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이번에 유인촌 장관이 시구에서 뭘 잘못한 거야? 뉴스 보니까 사람들이 막 야유하고 비난하고 그랬다는데.
음… 잘못은… 그냥 거기 나왔다는 거?
너 그러다 잡혀간다.
아니, 청소년유해물 판정을 위해 국내외 다양한 앨범의 가사 하나하나를 체크하며 체력을 소진하셨을 장관님께서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우리 민족의 대표 마구 ‘아리랑 볼’을 던지러 그 자리까지 나오신 게 안쓰럽다는 얘기지. 하…하…
똑바로 얘기 안 하면 잡혀가지 않는 대신 내 손에 죽는다.
네네, 제발 목숨만은… 이번 유인촌 장관 시구가 문제가 된 건 두 가지야. 우선 야구 개막전에서 그다지 보고 싶진 않았던 시구자였다는 것. 그리고 시구를 하고 나서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 덕아웃을 돌면서 악수하느라 경기를 6분여 지연시켰다는 거지. 전자 때문에 야유가, 후자 때문에 비난이 나오는 거야. 솔직히 나도 유인촌 장관을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거야? 경기 지연된 것도 겨우 6분이고.
만약에 시구를 할 대상자가 이명박 대통령부터 강만수 前재경부 장관 같은 고위 관료만 있다면 따로 유인촌 장관에게만 야유를 하진 않겠지. 그런데 지난해 LG 대 삼성 경기에서 시구했던 김연아나 ‘홍드로’ 홍수아 같은 후보군이 다양하게 있는 상황에서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나오면 경기 보기 전에 기분이 우울해지는 건 당연하겠지? 시구라는 것 자체가 경기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한 건데 말이야. 내가 그날 문학 경기장에 있었더라면 다음날 서울에서 두산 대 기아 경기 시구하러 유리가 나온 걸 보고 피눈물을 흘렸을 거야.
그럼 네 말이 모순되는 거 아냐? 시구가 경기하는 선수들을 격려하는 거라면 격려를 위해 덕아웃을 돈 게 잘못은 아니잖아.
그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4대강 정비 사업을 하는 게 잘못은 아니란 얘기랑 똑같은 거지.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실천적으로 그 의도만큼의 효과를 내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 격려를 하겠다면서 1분 1초가 아까운 야구경기를 지연시키니 오히려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지.
기다리기 좀 지겨운 건 알겠지만 겨우 6분 가지고 너무 민감한 거 아니야?
이날 경기가 원래 2시에 시작되기로 했는데 지상파 중계 때문에 1시 35분에 시작했어. 경기가 너무 길어지면 중요 프로그램 방영 때문에 중계를 끝까지 하지 못하니까 중계도 앞으로 당기고 경기도 앞으로 당긴 거지. 경기 시간이 정해져있는 축구나 농구랑 달리 야구는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수 있잖아. 그런 상황에서 6분의 경기 지연이라는 건 야구팬들에게 엄청나게 민감한 일이지. 예전에 KBS ‘1박 2일’ 팀이 부산 사직구장 가서 클리닝 타임 때 공연하다가 10분 정도 경기 지연시켰다가 엄청나게 비난 받았던 걸 생각해봐. 계속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무슨 유인촌 장관 편들려고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정치인들이 시구할 때 어떡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냥 오지 말라는 그런 대답 말고.
네가 말한 게 진짜 최고의 정답이긴 한데, 굳이 와서 던지겠다면 말 그대로 ‘개념시구’해야지. 지난해 시구 한 번으로 완전 호감이 된 ‘홍드로’ 홍수아처럼.
아니, 대체 홍수아가 어떻게 던졌기에 시구 얘기만 하면 홍수아 찬양인 거야?
예전에는 시구하러 온 여자 연예인들이 치마를 입거나 힐을 신거나 둘 다 하거나 하면서 그냥 요식행위로 공을 던졌거든. 사실 시구라는 것 자체가 그런 의미가 강했으니까 특별히 그 연예인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홍수아가 편한 캐주얼 복장을 입고 나와 메이저리그의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 같은 사이드암 투구를 보여준 이후 ‘개념시구’라는 게 생긴 거야. 게다가 홍수아 같은 경우는 조금씩 투구폼을 수정해서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 때는 시속 85㎞의 말도 안 되는 강속구를 던지기까지 했어.
