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원조라는 단어에 대한 집착 혹은 욕심을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충동에는 모두 원조 뚱뚱이 할머니 족발집을 자처하고, 춘천의 막국수 가게 역시 크건 작건 원조라는 두 글자를 앞에 붙여놓는다. 많은 사람들은 오리지널을 찾고, 그 맛에 대해 엄청난 아우라를 부여한다. 이런 집착 속에서 만들어진 기형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존재는 원조라는 이름이 붙은 프랜차이즈 가게일 것이다. 원조는 개념 상 하나일 수밖에 없지만 그 하나의 맛을 모든 프랜차이즈 가게가 공유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미 부여는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닐까.

믿을지 모르겠지만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실크 스크린으로 여러 장 찍어낸 앤디 워홀의 작업이 예술인가에 대한 문제는 원조 프랜차이즈 보쌈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의 문제와 비슷하다. 똑같은 퀄리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보쌈처럼 원작과 모작의 구분 없이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는 판화는 오리지널을 감싼 아우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인터알리아에서 4월 2일까지 진행하는 ‘Edition Work : 진화하는 장르’展에 소개된 현대 미술 거장들의 에디션(프린팅 기계를 이용해 복수로 제작된 작품)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이론적 답변 대신 실질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예술적 성과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요시토모 나라의 경우 일본 전통 목판화의 카피 위에 목판으로 제작된 자신의 캐릭터를 인쇄해 코믹한 패러디를 보여주고, 설탕을 매재(媒材)로 한 에드 루샤의 에칭은 정교하면서도 건조한, 오직 에칭 작업이기에 가능한 영역을 제시한다. 그렇다. 설립 날짜를 대조하며 원조인지 따질 필요 없이 직접 맛을 보고 가장 맛있는 집을 찾으면 될 일이다. 설령 그게 어제 오픈한 가게라 해도.


2007년│발터 벤야민 지음
현대 판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론가는 발터 벤야민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가 에세이 에서 주로 언급한 건 사진과 영화였다. 그는 예술의 유일무이한 가치가 붕괴되는 것을 전통문화의 붕괴로 읽었고, 그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벤야민은 새로운 시대의 판화 감상법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역사의 거대한 여러 시대들 내부에서는 인간집단의 모든 존재방식과 더불어 인간의 지각의 종류와 방식도 변화를 겪이 마련’이라는 진단을 내리며 기술복제를 통한 예술작품을 과거의 감상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정의했다. 판화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음에도 후대 예술가들이 그의 이론을 방패삼아 작품의 정당성을 확보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2007년│감독 조지 하이켄루퍼
천재니, 사기꾼이니, 팝아트를 가장한 파인아트 미술가니 하는 다양한 평가를 받지만 원작과 모작의 기준을 붕괴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미술가는 역시 앤디 워홀일 것이다. 캠벨 수프나 브릴로 상자처럼 공산품을 진열하는 작업이나 실크 스크린으로 유명인의 얼굴을 몇 장씩 찍어내는 방식은 어떤 복제품이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혹은 설득시킨 가장 대중적인 사례였다. 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의 삶을 그린 에 등장하는 워홀에게서 약간의 ‘사짜’ 냄새가 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어떤 작품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평가하기 애매해질 때 작가 역시 예술가와 사기꾼 사이의 평가를 오가게 된다. 故 백남준 선생의 말처럼 ‘예술이란 반이 사기’일지도 모르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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