 경우 대부분 납치범은 마지막 목격자와 일치한다. 우리 달수 씨는 어린이처럼 해맑으니까 간밤에 그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 그 사람이 범인이다. 지난 밤, 대패 삼겹살을 먹고 가게에서 나온 것이 9시 20분. 노래방에 가서 내가 화장실에 가다가 달수 씨와 마주친 것이 대략 10시. 카운터 아주머니가 틀어놓은 TV에서 “나이롱”이 어쩌고 “재수 꽃다발”이 저쩌고하는 대사를 들었으니까 미니시리즈가 방송되고 있었던 것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내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완창하고 나왔을 때 이미 대부분 택시를 잡아타고 떠나던 시점이었는데…… 그래. 달수 씨는 최 선배와 같은 방향이라며 둘이 같은 택시를 탔었다. 머릿속의 안개가 한 꺼풀 벗겨지는 기분이다.실종 3시간 30분 경과

최선배가 점심을 먹으러 나간 사이, 그녀의 책상을 다시 살펴본다. 무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프로파일링에 착수해야 한다. 우선 그녀의 노트북 자판이 눈에 들어온다. 스페이스와 방향키가 유난히 닳았는지 색이 바랬다. 아마 업무 중에 게임을 줄창 한 것 같다. 그래봐야 ‘너구리’ 수준이겠지만. 본인은 단순한 유희에 빠져있으면서 후배에게는 업무 태도를 지적하다니. 그녀는 해리성 정체장애를 앓고 있는 것일까. 노트북 너머 한 켠에는 먹다 남은 한라봉이 있다. 아무렇게나 껍질을 까놓은 것을 보니 외과적인 상식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육을 반으로 갈라 표면이 마르도록 방치한 것에서는 잔학하고 냉정한 본성이 드러난다. 없어서 못 먹는 귀한 과일을 이렇게 내버려 두다니. 게다가 냄새만 맡고 먹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의 욕망이 정상적으로 충족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생각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의 웹스터 반장은 ‘희생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생각하라고 했다. 달수 씨의 책상은 금방 일을 하다 떠난 자리처럼 너저분하다. 제대로 꺼지지도 않은 노트북, 펼쳐진 수첩과 뚜껑이 닫히지 않은 볼펜. 그래, 이 사람은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작은 화분. 이 크고 황량한 도시에서 달수 씨는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작은 생명에게 마음을 의지할 만큼.실종 3시간 45분 경과

예상보다 빨리 최 선배와 편집장이 돌아왔다. 희생자의 부재를 눈으로 목격하고 만끽하고 싶은 기분인 것 같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범행을 상기시켰을 때 그녀의 반응을 포착하기 위해 편집장에게 달수 씨가 얼마나 늦게 올지 질문을 던진다.
“아까 문자 왔을 때 내가 말 안했니? 점심 먹고 오후에는 올 거야.”

이럴 수가! 대답을 하는 편집장은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에 따르면 그것은 본인이 저지른 잘못을 인지하고 스스로 벌을 내리는 행위다. 이미 편집장도 한통속이 되어 버린 것일까. 게다가 최 선배는 옆에서 자신의 코를 긁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정확히 나오는 바로 그것,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증거다. 그때,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내가 달수 씨에게 지난 달에 선물했던 유자향 치약. 최 선배는 한라봉을 먹지 않고 냄새를 맡으며 달수 씨를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달수 씨의 이를. 그렇다면 그 향기는 최 선배에게 전리품과 같은 것이란 말인가. 최 선배, 대체 달수 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신이시여, 정녕 그녀를 용서하지 마시옵소서.실종 3시간 50분 경과

“선배님. 달수 씨를 동물에 비유하면 뭘까요? 색깔에 비유한다면요?”
그녀가 생각하는 달수 씨의 이미지를 알기 위해 기습 질문을 던지자 최선배가 갑자기 입술을 깨물며 귀를 당긴다. 속임수를 쓰려는 준비다. 정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때로는 과학적인 증거나 심리적인 추적보다 협박과 고문이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다. 대체 달수 씨를 납치해서 어쨌는가 소리를 빽 지르려는 찰나, 사무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죄송합니다! 감기에 걸려서 병원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코를 긁으며, 귀를 당기며, 손톱까지 물어뜯으며 달수 씨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최 선배와 눈을 맞추더니 살짝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뜬다. 그러자 최선배는 눈을 내리깔고서 입술을 모아 뾰로통하게 코웃음을 친다. 도대체 이건 뭘 의미하는 거지.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다음 시즌은 언제 방송 하는 거야? 아니, 다른 드라마를 봐야 하나.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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