그럼 ‘개념시구’는 홍수아가 유일한 거야?
만약 홍수아만 있으면 그런 용어가 이렇게 자주 쓰이진 않겠지. 홍수아 이후 많은 연예인들이 예쁘게 꾸미고 나오는 것보단 최선을 다해 좋은 폼으로 던지는 게 본인에게 더 좋다는 걸 알았는지 이후 많은 ‘개념시구’가 나왔어. 보기 드문 좌완투수로서 역대 가장 깔끔한 폼을 보여준 ‘랜디신혜’ 박신혜나 ‘채영베켓’ 이채영, 김병현을 연상시키는 언더핸드 투구를 보여줬던 ‘BK유리’ 유리 등등. 특히 유리 같은 경우 올해에는 위에서 아래로 던지는 오버핸드 투구로 전향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야구팬들 사이에선 화제가 될 정도로 ‘개념시구’는 호감 상승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어. 대신 과거처럼 대충 던지는 건 이제 ‘비개념시구’가 되는 거지. 그런데 ‘비개념시구’에 경기 지연까지라… 만약 유인촌 장관이 시구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시구 관련 기사만 조금 검색해봤어도 그렇게 대충 ‘아리랑 볼’을 던지진 않았겠지. 2008년 한국 대중문화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던 ‘1박 2일’에 대해 관심이 있었어도 자기가 하는 일이 경기 지연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돈 알았을 거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메이저리그 시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기 위해 백악관 뒤뜰에서 투구 연습을 했다던데 그런 모습을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건 좀 무리일까?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시구 때문에 투구 연습한다고 하면 또 싫어하진 않을까?
하긴 거기까진 나도 자신하기 어렵네. 하지만 더 자신하기 어려운 건 장관님께서 내 프렌들리한 조언을 과연 좋아할지… 혹시 다음 주엔 김종민 작가랑 같은 곳에서 작업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사진제공_ SK와이번스, 두산베어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음… 잘못은… 그냥 거기 나왔다는 거?
너 그러다 잡혀간다.
아니, 청소년유해물 판정을 위해 국내외 다양한 앨범의 가사 하나하나를 체크하며 체력을 소진하셨을 장관님께서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우리 민족의 대표 마구 ‘아리랑 볼’을 던지러 그 자리까지 나오신 게 안쓰럽다는 얘기지. 하…하…
똑바로 얘기 안 하면 잡혀가지 않는 대신 내 손에 죽는다.
네네, 제발 목숨만은… 이번 유인촌 장관 시구가 문제가 된 건 두 가지야. 우선 야구 개막전에서 그다지 보고 싶진 않았던 시구자였다는 것. 그리고 시구를 하고 나서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 덕아웃을 돌면서 악수하느라 경기를 6분여 지연시켰다는 거지. 전자 때문에 야유가, 후자 때문에 비난이 나오는 거야. 솔직히 나도 유인촌 장관을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거야? 경기 지연된 것도 겨우 6분이고.
만약에 시구를 할 대상자가 이명박 대통령부터 강만수 前재경부 장관 같은 고위 관료만 있다면 따로 유인촌 장관에게만 야유를 하진 않겠지. 그런데 지난해 LG 대 삼성 경기에서 시구했던 김연아나 ‘홍드로’ 홍수아 같은 후보군이 다양하게 있는 상황에서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나오면 경기 보기 전에 기분이 우울해지는 건 당연하겠지? 시구라는 것 자체가 경기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한 건데 말이야. 내가 그날 문학 경기장에 있었더라면 다음날 서울에서 두산 대 기아 경기 시구하러 유리가 나온 걸 보고 피눈물을 흘렸을 거야.
그럼 네 말이 모순되는 거 아냐? 시구가 경기하는 선수들을 격려하는 거라면 격려를 위해 덕아웃을 돈 게 잘못은 아니잖아.
그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4대강 정비 사업을 하는 게 잘못은 아니란 얘기랑 똑같은 거지.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실천적으로 그 의도만큼의 효과를 내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 격려를 하겠다면서 1분 1초가 아까운 야구경기를 지연시키니 오히려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지.
기다리기 좀 지겨운 건 알겠지만 겨우 6분 가지고 너무 민감한 거 아니야?
이날 경기가 원래 2시에 시작되기로 했는데 지상파 중계 때문에 1시 35분에 시작했어. 경기가 너무 길어지면 중요 프로그램 방영 때문에 중계를 끝까지 하지 못하니까 중계도 앞으로 당기고 경기도 앞으로 당긴 거지. 경기 시간이 정해져있는 축구나 농구랑 달리 야구는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수 있잖아. 그런 상황에서 6분의 경기 지연이라는 건 야구팬들에게 엄청나게 민감한 일이지. 예전에 KBS ‘1박 2일’ 팀이 부산 사직구장 가서 클리닝 타임 때 공연하다가 10분 정도 경기 지연시켰다가 엄청나게 비난 받았던 걸 생각해봐. 계속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무슨 유인촌 장관 편들려고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정치인들이 시구할 때 어떡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냥 오지 말라는 그런 대답 말고.
네가 말한 게 진짜 최고의 정답이긴 한데, 굳이 와서 던지겠다면 말 그대로 ‘개념시구’해야지. 지난해 시구 한 번으로 완전 호감이 된 ‘홍드로’ 홍수아처럼.
아니, 대체 홍수아가 어떻게 던졌기에 시구 얘기만 하면 홍수아 찬양인 거야?
예전에는 시구하러 온 여자 연예인들이 치마를 입거나 힐을 신거나 둘 다 하거나 하면서 그냥 요식행위로 공을 던졌거든. 사실 시구라는 것 자체가 그런 의미가 강했으니까 특별히 그 연예인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홍수아가 편한 캐주얼 복장을 입고 나와 메이저리그의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 같은 사이드암 투구를 보여준 이후 ‘개념시구’라는 게 생긴 거야. 게다가 홍수아 같은 경우는 조금씩 투구폼을 수정해서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 때는 시속 85㎞의 말도 안 되는 강속구를 던지기까지 했어.
그럼 ‘개념시구’는 홍수아가 유일한 거야?
만약 홍수아만 있으면 그런 용어가 이렇게 자주 쓰이진 않겠지. 홍수아 이후 많은 연예인들이 예쁘게 꾸미고 나오는 것보단 최선을 다해 좋은 폼으로 던지는 게 본인에게 더 좋다는 걸 알았는지 이후 많은 ‘개념시구’가 나왔어. 보기 드문 좌완투수로서 역대 가장 깔끔한 폼을 보여준 ‘랜디신혜’ 박신혜나 ‘채영베켓’ 이채영, 김병현을 연상시키는 언더핸드 투구를 보여줬던 ‘BK유리’ 유리 등등. 특히 유리 같은 경우 올해에는 위에서 아래로 던지는 오버핸드 투구로 전향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야구팬들 사이에선 화제가 될 정도로 ‘개념시구’는 호감 상승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어. 대신 과거처럼 대충 던지는 건 이제 ‘비개념시구’가 되는 거지. 그런데 ‘비개념시구’에 경기 지연까지라… 만약 유인촌 장관이 시구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시구 관련 기사만 조금 검색해봤어도 그렇게 대충 ‘아리랑 볼’을 던지진 않았겠지. 2008년 한국 대중문화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던 ‘1박 2일’에 대해 관심이 있었어도 자기가 하는 일이 경기 지연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돈 알았을 거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메이저리그 시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기 위해 백악관 뒤뜰에서 투구 연습을 했다던데 그런 모습을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건 좀 무리일까?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시구 때문에 투구 연습한다고 하면 또 싫어하진 않을까?
하긴 거기까진 나도 자신하기 어렵네. 하지만 더 자신하기 어려운 건 장관님께서 내 프렌들리한 조언을 과연 좋아할지… 혹시 다음 주엔 김종민 작가랑 같은 곳에서 작업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사진제공_ SK와이번스, 두산베어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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